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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틴틴문 Jan 27. 2020

성매매 여성으로 이어진 장벽

모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국 파타야


헬스랜드 마사지

  Health Land(마사지 샵)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젊은 여행자는 대체로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은 법이다. 약 1시간은 걸은 것 같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Health Land로 향하기 직전 숙소 근처에서 식사를 했는데, 이미 소화가 다 되었다. 실내로 들어가니 시원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트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시원한 에어컨이 켜진 곳만 찾게 될 거 같았다. 싸와디 카(안녕하세요). 친절한 여직원이 웃으며 다가왔다. 


  이곳에선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인사가 약간 달랐다. 남자는 싸와디캅, 여자는 싸와디 카. 이들이 인사할 때 좋았다. 두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특유의 낭랑하고 맑은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태국이 왜 미소의 나라인지 알 거 같았다. 이들이 미소 지을 때 입꼬리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게 좋았다. 약 30분 정도의 대기시간 끝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 대기시간은 짧은 편이었다. Health Land는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가 좋아서 예약을 하지 않으면 보통 오래 기다려야 했다. 안내를 따라 계단으로 오르고 복도를 걸었다. 건물 내부는 깨끗했다. 아늑한 조명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2인실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가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40대 여성과 20대 여성이 들어왔다. 재홍에겐 근육형 40대 여성이, 나에겐 20대 여성이 배정되었다. 배를 깔고 엎드렸다. 지압과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근육이 뭉쳤는지 마사지로 풀어줄 때마다 아픔과 시원함이 동반되었다. 뭉친 근육을 손가락으로 으깨서 부숴버리려고 작정한 거 같았다. 아가가가각. 고통의 비명을 신음처럼 내뱉을 때마다 차분한 어조로 긴장을 풀라 했다. Relax(긴장 풀어). 2시간 동안 전신 마사지가 이루어졌다. 뭉친 근육을 비틀고 누를 때마다 아프긴 했지만, 마사지가 진행될수록 근육이 풀리면서 온몸이 시원해졌다. 


  그르렁. 너무 편안했던 나머지 나와 재홍은 코를 골면서 졸았다. 중간중간 내 코 고는 소리에 깼다. 그럼 옆에서 마사지를 받는 친구가 코 고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저 녀석 꿈나라로 갔구먼. 조금씩 강도가 세졌다. 레슬링 기술을 쓰는 것처럼 내 몸을 비틀고, 꽉꽉 눌렀다. 심지어 무릎과 팔꿈치로 내 몸의 뭉친 곳을 누르는데 겁나게 아팠다.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아픔이 지나면 개운함이 찾아왔다. 참 묘한 매력이었다. 저렴하고 가성비가 좋아 또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시간의 마사지를 마치고 그들이 준 우롱차를 마신 뒤 Health Land를 떠났다. 가는 길에 들개 무리를 만났다. 사람만큼 큰 들개들이 대형마트 앞에 심드렁하게 누워있었다. 이곳은 날이 더워서 그런지 개들이고 사람이고 모두 진이 빠져서 축축 쳐져 있었다. 들개들은 뭘 먹지 못했는지 갈비가 드러났다. 마트에서 사람이 나오며 음식 냄새를 풍기면 꼬리를 흔들며 따라가곤 했다. 하지만 뭘 얻어먹지 못할 거란 걸 알면 풀이 죽은 표정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곧 크리스마스라는 게 실감이 났다. 6시 40분쯤 어두워지면서, 반짝거리는 등에 불이 켜졌다. 복잡한 전선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예쁜 등임을 알았다. 사실 한국의 여름은 덥기도 하지만 해가 길다. 하지만 여긴 기온이 높지만 엄연한 겨울이란 사실이다. 한국의 초여름처럼 덥지만 해 길이가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신기했다. 






성매매 여성으로 이어진 장벽

  우린 해안을 따라 걷기로 했다. 참 긴 해안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잔뜩 꾸민 여자들이 해안가 인도에 서서 힐끔힐끔 우릴 쳐다보았다. 처음 파타야에 도착했을 땐 마주했던 나이가 있는 여성들의 짓궂은 표정은 볼 수 없었다. 밤이 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누가 나를 선택할까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진지한 생계 전선에 나선 여성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선택받지 못하면 그 날은 허탕을 치는 거다. 나이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마치 인간으로 만들어진 장벽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해안 가장자리일수록 나이가 든 여성이 서 있었다. 반면 파타야 해안 중심부인 힐튼 호텔 근처에 오자 급격하게 나이가 어려졌다. 심지어 가방을 메고 수줍은 표정으로 서 있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도 보였다. 그냥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 아닌가. 재홍과 나는 궁금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여성 또한 인간 장벽 대열 안에 있었다. 약간 충격이었다. 태국의 성문화는 엄연한 사업이다. 성매매로 벌어 들이는 수입이 일반 노동에 비해 과하게 높다.


밤이 찾아온 파타야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지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그래서 이곳에선 딸이 성매매를 한다고 하면 아버지가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시켜준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창피하고 숨겨야 할 일이지만 이곳은 다른 것 같았다. 이들에게 이런 문화가 지저분하고 옳지 못하다고 한다면 기분 나빠한다고 했다. 이것 또한 태국의 문화 중 일부다. 하지만 성매매에 대한 이들의 인식이 문화적 다양성으로 이해받을 수 있는 걸까. 분명 태국도 성매매가 불법이다. 그럼에도, 성매매는 관광 상품으로 큰돈이 되기 때문에 제재하지 않는다. 



파타야 해변 중심에 위치한 힐튼호텔



  남자들이 마트에서 상품을 골라 카트에 담듯 해안가에 서 있는 여자 한 명씩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마다 마르고 늙고 병들어 보이는 여자는 자신보다 먼저 팔려나가는 젊은 여자를 부러운 듯 힐끔 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아직 남자들을 유혹할 수 있다는 듯 자세를 고쳐 잡거나 표정을 요염하게 해 보였다. 태국에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는 걸까. 왜 이들은 이런 일에 종사할까. 태국에는 상당히 많은 여성이 이런 일에 종사했다. 태국은 사실 빈부격차가 상당해 보였다. 엄청 호화스러운 호텔들이 해안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졌다.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들이 호텔들과 레스토랑에 가득했다. 오픈된 마인드를 가진 태국인들은 모두에게 친절하다. 


  불교 국가인 이들은 카르마(Karma)를 중시했다. 카르마는 불교 용어인데, 전생의 지은 소행이 현세에 응보로 온다는 용어다. 인과응보. 원인과 결과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일의 결과가 나타나는 건 그 결과를 위한 원인과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국인은 매사에 그다지 큰 불만이 없다. 다 이게 내 업보다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이들이 잘 웃는 이유도 녹녹하지 않은 현실에서 웃는 게 최선이라 믿고 있기 때문인지 몰랐다. 어쩌면 다양한 나라에서 찾아온 외국인들이 인과응보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착한 태국인들을 유혹하고 변하게 만든 건 아닌가 싶었다. 





  한 번 자본주의 돈맛을 보게 된 사람은 헤어 나오지 못한다. 너도나도 가볍게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을 거다. 성매매로 쉽게 돈 번 사람은 쉽게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고생해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더 많은 가능성을 창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쉽고 편하지만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걸 하려고 한다. 하지만 뭐든 건 양면성이 있다. 쉽고 빠른 쾌락을 주는 마약이 정신을 파괴하듯, 쉽고 빠른 소득으로 이어지는 성매매 또한 사람을 파괴한다. 


  자신을 성장시킬 가장 중요한 시기인 20대-30대가 매춘여성에게도 전성기이다. 20대-30대에 근면하게 노력하고 자신을 성장시킨 사람은 자신의 능력으로 삶을 멋지게 살 수 있다. 하지만 20-30대에 매춘과 음주를 하면서 정신과 육체를 혹사시킨다면, 매춘녀에게 좋은 미래를 상상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능력을 기르지 못했고, 정신과 몸을 소모시켰기 때문이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쓴다. 단순히 카르마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받아들인 결과가 스스로의 파괴라면 과감하게 카르마를 던져버리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늙고 병들어 말라버린 여성이 굶주린 들개처럼 먹을 걸 던져주길 기다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이들도 처음부터 늙고 병들진 않았을 거다. 사치스러운 비치로드의 호텔과 대비되는 이들이 작고 나약해 보였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쩌면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건 내 편견일지 모른다. 한 문화 속 구성원이 다른 문화 속 구성원을 쉽게 판단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들 중엔 현명하게 저축해서 고향에 호텔을 지은 여성도 있다고 했다.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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