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착과 집요함. 삶은 투쟁의 연속.
베트남 후에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샐리의 법칙
아침 7시. 간단한 간식으로 불고기 볶음이 들어간 바게트 샌드위치를 우리나라 돈 500원 정도의 비용을 내고 사 먹었다. 베트남의 화폐 단위는 매우 커서 큰돈을 내는 것만 같다. 한화 100원에 베트남 돈으로 1,930동이니 1000원만 되어도 19,305동이었다. 1만 원이면 19만 3,050동이니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베트남에서는 숫자 단위가 크기 때문에 비용을 잘못 낼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인디아나 존스 할아버지 두 명과 눈치껏 다른 사람들을 따라 국경 심사대로 향했다.
나는 심사대로 향하며 방비엥 사쿠라 바에서 보았던 한국인 여자 2명과 마주쳤다. 나도 정신 병자에 맞먹도록 막춤을 추었지만, 그녀들도 상당히 도발적으로 춤을 추었던 기억이 있어서 뇌에 기록되어 있었다. 헤드뱅을 돌리고, 유혹하는 몸짓으로 과감하게 춤을 추던 섹시미 그녀들이 청순한 소녀들로 변해 있었다. 나는 적잖게 놀라웠다. 같이 베트남 입국 심사를 받으며 방비엥에서 춤을 격렬하게 추었다는 걸 상기시키자 그녀들이 웃었다.
우린 같은 버스를 타게 되었고(인디아나 존스 할아버지 2명은 알아서 잘 다녔다), 후에까지 함께 가게 되었다. 도착한 후에에서 오토바이 기사가 1인당 1만 원을 부르길래, 내가 그냥 걷자고 이들을 설득했다. (걸어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며, 돈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그녀들과 동행 중인 베트남 남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이곳 후에 사람이었다. 베트남 친구는 적극적으로 둘에게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어 했다. 자신이 요리를 끝내주게 잘한다고 했다. 하와 영은 예의상 알았다고 대답했다. 베트남 남자는 행복함을 감추지 못하고 날아가버렸다.
나는 하와 영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과 친해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게 아니었는가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녀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연락처를 물을 수 없었다. 아까 베트남 남자를 조심하라고 했는데, 내가 그녀들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게 스스로 위선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샐리의 법칙을 믿었다. (샐리의 법칙은 롭 라이너 감독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유래했다.) 우연하게 좋은 일은 연달아 계속 이어진다. 우연히도 그녀들과 나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믿음. 스스로 낭만적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결국,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들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아마도 평생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위선 떨지 않고 솔직했더라면 어땠을까. 인스타그램으로 서로의 소식을 간간히 볼 정도의 사이라도 연결의 끈은 평생 이어졌을텐데. 여행을 하면서 만난 인연은 생각보다 즐거운 인연으로, 추억으로 남는다.
후에에 밤이 찾아왔다. 베트남에 왔다는 걸 실감한 건 바로 오토바이 부대였다. 퇴근 시간에 맞춰서 분주하게 집으로 향하는 오토바이 행렬. 횡단보도나 신호등도 제대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길을 건널 방법이 없어서 빙 돌아서 갔다. 하지만 이곳에서 길을 건너는 방법은 간단했다. 이들은 정어리 떼처럼 떼를 지어 다닌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게 무척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들은 모두 지능을 가진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무단 횡단하는 개구리 게임처럼 우릴 짓밟고 가는 게 아니란 뜻이다. 뛰지 말고 천천히 걸어서 길을 건넌다면 이들이 알아서 피해 갈 것이다. 처음에는 날 쳐버릴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오토바이들을 보며 섬뜩하겠지만, 정말 안전하다. 이들은 끝내주는 운전 실력을 가졌다.
삐끼(호객꾼)의 집착과 집요함, 우공이산.
루앙프라방에서 헤어졌던 봄과 재가 이곳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들은 곧 이곳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저녁에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들과 만날 생각에 신이나 있는데 호객 행위를 하는 양반들이 나에게 달라붙었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날 졸졸 따라다녔다. 그들은 두 손을 이용해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붐붐. 붐붐. 그들은 그게 성행위를 뜻하는 표현이라고 했다. 헤이. 저렴하게 여자랑 뒹굴지 그래. 정말 저렴하다고. 끝내주는 여자야.
베트남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계속 거절했다. 하지만 중국계로 보이는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계속 쫓아다니며 설득했다. 100번은 거절한 거 같다.
이 녀석이 날 더 이상 좇지 못하도록 다리를 건너버렸다. 그러자 다리 위를 지나는 오토바이 행렬 때문에 그 녀석은 어쩔 수 없이 가버렸다. 나는 다리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름다웠다. 마치 반 고흐 그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같았다. 강 위에 아름다운 등불이 반사되어 내게로 다가왔다. 천천히 산책하며 다리를 건넜다. 내 곁을 지나는 오토바이의 소음 조차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길을 건너고 보니 그 삐끼 녀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활짝 웃으며 말하다가도 심각한 표정으로 날 협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오금이 저렸다. 나와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녀석이었는데, 나는 뭔갈 위해서 이렇게 집요했던 적이 있었던가. 이 녀석 정도의 집착과 집요함이라면 뭐든 하겠다 싶었다. 나는 이 녀석을 통해 뭔가 배운 게 있었다. 삶은 투쟁의 연속이구나. 자신의 방향대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산도 옮기는 우공이산(愚公移山 :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김.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큰 성과를 거둠.)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내가 만약 봄과 재와 만날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집요함에 넘어갈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봄과 재를 만나러 약속 장소인 Shin Tourist 앞으로 갔다. 그들이 막 도착했고 우린 반가운 재회를 했다. 내가 이곳으로 넘어오며 겪었던 불쾌한 베트남 직원에 대한 얘기를 하자, 단번에 이 여행사를 추천했다. 여긴 직원 관리가 확실해서 그런 상황은 다신 안 겪을 거야. 그들은 이곳으로 오기 전 여행지였던 호이안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나는 일정이 빡빡해서 호이안을 건너뛰고 캄보디아로 가려고 했다. 앙코르 와트 사원이 있는 씨엠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주 친구 정은 씨엠립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너무 행복했다고 했다. 두 사람이 호이안을 보지 않고 간다면 분명 후회할 거라고 했다. 나는 그들을 믿고 다음 여행지로 호이안을 선택했고, 버스는 Shin Tourist 버스로 결정했다. 우린 자리를 옮겨서 간단히 맥주를 마셨다. 나는 가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짧은 일정이었기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뭐든 다 하고 싶은 방향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선택이 있으면 포기가 있는 법이다. 모든 건 아주 단순하고, 명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