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비엔티안
일탈의 한국인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의 느낌은 낙후된 중소도시였다. 수도라고 해서 사람이 붐비거나 번잡하지도 않았고, 고요했다. 적은 인구수, 낮은 건물, 대체적으로 세련미가 없는 투박한 인테리어, 디자인. 그러나 뭐든 부족하다는 건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 빈 부분을 채우면 되니까.
한인 쉼터에서 만난 중년의 아저씨와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 부인도 자식도 있는 50대 남자였다. 아마도 이혼 혹은 별거 단계인 듯싶었다. 그는 한국보다 후진국인 라오스에서 생활이 아주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저렴한 숙소, 저렴한 식사. 하지만 그가 가장 원하는 건 라오스 여자였다.
상대적으로 한국인에게 마음이 열려 있는 라오스 여자들을 클럽에서 꼬시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원나잇을 하는 거고, 운이 나쁘면 허탕을 친다고 했다. 허탕을 쳐도 즐겁게 놀았으니까 나쁘진 않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비엔티안 내 클럽을 들낙거리는 라오스 여자 상대로 부킹이 어렵지 않다고 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클럽 근처에는 얼짱도 하지 않을 50대 한국남자.
왜 한국인은 자국에서 눈치를 보느라 하지 못하는 일탈을 다른 나라에서 하는 걸까. 쌓아둔 스트레스가 많으면 터지는 법이다. 언젠간 해소를 해야 한다. 한국은 일탈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격하고 사람을 옥죄는 곳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 눈치를 보는 게 한국이란 나라가 강요를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놀줄 모르는 한국인들은 주변 눈치를 많이 본다.
이제까지 외국에서 만났던 한국인 모두가 똑같았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 비슷한 건 일본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 만나도 자유롭게 어울리고 춤을 추고 친구가 되는 다른 나라 사람과 달리, 눈치를 보느라 눈알만 굴리고 쭈삣쭈삣 구석에서 알콜만 섭취하는 동양인. 그들은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이었다.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한국인을 만나는 건 외국에서 연예인을 만나는 일 만큼이나 흔치 않았다.
왜 눈치를 보는 걸까. 그건 음흉한 속마음이 있지만 숨기고 다른 태도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만큼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 어쩌면 세상에 다양한 요소가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니 스스로 감옥에 갇힌 게 아닐까.
클럽은 신나는 노래를 듣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다. 부킹하고 원나잇하는 것에 목을 메는 건 오직 한국인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건전하지 못한 곳은 클럽이란 등식을 나름 세운다. 그리고 어쩌다가 클럽에 가게 되면, 살짝 눈치를 보거나 죄의식을 느끼고, 혹시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을까 걱정한다. 어릴 때부터 5가지 보기 중에서 정답을 찾으며 성장한 한국인에게 다양한 시각이란 게 애초에 개발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베트남 후에
시끄럽고 불친절한 베트남 직원, 짜증과 행복의 교차
오후 6시 비엔티안에서 여행사 직원을 통해 미니밴을 타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알고 보니 행선지가 모두 다른데 한 밴에 몰아놓고 가는 길마다 떨궈주고 있었다. 나를 엉뚱한 곳에 떨궈주려고 하길래 항의했다. 여행객으로 꽉 찬 미니밴을 타고 가는 길을 죽을 맛이었다.
미니밴이 떨궈준 곳엔 후에로 향하는 버스가 서 있었다. 슬리핑 버스였는데 내 옆에 2명의 폴란드, 스페인 할아버지가 있었다. 두 명은 꼭 인디아나 존스 같았다. 매우 민첩하고 위기 감지 능력, 상황 판단 능력이 빨랐다. 그래서 이상한 낌세만 느껴도 재빠르게 반응했다. 그들의 눈은 항상 반짝거렸다. 워낙 이곳은 한 번의 판단 미스가 손해를 주는 곳이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들은 버스 직원에게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고 거짓말을 할 경우 소리를 지르고 함께 항의하자고 내게 제안했다. 나도 오기 전에 그들이 했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리는 걸 종종 겪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버스는 2시간가량 달리다가 멈췄다.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비몽사몽으로 깨났고, 나는 인디아나 존스 할아버지랑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갔다. 그 할아버지가 다른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인디아나 존스 할아버지랑 나는 서둘러 볼일을 마치고 버스로 향했다. 그랬더니 옮겨 탈 베트남 버스의 직원이 굉장히 빠른 속도,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게 내게 말을 했다. 그러며 손짓하며 날 재촉하는 것이었다. 거의 돌아버린 사람 같았다.
버스 안에 타고 보니 나머지 할아버지는 이미 착석하고 있었다. 눈치가 엄청 빠른 사람. 그런데 베트남 직원이 우릴 계속 한 곳으로 몰아 넣으려고 했다. 이 좁은 자리에 앉아서 서로 어깨를 바짝 붙이고 밤새 가야한다고? 하지만 당장은 자리도 넉넉해서 눈치껏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았다. 시끄러운 베트남 직원이 소리를 질러댔다. 나와 인디아나 존스 할아버지는 자리가 많지 않냐고 항의했다. 베트남 직원도 우리가 거세게 항의하자 지친 듯 무시하고 앞자리로 가버렸다. 나중에 국경 심사하는 곳까지 가는 동안 겨우 6명이 타고 갔는데 왜 그렇게 빡빡하게 굴었는지. 어이가 없었다.
아침 6시. 국경 심사하는 곳에 도착했다. 도착하면 바로 느끼는 사실은 국가마다 국경의 입구를 상징하는 건물 모양이 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개성 있다는 것. 국기와 그들의 성향만큼이나 건물 양식도 제각각이었다. 버스가 도착한 뒤 시끄러운 베트남 직원이 나와 인디아나 존스 할아버지 2명을 바깥으로 몰아냈다. 내려서 뭘 어쩌라는 건지 설명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뭘 물어보면 짜증을 내면서 발길질을 해댔다. 물론 나를 차진 않았지만 이소룡처럼 허공에다 빠른 발길질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돌아버릴 거 같았다. 인디아나 할아버지랑 나는 우두커니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 참 예뻤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건 매번 짜증과 행복의 교차다. 순식간에 감정이 변하는 상황과 마주한다. 그런 만큼 사는 기쁨이 느껴지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