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태국왕궁을 지나며, 파타야로 향하는 길
태국 방콕
툭툭이는 방콕의 롤러코스터
50바트(당시 한화로 약 1,500원)의 행복, 카오팟꿍(태국식 새우 볶음밥)을 먹고 기운 차린 재홍과 나는 태국이 다르게 보였다. 물론, 중국계 할아범과 반바지 양반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내상을 입긴 했지만, 우린 돌도 씹어 먹는 20대 청춘이었다. 밥 먹으면 치료가 된다. 어두침침한 밤이 지나고 밝은 햇살로 가득한 방콕이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딜 가나 등쳐 먹으려는 나쁜 인간들은 있는 법이다. 그러니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 어른들이 말씀하셨겠지. 어른들은 옳은 소리만 한다며 동의한 재홍과 나는 얼른 가이드북으로 파타야 가는 법을 찾아보았다. 전승기념탑 근처에 파타야로 향하는 밴이 있는 터미널이 있다고 했다. 걷기 왕인 재홍과 나는 걷기로 했다. 제주에서도 웬만한 거리는 두 발로 걷는 두 인간은 그깟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량하게 생긴 태국인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었다. 아침부터 이런 곳에서 총 맞을 일은 없을 테니까. 새하얀 성벽은 볼수록 기분이 좋았다. 태국왕궁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성벽이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아름다운 왕궁을 감상하러 온 관광객이 많았다. 관광객 중 한 무리가 노점상에서 음료수를 사 마시는 걸 보았다. 얼음과 시원한 물로 채워진 아이스박스 안엔 탄산음료가 가득했다. 운동회 때 볼 수 있는 정겨운 판매 방식이었다. 나와 재홍도 마시고 싶어 졌다. 그래서 콜라와 환타를 샀다.
한 모금 마시는데, 툭툭이가 접근해왔다. 툭툭이란 동남아에서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교통수단인데, 오토바이에 수레가 달려 있는 모양의 이동수단이다. 툭툭이 기사가 우리에게 어디 가냐 물었다. 또 이상한 사람인가 싶어서 무시했다. 그랬더니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2바트에 어디든 데려다줄게.(한화 약 80원) 귀가 솔깃했다. 2바트라고? 재홍은 의심했다. 하지만 나는 믿져야 본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툭툭이 기사가 나중에 딴 소리 하지 않도록 스마트폰을 꺼내 녹음할까 했다. 하지만 우리가 머릿수 하나 앞서는데, 저 양반이 두들겨 맞고 싶지 않은 이상 거짓말하진 않겠지 생각했다. 툭툭이 기사는 최소 2바트, 나머지는 주고 싶은 만큼만 주라고 강조했다. 알았으니 전승기념탑으로 가달라고 했다. 빠른 속도, 느린 속도 어느 것이 좋아? 빠른 속도로 가줘. 정말 빨랐다. 몇으로 달리는지 궁금했다. 시속 60km 정도였다. 어라, 빠르진 않네. 하지만 툭툭이 특성상 내부가 외부로 열린 공간이란 점에서 시속 60km의 체감은 보통 자동차와 달랐다. 시속 60km로 달리는 공기가 온몸을 치고 지나는 것 같았다. 시원했다. 새벽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진 재홍과 나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툭툭이 기사는 우리가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닫고,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속도를 높여가며 차와 차 사이를 지나갔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커브를 돌았다. 우리보다 툭툭이 기사가 더 신난 것 같았다. 재밌어? 재밌어! 툭툭이 기사는 운전 중에 거울로 우리의 표정을 살피며 재밌냐며 물었다. 우린 소리치듯 재밌다고 대답했다. 그때마다 툭툭이 기사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너희 뭔가 아는 친구들이구나. 금세 친구가 된 것 같았다. 나와 재홍은 2바트는 심했고, 150바트씩 300바트(한화 약 1만 1천 원)을 주자고 합의했다. 100바트는 기본 급이고, 즐거운 경험을 주었기 때문에 200바트는 팁이었다. 하지만 도착한 뒤 300바트를 건네자, 왜 이렇게 적냐 표정으로 우릴 보았다. 너무 적어. 죽을 각오를 하고 묘기를 했는데 겨우 이 정도야? 하지만 우린 더 줄 수 없었다. 인사를 해도 받지 않고 멀어지는 툭툭이 기사를 보면서 뭔가 서운함을 느꼈다. 방금 전까진 우린 친구였는데. 어쨌든 안전하게(?) 전승기념탑 근처에 도착했다. 육교를 따라 길을 건너니 가이드북에서 소개한 것처럼 밴을 탈 수 있는 터미널이 있었다.
터미널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공터에 위치했다.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폭의 길을 지나며 매표소 직원에게 파타야행 티켓을 샀다. 당시 1인당 97바트였다. 가는 노선에 따라 다른데 130km에서 150km 떨어진 거리였다. 자동차로 가도 2시간에서 3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내심 툭툭이 기사한테 과한 팁을 주고도 짠돌이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했다. 매표소 직원에게 파타야행 밴이 곧 출발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출발까지 화장실 다녀올 정도의 여유 밖엔 없었다. 어쨌든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얼른 방콕을 떠나자. 화장실에서 소변을 누고 온 재홍과 나는 밴에 올랐다. 밴의 기사는 사람이 다 탔는지 확인했다. 모두 탑승했다는 걸 확인하자 밴을 출발시켰다. 반바지 양반이 말한 강력 범죄자의 소굴인 파타야로 향한다. 정말 범죄자가 쏜 총에 맞을 것인가. 설렘과 호기심, 걱정,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피곤했던 재홍과 나는 곧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