경건함과 달콤함
라오스 루앙프라방
경건한 탁발
귀의 모닝콜 덕분에 새벽 5시 15분쯤 일어났다. 더 일찍 울리도록 한 알람에 깨났지만, 잠시 누워있다가 일어나자 타협하는 바람에 탁발에 늦을 뻔했다. 루앙프라방에서는 5시 30분부터 6시 반까지 승려들이 정해진 길을 지나며 탁발을 하는 관습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길을 따라 앉은 채 스님이 지나가면 그들에게 과자나 찐 밥을 공양했다.
잠시 기다리니 둥근 요강 같은 걸 지닌 스님들이 나타나 우리 곁을 지났다. 우린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했다. 1월 1일 첫해이니 마치 그들이 나의 석가라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소원을 빌었다. 탁발을 나온 스님들은 나이가 다양했다. 동남아에선 스님이 존경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이곳 라오스에서도 상당한 존경을 받는 듯 보였다. 현지인들은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스님들에게 공양을 할 때마다 두 눈을 감은 채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스님들은 우수에 찬 눈빛, 깊은 눈을 가졌다. 나는 그들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탁발이 끝나고 귀, 재, 봄과 함께 간단히 식사를 하러 시장에 갔다. 갑자기 재가 속이 좋지 않다고 하여 숙소에 다녀온다고 했다. 시장에서 우리는 쌀로 만든 만두피로 속을 채운 튀김 만두 같은 걸 먹었다. 아마도 튀긴 스프링롤이 아니었을까 싶다. 쫄깃하고 맛났다. 나는 산책이 하고 싶어서 그들과 헤어졌다. 그리고 또 다른 사원으로 향했다.
사원에 아침 햇살이 떨어지느라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곳에서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노인을 보자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사실 이런 경건한 상황에서는 셔터를 누르는 일이 없지만, 그를 기록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사진을 찍고 물러났다. 종교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진 않겠지만, 우리에게 믿음을 줄 것이다. 혼자 외롭게 세상에 태어난 가엽고 연약한 우리에게 죽음이란 세계는 낭떠러지와 같은 공포심을 준다. 아무리 우리가 좋은 벗에게 둘러싸여 있더라도 죽음이란 온전히 스스로 개인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어딘가에 우리가 기댈 수 있고 발 디딜 수 있는 신이 있다고 믿을 수 있다면, 우린 조금 더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평생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역사적 인물이라도 피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죽음이니까. 죽음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세상의 감사함을 알 수 있었을까. 죽음이 없었더라면 종교와 신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신이 있든 없든 우린 그 존재 자체의 유무를 따질 수 없다. 다만 우린 우리의 이웃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우리와 함께 죽어가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니까. 그들이 없었더라면 나라는 존재가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 반대로 나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그들의 존재가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 하나의 우주라는 생각이 든다.
크레페와 아름다운 동네, 루앙프라방은 내게 행복 자체
잠시 숙소에서 눈을 붙인 뒤 가볍게 요기를 하기 위해 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두 눈을 의심하는 사람을 만났다. 제주에서 실제 알고 지내던 친한 여동생 정을 만난 거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우린 서로가 여행을 하는 줄도 몰랐다. 그렇기에 정말 꿈을 꾸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많고 많은 여행지에서 어떻게 바로 이곳에서 마주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참 사람이란 어디서 다시 마주칠지 모르기 때문에 죄짓고 살아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 사귀었던 외국인 친구들과 선약이 있어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얼큰한 쌀국수를 시켰다. 처음 고수를 맛보았을 땐 혀가 마비가 되는 것처럼 불쾌함이 들었는데, 이젠 이곳 음식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고수를 즐기게 되었다. 쌉쌀한 맛이 은근 중독성이 있었다. 나는 밥까지 말아서 국물까지 쓱쓱 다 먹었다.
배가 부르니 이젠 돌아다닐 차례였다. 자전거를 하나 빌려서 루앙프라방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자전거 대여 비용이 상당히 저렴했지만 내겐 큰 만족감을 주었다. 파랗고 청명한 하늘, 자전거를 탈 때마다 온몸을 스치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 모든 것이 내겐 행복 자체였다. 프랑스식 옛 목조 건물과 느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이곳의 시간은 날 여유롭고 편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활기가 있으며 동시에 차분했다. 덩달아 이곳에 놀러 온 외국인들조차 그들의 분위기에 동화되어 번잡스럽지 않고 차분하게 이곳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은 정말 매력이 넘치는 동네였다. 동양의 열대우림과 서양식 건물이 같이 조화롭게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맛있고 고소한 냄새가 어딘가에서 풍겨왔다. 나는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페달을 밟았다. 도착한 곳은 크레페를 파는 곳이었다. 라오스에선 크레페를 로띠라고 했다. 아주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반죽을 만들고 후다닥 하나의 로띠를 구워냈다. 나는 하나 맛보기로 했다.
반죽을 얇게 펴서 만들고 달궈진 펜에 구웠다. 그 위에 계란을 하나 터뜨리고 핀 다음 굽기 시작한다. 그 위에 바나나를 잔뜩 썰어놓고 접어서 앞뒤로 달궈주면 된다. 다 구워진 반죽 위에 연유와 초코 시럽을 뿌리면 달콤하고 고소하고 맛있는 바나나 로띠 완성이었다. 나는 하나 맛있게 잡수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자전거를 숙소에 반납하고 여행 계획 일정과 예산에 대해 확인했다. 앞으로 약간의 긴축정책이 필요할 듯싶었다. 일정은 앞으로 많이 남았지만 생각보다 돈을 많이 쓴 것 같았다.
저녁 7시가 되어 정을 만나 샤부샤부를 먹었다. 어제 먹었지만 너무 맛있었던 터라 또 이곳을 찾은 거다. 그녀와 나는 고기와 해물, 채소를 잔뜩 먹었다. 그리고 맥주도 들이키며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 그녀는 약 한 달 반쯤 여행 중이었다. 앞으로 한 달 반이 더 남았다고 한다. 앙코르와트도 다녀왔다고 하던데, 정말 너무 좋았다고 꼭 가보라고 내게 추천해주었다. 너무 위대하다고 앙코르와트에 대해 호평을 듣고 나니 당장이라고 떠나고 싶었다. 그녀는 내게 앙코르와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런 신비로운 유적을 내가 실제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이런저런 서로의 근황에 대해 얘기를 하고, 앞으로의 여행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훌쩍 늦은 밤이 되어버렸다. 홍은 나보다 훨씬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고 했다. 나는 안 그래도 예산이 부족한 것 같은데, 더 찾아볼 걸 아쉬웠다. 그녀는 생각보다 저렴한 숙소가 많은데 베이커리 근처만 아니면 방이 넘쳐난다고 했다. 하지만 내일은 벌써 방비엥으로 떠나는 날이기에 그 저렴한 숙소는 다음으로 기약하기로 했다. 나는 정을 그녀의 숙소에 데려다주고 발길을 돌렸다.
숙소에 도착하니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어서 아름다웠다. 어릴 적, 하루종일 바깥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올 때 보았던 하늘과 느낌이 같았다.
나는 들어와서 침대에 누웠다. 루앙프라방이 떠나기 싫어졌다. 탁발이 있는 경건한 문화와 고요하고 아름다운 사원, 달콤한 바나나 로띠와 고수가 들어간 얼큰한 쌀국수가 맛있는 이곳은 정말 천국이니까. 자전거 하나만 있으면 벤츠가 부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