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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틴틴문 Mar 01. 2020

산맥을 지나 방비엥으로

천국 같은 루앙프라방을 떠나 산맥을 지나 방비엥으로

라오스 루앙프라방


이곳은 천국이야

  아침 8시 무렵 기상했다. 창 밖에서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니 기분 좋게 얼른 일어날 수 있었다. 오전 9시 반 숙소 체크아웃을 했다. 짐은 잠시 게스트하우스 로비에 두고 가기로 약속했던 카페로 향했다. 유토피아란 카페였다. 메콩강 옆에 이어지는 길을 따라 산책하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갔다. 그리고 우린 아침의 산뜻함을 만끽하며 유토피아 카페에 도착했다. 유토피아 카페는 원시림처럼 우거진 숲 속에 있는 카페였다. 편하게 쉴 수 있는 매트에 한량처럼 누워서 원시림 전망을 구경하며 차를 마시고 디저트도 먹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다고 했는가. 우리가 제일 일찍 도착한 덕분에 누구보다 좋은 자리를 선택해서 앉을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여긴 루앙프라방에 있는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카페이기 때문에 일찍 오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전망 좋은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우린 커피와 아침으로 먹을 브런치를 주문했다. 브런치라니. 아침을 서양식으로 먹어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귀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직원이 브런치와 커피를 가지고 왔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서 베이컨과 계란, 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입에 넣었다. 씹는 맛이 좋았다. 짭짤한 베이컨, 구운 빵, 계란을 입에 넣고 씹다가 쓴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입 안에서 좋은 향과 고소한 맛이 퍼졌다. 우유도 가지고 왔길래 시원하고 고소한 우유도 한 모금 마셨다. 작지만 아주 소소한 행복이었다. 행복하기 위해선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작은 여유, 소소한 일상. 우리는 특별한 하루를 맞이하며 그 특별한 하루의 소중함을 모를 뿐이었다. 





  11시쯤 되니 제주 친구 정에게 연락이 왔다. 그래서 정과 점심을 먹기 위해 먼저 일어섰다. 귀는 유토피아에 남아 여유를 즐기겠다고 했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루앙프라방의 아름답고 고즈넉한 길을 걸었다. 어디에나 울창한 나무와 풀이 있고, 옛 프랑스 건물과 보도블록이 있었다. 하늘은 푸르고, 선량하고 조용하고 겸손한 루앙프라방의 사람들. 떠나는 날은 영영 오지 않았으면 바라지만, 오늘은 이곳을 떠나는 날이었다. 나는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즐거운 사람들과 만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구석구석 혼자만 있을 때 할 수 있는 골목 탐방을 시작했다. 물론 정과 늦지 않도록 시간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언제든 내가 원하는 곳과 이어질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정해지지 않은 길을 걸었다. 


  가끔은 막다른 길이 있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다. 큰길에는 없을 실제 동네 주민들과 삶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화단에 핀 들꽃, 사람들이 오랫동안 지나다니면서 생긴 길, 낡아서 허물어지면 보수해서 벽을 쌓은 옛집들.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이 이렇지 않을까.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는, 자주 겪어야 이해할 수 있는 매력과 개성 말이다. 천천히 구석구석 둘러보려면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우린 겉모습만 보고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기보다 그 누군가의 속으로 뛰어들어 깊은 관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비로소 그 사람이 보일 테니까.   





  나는 정과 쌀국수를 먹었다. 그녀가 다녀왔던 베트남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서로 앞으로 어떤 일정이 있는지. 정은 아직 다음 어디로 갈지 결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가는 방비엥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생각해보고 갈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목적지에 대한 집착보다는 바람처럼 이끌리듯 가는 것 같았다. 목적지를 분명하게 정해놓고 이동하는 나와 달랐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1시가 되었다. 방비엥으로 향하는 밴에 탑승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정과 헤어졌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동네

  짐을 맡겨두었던 Culture Guesthouse에 도착했다. 귀는 먼저 와 있었다. 우린 늦지 않게 숙소를 빠져나갔다. 일본인 주인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인사했다. 나와 귀도 잘 머물렀다는 표시로 꾸벅 인사했다. 짐을 가지고 조금 걷다 보니 조마 베이커리 앞이었다. 여행사를 통해 예약했던 툭툭이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다. 우린 툭툭이를 타고 터미널로 향해, 그곳에서 밴으로 갈아탈 예정이었다. 나는 조마 베이커리의 당근 케이크와 이별할 생각에 너무 아쉬워서 귀와 함께 하나씩 구입했다. 툭툭이를 타기 직전 당근 케이크를 음미하며 해치웠다. 맛있는 건 도무지 오래 먹을 수가 없다. 


  함께 방비엥으로 향할 미국인 1명, 한국인 형님 2명, 나, 귀가 도착한 툭툭이에 올랐다. 툭툭이는 우릴 태우고 서둘러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방비엥으로 향하는 미니 밴이 있었다. 난 5명만 타고 가겠구나 편하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절대 넉넉하게 비워두는 법이 없다. 모두 가득가득 싣고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밴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것이 고통의 시작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가파른 절벽이 계속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우린 산맥의 능선을 달렸다. 하지만 이 작은 밴을 운전하는 기사는 겁이라고는 발톱의 때만큼도 없는 양반이었다. 가파르고 험한 길을 광란의 질주로 나아가는 바람에 우린 각자 뇌가 좌우로 출렁이는 경험을 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차례대로 도미노를 하듯 토를 했다. 시큼한 냄새가 났다. 토 냄새를 맡자 진심으로 토를 하고 싶어 졌다. 구역질이 났다. 안 그래도 어지럽고 멀미가 나는데, 역한 냄새를 맡으니 속에 있는 모든 게 올라올 거 같았다. 어느 한 현지인은 토를 멈추지 않고 해댔다. 가는 여정 내내, 방비엥에 도착할 때까지 토를 해댔는데, 도대체 저 토의 내용물은 저 사람 몸속 어디에 저장되어 있다가 나올까 궁금해졌다. 심각한 승객들과 달리 작은 밴을 운전하는 양반은 시종일관 똑같은 얼굴 표정을 유지했다. 그냥 아무런 감정이 없는 터미네이터 같았다. 



 


  산맥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마을에 멈춰서 잠시 쉴 때 마주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멋스럽고 개성 있었다. 집들은 절벽에 지탱된 지지대를 기반으로 판자를 올리고, 그 위에 있었다. 이들은 한 동네에서 자급자족을 하거나 여행객에게 물건이나 식사를 팔며 생계를 꾸리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해서 능선에 있는 다른 동네와 교류를 하는 것 같았다. 이들은 짓궂은 표정을 짓거나 무표정으로 있더라도 말을 건네면 빙긋 웃었다. 나는 동네에 잠시 멈출 때마다 집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했다. 모든 것이 열린 공간이었고, 대문은 없었다. 실내 한쪽엔 탁자와 의자가 있었고, 나머지 한쪽엔 가정집처럼 침대가 있었다. 벽엔 살아온 세월만큼 가족들의 사진들이 액자로 걸려 있었다. 부엌에는 손님을 대접하거나 그들을 위한 식사를 요리할 때 쓰는 가스레인지와 향신료들이 있었다. 이들의 삶이 느껴져서 좋았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이곳 경치는 정말 장관이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토를 잊게 할 만큼. 산맥을 따라 파란 하늘과, 해질 무렵 노을, 바뀌는 하늘색은 정말 감탄스러웠다. 





  겨우 방비엥에 도착하니 살았다는 안도감과 더 이상 뇌가 골 안에서 흔들릴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밤에 되어 저녁 8시가 넘었다. 늘 그렇듯 사냥감을 노리는 툭툭이 기사와 흥정하고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한인 게스트 하우스로 유명한 Blue Guesthouse. 1인실이었지만 아주 저렴했다. 힙합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주인이 날 마치 원주민들이 사는 오두막 같이 생긴 곳으로 안내했다. 숙소의 첫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숙소의 상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숙소 내부에는 화장실과 샤워실도 함께 있었다. 이런 숙소의 형태를 방갈로라 부르는 것 같았다. 오두막이 하나씩 하나씩 이어졌다. 도저히 방갈로라 불리는 오두막에서 지낼 수 없는 사람들은 건물 안에 있는 숙소를 사용했다. 대신 현대 인류 문명의 건물에서 지내려면 비용을 더 지불해야 했다. 귀는 나중에 현대 문명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일단 나처럼 1인실 방갈로에서 머물러야 했다. 


  나는 방비엥에서 지내는 동안 계속 괜찮았지만 귀는 방갈로가 최악이었나 보다. 너무 지저분하고 벌레가 많고 습하다고 했다. 귀는 일본이라는 깔끔한 사회에서 지냈으며, 그녀 나름의 지저분함과 타협할 수 없는 성향으로 인해 방갈로라는 원시 문명을 거부했다. 귀는 당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래서 주인에게 여쭤봤다. 그랬더니 주인은 건물 안에는 아직 빈자리가 없고, 내일 한 자리가 나기 때문에 귀에게 내일 옮겨주겠다고 제안했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방갈로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괜찮았다. 나름 매력도 있었다. 그런데 귀는 함께 온 형님 두 명과 만나러 가는 길(형님 두 명은 다른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었다), 저녁밥을 먹으러 가는 길, 밥 먹는 내내,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숙소에 대해 절망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비위를 맞추다가 나도 함께 지쳤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형님들은 나와 귀의 숙소가 나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나도 정말 괜찮았다. 비용 대비 완전 만족.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귀는 상당히 예민한 구석이 있었다. 뭐든 단점을 지적하고 자신과 맞지 않는 걸 보면 참지 않았다. 나는 귀와 함께 있으면 피곤해져서 내일부터는 그냥 혼자 다니기로 결심했다. 나는 동남아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왔다. 최대한 노력해서 현지를 느끼고 체험하고자 왔다. 이들의 삶을 다 알 수 없겠지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왔다. 그녀와 나는 아주 다른 목적의 여행을 하고 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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