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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틴틴문 Mar 06. 2020

더 나은 국가

우리는 모두 자유의지를 지치고 주체적으로 살고자 한다

라오스 비엔티안


더 나은 국가를 위해, 더 나은 개인을 위해

  오전 7시에 일어났다. 9시 버스를 타고 비엔티안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방비엥을 떠나기 전에 내 두 눈으로 다시 담고 싶었다. 그래서 잠시 동네를 걸었다. 평소 외국인으로 넘쳐나는 방비엥 거리의 새벽은 한적했다. 대신 현지인들의 장터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었다. 평소 나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던 호객 상인들 대신 차분하게 현지인들과 거래하는 시장 상인이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 작은 방비엥이라는 동네에 외국인이 너무 많았다. 아마도 블루라곤은 방비엥 사람들에겐 한적한 놀이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관광객들로 미어터지는 현재의 블루라곤은 더 이상 현지인에게 편안한 휴식처이기보다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공간일 것이다.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서 짐 정리를 마쳤다. 버스를 기다리며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던 시인 아저씨와 담소를 나눴다. 동남아 여행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치, 사회, 역사 등 폭넓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기억에 남는 건 여행 중 느끼는 가족에 대한 사랑, 고향에 대한 그리움, 공동체와 국가에 대한 애정 등이었다. 타국에 오면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나 공동체에 대해 미우나 고우나 애정이 생긴다. 아무리 외국이 좋아 머물게 되더라도 영원히 외국인은 외지인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 천 년 동안 전 세계를 떠돌던 유태인도 결국 자신의 나라,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그들은 더 이상 다른 나라에서 기생하는 건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 나치와 같은 무리에게 유대인이 상처 받길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국가가 잘 되어야 개인이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이 대접받을 행동을 해야 국가가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엔티안으로 넘어가는 밴이 도착했다. 나는 넘버 투 깡패 형님과 넘버 쓰리 일본인처럼 생긴 형님과 작별 인사를 했다. 넘버원 힙합 형님은 자고 있다고 했다. 며칠간 방비엥이 한국처럼 편했던 건 이들 덕분이었다. 감사했다. 


  다행히 방비엥에서 비엔티안으로 가는 길을 평지에 가까웠다. 편하게 갔다. 비엔티안에 도착한 건 1시 반쯤. 한인 쉼터를 찾아가기로 했다. 도중에 마주친 한국인에게 물어보았는데, 나에게 방향을 잘못 알려주었다. 그 바람에 반대방향으로 가게 되어 한참을 헤맸다. 그 바람에 라오스의 독립문이라 불리는 빠뚜사이(PATOUXAY)와 만나게 되었다. 



 


 빠뚜사이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는 걸 기념하기 위해지었다고 했다. 미국으로부터 공항 활주로를 지으라는 원조 목적으로 받은 시멘트로 건설했다고 한다. 그래서 빠뚜사이는 수직 활주로라는 별명이 있었다. 이들의 독립문은 동남아 특유의 섬세한 문양으로 꾸며져 있었다. 





  동서남북 방향으로 뚫려 있어서 어디서든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천장의 문양은 이들의 신화와 관련된 신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런 문양은 태국, 캄보디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인도 신화에 큰 영향을 받는 거 같았다. 



해 질 무렵 라오스의 독립문 빠뚜사이(PATOUXAY)



  빠뚜사이는 야간에 보는 것도 아름답다. 조명시설을 설치해두어서 꽤 아름답기 때문이다. 특히 해 질 무렵 동남아의 마법 같은 하늘은 이 독립문을 환상 속 공간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독립이란 민족에게 어떤 의미일까.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흡수해서 부강한 나라로 하나가 된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선진 문화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면 좋은 게 아닐까. 그럼 독립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언어, 문화, 생활, 인종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두 나라가 하나로 동화되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식민지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거나, 혼혈아의 출생을 통해 인종을 바꾸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다. 하지만 우린 무엇보다 차별과 자신의 자유의지가 꺾이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인간은 모두 자신이 하찮게 여겨지는 걸 싫어한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판단하고 사고하고 행동하고 싶어 한다. 


  국가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대변하는 형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란 자신과 운명 공동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전반적으로 퍼지게 되면서 나라의 중요성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다. 나라를 위해 약간의 불편함을 겪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희생은 바보들만 하는 것이란 믿음도 있다. 


  하지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교활한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를 팔아넘기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을 때 국가는 후퇴하게 된다. 국가의 후퇴는 공동체와 사회의 후퇴이고, 가족의 후퇴이자 나 자신의 후퇴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을 휩쓸자 유럽에 있는 아시아인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했다. 예로, 싱가포르인은 런던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유럽에서 아시아인 학생의 출입이 금지된 학교도 생겼다. 지나가는 아시아인을 본 백인들이 아시아인을 코로나라고 조롱했다.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자 외국은 한국인의 입국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5천만 명이 넘는 한국인 모두를 바이러스 보균자로 인식하는 듯, 외국에 거주 중인 교포들의 외출이 금지되고 격리되었다. 이건 코로나를 통해 든 아주 작은 예시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소속된 곳과 무관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건 자신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모두에게 소속이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사람은 후진국 사람을 당연하게 무시하는 태도가 은연중에 나타난다. 


  인간에게 소속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소속되지 않은 인간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 우리가 한국의 독립을 그토록 염원했던 건 자신의 자유의지 표출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유롭고 싶고, 더 나아가 더 나은 인간으로 대접받길 원한다. 라오스인은 그들의 독립문 빠뚜사이를 지을 때, 다시는 독립을 빼앗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들은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독립문을 화려하고 단단하고 웅장하게 지었다. 다시는 자신의 국가가 외세에 꺾이지 않고 부흥하길 바라면서. 라오스인 모두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면서. 


  대한민국이 더 부강해졌으면 좋겠다. 자유의지로 어떤 외세에도 휘둘리지 않는. 그러면서 타국을 멸시하거 무시하지 않는 정신적, 물질적으로 진정한 선진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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