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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틴틴문 Mar 01. 2020

방비엥, 혼자이면 외로운 곳

함께 한다면 더 즐거울 방비엥 

라오스 방비엥


방비엥 이른 아침 산책

  날 귀찮게 한 귀가 지겨워, 날 찾을까 싶어서 이른 아침 숙소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산책을 하다 보니 허기가 졌다. 이곳은 바게트 샌드위치가 유명하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 먹어보기로 했다. 이곳엔 길을 따라 바게트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 노점상이 있었다. 그래서 어디가 맛집인지 도저히 알아낼 수 없어서 그냥 눈에 띄는 곳에 가서 샌드위치를 하나 주문했다. 결정은 일단 여자, 만드는 사람의 위생을 중점으로 보았다. 사실 같은 남자를 비하하는 것 같긴 하지만, 남자보단 여자가 위생적인 것 같았다. 우리나라 돈 2800원 정도를 지불하고 바게트 샌드위치를 받았다. 





  속엔 채소, 닭튀김, 소시지가 듬뿍 들어 있어서 먹고 나면 든든했다. 심지어 어떤 샌드위치든 속의 내용물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지만, 빵 자체가 맛이 없다면 샌드위치 맛이 좋을 수가 없다. 이곳 바게트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맛있었다. 저렴하고 맛있고 푸짐한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으려면 방비엥이 답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방비엥엔 어떻게 바게트 샌드위치가 유명해졌을까. 해답은 프랑스에서 찾을 수 있었다. 라오스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프랑스 사람은 빵, 특히 바게트를 즐긴다. 게다가 달콤한 디저트나 케이크는 얼마나 잘 만드나. 라오스는 농경문화이기 때문에 빵을 만드는데 필요한 곡물을 구하기 쉬운 편이다. 그렇게 즐겼던 식문화가 남아서 현재 라오스에도 이어지는 거다. 그래서 저렴한 비용으로 프랑스에서 먹어볼 수 있는 좋은 빵과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거였다.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바람이 불면 바로 옆에 있는 공사장에서 먼지가 날아왔다. 게다가 내 옆에서 아주 더럽고 사나운 개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나를 보고 짖어도 나는 이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특정 나라의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화가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어도 계속 지내다 보면 나의 삶이 되고 편안해진다. 동남아 특유의 여유로움과 넉살, 편안한 관조의 상태가 되었다. 마음적으로 너무 편안하고 좋았다. 샌드위치를 다 먹은 나는 좀 더 산책을 하기로 했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니 강이 나타났다. 강 너머는 리조트가 있었다. 리조트 안으로 들어가진 않고 오후부터 식당으로 쓰는 배 위에 올라가서 잠시 글을 쓰며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방비엥은 특이하게 평평한 평지가 이어지다가 병풍처럼 우뚝우뚝 오름이 솟아있었다. 제주도로 치자면 산방산 같은 오름이 드믄드믄 이어지는 거다. 







블루라곤으로 향한다. 외로움을 느꼈다.

  여유롭게 오전을 보내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귀와 마주치지 않도록 간단히 준비를 하고 얼른 떠났다. 블루라곤으로 가기 위해 자전거를 하나 대여했다. 자전거 대여 비용은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나는 블루라곤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블루라곤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이곳 어딘가엔 있겠지. 모르면 묻고, 헷갈리면 또 묻고. 하지만 생각보다 현지인은 블루라곤을 몰랐다. 내가 물어보면, 발음이 이상했는지 정말로 모르는 건지 알 수 없다는 듯 무표정하게 날 보았다. 그러다가 한 리조트 직원에게 블루라곤 위치를 간단히 설명 듣고 자전거의 방향을 정했다. 가다 보니 통행료를 받는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도중에 블루라곤으로 향하며 흙먼지도 뒤집어쓰고 날씨가 더워져 땀을 비 오듯 흘렸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툭툭이나 자가용을 타고 블루라곤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으씨. 하지만 질 수 없었다. 나는 페달을 계속 밟았다. 도중에 출출하니 길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가볍게 식사를 먹었다. 





 다리를 건너고, 도중에 길을 잃고 방목된 소들과 마주치고, 강에서 뛰어노는 오리들을 만났다. 길은 갈수록 불편해졌다. 비포장도로는 돌과 흙으로 이루어져서 울퉁불퉁했다. 그 바람에 자전거의 페달을 밟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위아래로 요동을 치는 바람에 안장에 붙어 있는 엉덩이의 꼬리뼈가 아팠다. 



미친 자갈 길 동영상



 그렇지만 블루라곤에 가는 길은 대단히 예뻤다. 산이 길을 따라 양 옆으로 이어졌다. 돌 산에 나무들이 막 자라 있었다. 도중에 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블루라곤으로 향하는 바보들을 만났다. 서양인들은 내게 엄지손가락을 세우더니 속도를 내며 멀어졌다. 이들은 정말 대단한 근육을 가진 것 같았다. 속도가 아주 빨랐다. 나중에 자전거를 타고 블루라곤을 다녀왔다고 하니 게스트하우스 주인인 힙합형이 찡그리며 날 봤다. 그 먼 곳까지 자전거로 갔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얼굴을 보고 내가 참 바보 같았구나 생각했다. 정말 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 날씨의 방비엥에서 차로 가도 30분이 걸리는 곳을 자전거로 가다니. 상당히 오랫동안 자전거를 탔기에, 나는 이쪽으로 가는 게 블루라곤이 맞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진 못했다. 하지만 저들이 저렇게 고생해서 가고 있다는 건 뭔가 괜찮은 게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를 믿고 그냥 Go 했다. 





 어쨌든 방비엥 블루라곤에 도착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에 매달려서 에매랄드 빛 호수로 다이빙을 했다. 호수는 아주 깊어 보였다. 나는 수영을 못하기도 했고,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어서 시도하진 않았다. 물론 구명조끼를 돈을 주고 빌릴 수 있었겠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차례차례 묘기를 부리듯 호수로 뛰어들 때 나는 구경만 했다. 그러가다 호수의 에매랄드 빛 물이 신기해서 손을 담가보았다. 그 바람에 제주에서 떠나기 직전 친한 형님에게 빌린 전자시계가 고장나버렸다. 그 시계는 G-SHOCK 브랜드 전자시계였다. 분명 방수가 된다고 했는데. 동남아엔 비가 많이 내리니까 일부러 방수가 되는 시계를 빌려왔다. 아마 물속에 함유된 특정 성분이 시계를 멈추게 해 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빌려준 형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방비엥에 온 여행객, 현지인들은 간단히 먹을 것과 마실 것을 함께 즐기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끼리끼리 온 사람들은 어린이가 소풍 온 것처럼 즐거워했다. 혼자 있는 인간은 나 하나뿐이었다. 나는 시계가 망가져서 그런가, 기분이 나아지지도, 흥이 나지 않았다. 감정이 가라앉았다. 아마도 먼 거리를 자전거로 달려왔기에 체력이 떨어진 탓이었을까. 


 분명한 건 혼자여서 함께할 사람이 없었기에 그랬던 게 아닌가 싶었다. 분명 다툼이나 갈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린 모두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 때로 누군가가 귀찮다가도 그 누군가 때문에 삶이 지루하지 않았고 풍족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는 한다. 우리가 좀 더 타인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필요가 있다. 불교에선 스치기만 해도 인연이라고 한다. 우린 모두 자신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왜냐면. 엄청나게 넓어서 도저히 가늠도 되지 않는 이 우주 속에 먼지보다 작은 알갱이인 지구. 하지만 그 속에 세포보다 작은 우리에게,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 거대한 지구 속 특정 공간에 함께 있는 거라면, 그게 얼마나 큰 기적일까. 게다가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을 만큼 긴 시간 중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야 겨우 볼 수 있는 입자 한 개만큼이나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똑같은 순간에 그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나는 얼른 숙소로 돌아가서 내가 귀찮음을 느꼈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난 서둘러 페달을 밟아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그들이 없다면 이 아름다운 방비엥이 필요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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