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시간의 고난의 버스 이후 도착한 아름다운 루앙프라방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
도착이 끝이 아니야
루앙프라방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내가 내린 터미널에서 시내까지 도저히 걸어서 갈 수 있는 체력이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린 나와 승객들을 사냥감으로 여긴 툭툭이 기사들이 눈을 번뜩이며 호객행위를 했다. 깜깜한 밤, 고산의 다소 쌀쌀한 기운과 졸린 상태에서 억척스러운 이들과 마주하자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버스 안에서 생사를 함께한 한국인이 다행히도 5명이 있었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 앉았던 한국인 세 명과 나는 중간중간 버스가 쉴 때 얘기를 나눴고, 친해질 수 있었다. 귀는 일본에서 디자인 유학 중인 여자였고, 봄과 재는 인도에서 유학 중인 연인이었다. 봄은 인도 악기를 전공했다고 한다.
우리는 시내로 함께 가기 위해 툭툭이 기사와 흥정을 했다. 6명, 한 사람당 50바트씩, 총 300바트. 우린 당연히 함께 갈 거라 여겼던 한국인 30대 남성 두 명까지 포함하여 흥정을 마쳤는데, 둘은 버스 안에서 친해진 외국인이랑 갈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외국인들이 한국인 30대 남성 두 명을 버리고 가는 바람에 졸지에 2명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어쩌나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그 툭툭이 기사는 짜증을 내며 다른 승객을 태우고 날라버렸다. 나는 워낙 피곤했던 상황이라 도통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의 먹잇감을 하나 둘 실어 날으며 대다수의 툭툭이 기사가 가버리자, 남겨진 기사가 거의 없게 되었다.
이제 상황은 역전이 되었다. 우린 무거운 짐을 끌고 시내까지 갈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영리하게도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도 나도 들이대던 툭툭이 기사들은 다 가버려서 교활한 툭툭이 기사만 남은 거 같았다. 우리에겐 시선도 안 주고 딴청을 부리기에 살짝 부애가 났다. 그러며 우리가 매달리기 바라는 눈치였다. 이들은 우리에게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했고, 우리는 절대 그 가격엔 안 된다고 맞섰다. 그러자 그들은 아예 툭툭이 의자에 누워버렸다. 알아서 가라. 어차피 40분은 걸어야 돼. 우린 피곤하고 춥고 배고픈 거지 같은 상태였기에 최대한 툭툭이 기사에게 예의를 갖춰 흥정했다. 그러더니 그 기사는 불쌍한 너희를 봐서 한 사람당 70바트씩, 420바트에 시내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우린 정말 단체로 기사에게 다구리를 갈겨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제안에 오케이를 했다. 우린 피난민처럼 그의 툭툭에 올랐고, 찬 바람을 맞으며 루앙프라방 시내까지 갔다.
우리가 내린 곳은 루앙프라방 명물인 조마 베이커리 앞이었다. 시간은 새벽 6시 30분. 우리가 살짝 늦게 여기 도착한 바람에 탁발은 이미 끝나고 말았다. 재와 봄은 이미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에 바로 숙소로 가버렸다. 나와 귀는 예약해둔 숙소가 없어서 숙소를 찾아야 했다. 다시 첫날 방콕에 도착했던 끔찍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북킹닷컴으로 살펴보자 루앙프라방 안에 있는 숙소는 거의 매진이었다. 남은 곳이 없었다. 귀가 우연히 찾아낸 Culture Guest House의 주인이 일본인이었고, 그녀의 능숙한 일본어 능력으로 방을 하나 구할 수 있었다. 일단 구한 방은 그녀가 쓰기로 결정하고, 나의 숙소를 찾기 위해 짐을 두고 나왔다. 그녀는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한참을 둘러보았지만, 이미 모든 숙소가 예약이 다 차 버린 것 같았다. 아마도 조마 베이커리 쪽이 루앙프라방의 중심과 같아서 숙소 예약이 많이 찼던 모양이었다. 주변에 중국인이 경영하는 호텔이 하나 있었는데, 비싸고 환경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숙소가 즐비한 곳 뒤편에는 메콩강이 흐르고 있었다. 제주에서 살던 나는 이런 큰 강을 본 적이 없어서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이미 방에 짐을 넣고 나온 재와 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린 조마 베이커리로 가서 간단히 차 한 잔과 길에서 파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우린 해 질 무렵 푸치단 일몰을 보기 위해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2015년의 마지막 해가 넘어가는 걸 보기 위해서였다. 난 어쨌든 짐을 가지러 가기 위해 Culture Guest House로 귀와 함께 갔다. 그랬더니 일본인 주인이 방 하나가 더 나왔다고 했다. 나는 조마 베이커리 바로 뒤편이라 위치도 좋고, 비용도 저렴한 이곳에 방을 하나 잡았다. 겨우 한시름 놓게 되었다. 나와 귀는 피곤했기 때문에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와 귀는 각자 방에 들어갔고, 5시쯤 게스트하우스 입구에서 만났다. 나와 귀는 재와 봄을 만나기로 한 푸치단으로 향했다. 우린 아직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푸치단으로 향하며 시내 구경을 했다. 조용하고 겸손한 루앙프라방의 기품 있는 시민들은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고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기운이라는 게 있다. 그 기운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정서적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 같다. 루앙프라방은 내가 만난 여행지 속 사람들 중 차분하고 고요하고 친절하고 겸손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타국에서 맞는 첫 새해
푸치단 입구에서 우린 다시 만났다. 재, 봄, 귀와 함께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푸치단은 산 꼭대기에 있는 재단이었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재단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교적 높지 않은 산이라 힘들진 않았다. 평소 한라산 등반으로 단련된 나의 다리 근육으로는 이까짓 산은 식은 죽 먹기였다. 산에 올라 푸치단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은 청명했다. 해가 기울면서 낮게 뜨자 세상을 색다르게 비추기 시작했다. 옆에서 빛이 스치고 지나가자 산이랑 강이 다른 색이 되어버렸다. 푸치단에서는 온 세계가 다 보였다. 루앙프라방은 높은 건물이 없기에 더 아름다웠다. 마치 인간의 세상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 놓은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현대식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과거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곳이 아직 지구 상에 남아 있다는 게 놀라웠고, 감사했다. 사람들은 지는 해에 올해도 감사했고,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며 소원을 빌었다. 나는 가족의 건강을 소원으로 빌었다. 아빠, 엄마, 형, 누나, 그리고 소중한 나의 지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모두 내년에도 건강하길. 모두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우린 메콩강 바로 옆에 있는 샤부샤부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판이 특이했다. 가운데는 철판으로 고기를 구울 수 있고, 가장자리엔 육수가 있어서 해물이나 채소를 데쳐서 먹을 수 있었다. 우린 메콩강이 보이는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한 번 비용을 내면 마음껏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맥주 값은 별도지만. 우린 사자의 옆모습이 작게 그려진 Beer Lao를 흥겹게 들이켰다. 우린 알딸딸해지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지쳤지만 우린 너무 행복했다. 행복과 웃음이 서로에게 전염이 되었다. 더 놀기로 해서 분위기 좋은 장소를 찾아갔다. 2016년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가 있는 곳 바로 앞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를 한 잔씩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 과식을 했는지 속이 더부룩해졌다. 하지만 난 곧 카운트다운과 폭죽놀이가 있을 예정이라 고통을 참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우리 옆엔 남자처럼 등이 넓은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자세히 목소리를 들어보니 걸걸한 게 남자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트랜스젠더인지 레이디 보이인지 모르겠지만 6명쯤 둘러앉아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새해를 기념하기 위해 나온 거였다. 지나가는 공간이 좁아 몇 번 화장실을 다녀오다 그 여자들의 의자를 치게 되었는데, 날 보고 인상을 팍 썼다. 무서웠다. 더 건들면 그녀들의 큰 주먹으로 죽게 맞을 것이다.
11시 59분이 되자 사회자가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10. 9. 8. 7. 6. 5. 4. 3. 2. 1. 빵! 폭죽이 터졌다. 다른 나라에서 맞는 새해였다. 한국이었으면 가족과 둘러앉아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가족이 아닌 타국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새해를 맞는다는 건 참 묘한 기분이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 모두 신나서 환호했다. 우린 비슷한 것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란 생각이 들었다.
곧, 급격히 피로가 몰려왔다. 새벽 버스 안에서 23시간 동안 너무 긴장하고, 도착 이후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더 버티다가는 옆으로 쓰러져서 그대로 잠들어 버릴 정도로 피곤했다. 우린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서 탁발 행사에 참여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나는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