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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틴틴문 Feb 24. 2020

루앙프라방 가다 죽을 뻔

끝날 것 같지 않은 국경의 밤

태국 치앙마이


아! 나의 소중한 선글라스!

 일어났다. 다행히 여긴 진드기가 없어서 시체처럼 잘 수 있었다. 덕분에 개운하게 일어났다. 옆자리 프랑스인은 여전히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버스 티켓을 구입하고 안정적이게 타려면 8시까지 아케이드 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래서 간단히 씻고 짐을 다 정리하니, 7시 40분이 되었다. 내가 떠나는 걸 확인한 프랑스인은 내게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했다. 나도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했다. 치앙마이를 떠난다니, 게스트하우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인간들이 죽은 듯 자고 있었다. 군대 막사 같은 게스트하우스여 안녕! 


 막 나가려던 나는 큰 것이 마려왔다. 난 항상 비슷한 시간에 모닝 쾌변을 보는 편이다. 내겐 시간이 얼마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일을 마치고 일어났다. 카드를 찍어야 정문이 열리기 때문에 난 카드를 갖다 대었다. 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나는 문을 열었다. 카드키를 가지고 가선 안 된다는 생각에, 안으로 들어가서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게 나에겐 큰 실수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지품을 확인해보았다. 여권, 있어, 오케이. 지갑, 있어, 오케이. 사실 이 두 개만 있으면 다른 건 없어져도 여행을 이어가는 데 지장이 없다. 다른 건 신경 쓸 이유도 없는 거다. 가자, 하는데, 눈이 부셨다. 아차! 똥을 싸는데 선글라스를 벗어두고 나왔구나! 나는 기가 막혀서 이마를 찰싹 때렸다! 요거 요거, 이 일을 어찌할꼬! 이미 나오면서 문을 닫았기 때문에 철커덕 쇠문이 잠겨버렸던 거다. 현재 시각 7시 50분. 내가 정한 도착시간이 10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툭툭이를 잡고 달려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식은땀이 났다. 직전에 만났던 제주 소녀 두 명을 비행기랑 버스도 놓쳐버리는 게으름뱅이 자식들로 규정한 이후 내게 놓인 최대 위기였다. 나는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다. 주인이 게스트하우스 안에 없는 것 같았다. 아까 노트북을 하던 마네킹 같았던 프랑스인이라도 이 소리를 듣고 내려와 주길 빌었다. 하지만 그 자식은 노트북만 보느라 청각이 퇴화한 듯 내가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쇠문 안으로 키 박스가 보였다. 옳지! 나가면서 인간들이 저기다 키를 두고 가는 군! 나보다 부지런한 인간이 두고 간 카드키가 보였다. 나는 카드 키 하나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틈 사이로 보이는 키 박스 안에서 카드를 끄집어내기 위한 절박한 시도에는 무언가 현명한 도구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화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저런 걸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긴 뭔가가 필요하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션 임파서블 같은 대단한 첩보물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쓸만한 걸 찾았다. 화분을 걸어두는 고리가 달린 철사였다. 나는 그걸 빼서 키 박스 안에 쑤셔 넣었다. 철사를 구부려 키에 있는 구멍에 넣으려고 했다. 마치 까마귀나 원숭이의 지능 테스트를 위해 연구원들이 만들어 놓은 실험 장치와 마주한 느낌이었다. 저걸 꺼내야 한다고! 그런데, 카드에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같이 걸려 있었는데 그게 교차되는 바람에 좁은 쇠창살을 통과하지 못하고 계속 키 박스 안으로 툭- 툭- 떨어지는 것이었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초조해졌다. 아 주인 양반은 도대체 어딜 간 것인가! 나는 비틀어 빼보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래서 나는 카드와 열쇠를 분리시키기로 했다. 나는 엉터리 수술을 하는 의사처럼 교묘하게 분리시키지 않고 그냥 고리를 부수어버렸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겨우 카드를 꺼내는 데 성공했다! 나는 카드로 쇠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선글라스는 고요하게 화장실 대변기 위에 놓여 있었다. 선글라스를 가지고 나오니 도둑놈인가 싶어서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뜨기로 했다. 그런데 주인 양반이 뒤늦게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파란 티와 청바지를 입은 남자다. 위, 사진 속 남자가 그 주인이다. 미안합니다 양반. 다음에 치앙마이에 가면 열쇠고리를 박살내고 꽃을 걸어두었던 철사를 못 쓰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하리라. 하지만 4년째 치앙마이를 못 가고 있다. 






루앙프라방 가다 죽을뻔

 나는 튀어 나가서 바로 잡은 썽태우를 타고 달렸다. 이미 8시가 넘어 8시 10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치앙마이는 평화롭고 따뜻했다. 시간이 급박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 28분이었다. 나는 티켓 구입처로 달렸다. 가지고 있는 대기표를 실제 티켓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혹시나 늦게 온 바람에 버스 티켓이 매진되진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9시 출발 예정인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휴. 아무리 치앙마이가 좋다고 하더라도 지금 떠나지 못하면 전체 여정에 지장을 줄 터였다.





 아주 약간의 여유가 있자 출출해졌다. 그래서 난 소시지빵을 구입해서 맛나게 먹었다. 시간을 맞춰 버스에 탔다. 잠시후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는 치앙마이-치앙라이-라오스 국경으로 향했다. 루앙프라방까진 23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출발한 버스는 중간에 잠시 터미널에 들렀다. 또 출발했다. 라오스 국경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야만 다른 나라에 갈 수 있는데, 이곳에선 육로로 다른 나라를 통과한다니. 신기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입국 소속을 시작했다. 





 평소 공항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입국 수속 절차를 마치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신기한 건 건물 중앙을 지나면 바로 라오스 국경이 시작되는 것이다. 중앙을 기준으로 한쪽은 태국, 다른 한쪽은 라오스였다. 라오스 건물을 빠져나오자 버스 기사가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줄지어서 한쪽에 세워진 버스로 향했다. 버스에 탑승하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까 출발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창 밖으로는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라오스는 황금색 건물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라오스 국경을 넘자마자 황금색 사원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길이 서서히 좁아지더니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린 루앙프라방으로 향하기 위해 산을, 아니 산맥을 넘어야 했다. 겨우 차 2대 지나갈 만큼 좁은 산기슭을 달렸다. 바로 옆엔 낭떠러지가 보였다. 아찔했다. 게다가 라오스와 태국을 오고 가는 차는 대부분 화물차였다. 잔뜩 뭔가를 실은 큰 화물차가 지나가려고 하면 버스는 오른쪽에 바짝 붙이고 화물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구불구불한 산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전방 시야가 매우 좁았다.


 잠시 후,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큰 쾅 소리를 난 들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놀라서 고개를 빼고 리어켓처럼 앞을 보았다. 기사는 지네 말로 뭐라 뭐라 다급하게 소리치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승객들도 밖으로 나갔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갔다. 사고가 났던 것이다. 과일을 실은 트럭이 뒤집혀 있었다. 과일은 모두 바닥에 쏟아져서 뭉개지고 박살이 났다. 굴러 떨어진 수 많은 수박과 토마토가 으깨져서 바닥에 뿌려진 빨간물을 보자 도로에 사람의 피가 뿌려진줄 착각했다. 겨우 으스러진 과일 트럭에서 내린 한 청년이 잔뜩 피를 흘렸다. 과일 트럭의 가족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울부짖었다. 그런데 과일 트럭과 부딪힌 다른 차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랬더니 낭떠러지 아래에 곤두박질쳐서 박살난 화물 트럭이 보였다. 컴퓨터 그래픽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기슭, 반대편에서 오던 화물트럭이 우리를 앞서가던 과일 트럭을 치고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나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아마도 화물 트럭은 초과 적재를 했을 것이며, 동시에 제동 장치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가파른 내리막을 견뎌낼 수 없었던 화물 트럭은 폭주해서 내리막을 달렸을 것이다. 이어지는 커브를 내려오다 뒤늦게 발견한 과일트럭을 쳐서 날려버리고 과적재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낭떠러지로 아래로 떨어졌던 거다. 끔찍했다. 여기에 함께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보다 조금 앞서 가던 과일 트럭이 우리 버스였더라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과일 트럭은 소형 트럭이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겠지만, 버스라면 화물차와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기사는 얼른 승객들을 차 안에 타라고 했다. 시간이 지체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승객이 모두 탑승하자 버스는 과일 트럭을 피해 가던 길을 갔다. 해가 지고 있었다. 불안했다. 이 가파르고 좁은 산기슭엔 가로등 하나 있지 않았다. 곧, 해가 모두 져버리자 버스의 전조등만 앞을 비추고 있었다. 이런 경우를 한국에선 경험해보기 대단히 어렵기에 나는 버스가 움직이는 내내 바짝 긴장해서 신경을 곤두세운 채 정면을 응시했다.





 옆을 돌아보고 창 밖을 보면 그냥 암흑만 존재할 뿐이었다. 끔찍했다. 계속 계속 가파른 산기슭을 올랐다. 구불구불, 가파른 경사가 계속 이어졌다. 반대편에서 버스 옆을 지나치는 대형 화물 트럭의 육중한 소리가 때때로 들렸다. 그때마다 움찔움찔했다. 난간도 하나 없는 절벽 옆을 지나가고 있다니. 언덕 위로 오르기 어려운 화물 트럭을 추월하느라 마주 오는 트럭과 아슬아슬하게 부딪치지 않는 묘기도 보았다. 나는 도대체 이 지옥과 같은 시간이 언제 끝날까 옆에 앉은 승객에게 물어보았다. 내일 아침 해가 떠야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뭐라고? 나는 속으로 죽었다고 생각했다. 해는 뜰 것인가? 정말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집에서는 그냥 이불속에 누우면 다음날 해가 뜬다. 그마저도 부정하고 아직 밤이라고 믿고 싶은 듯 이불 밖으로 나가길 거부했던 적이 있는데, 아침 해 뜨는 게 이렇게 보고 싶을 줄이야. 하지만 뭐든지 끔찍하든, 매우 즐겁든, 화가 나든, 절망적이든 지나가기 마련이다. 앞날에 대한 불안은 분명 있겠지만, 그 시간도 지나간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게 새벽 내내 달리던 버스는 겨우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만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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