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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Mar 24. 2016

겨울밤, 택시 안에서 - 치유 에세이

작은 호의

 1월 31일에서 2월 1일로 넘어가던 새벽 1시 반. 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늦은 회식을 끝나고 온 터라 몸은 지쳐있었다. 하지만 술에 취하진 않았다. 막내 신분의 나는 마시는 것보다 치우는 게 일이었으니까.

 “… 동으로 가주세요.”

 나는 언제나처럼 앞좌석에 앉아 벨트를 맸다. 뺨을 때리던 차가운 바람을 건너 뜨끈한 시트에 엉덩이를 붙이니 금세 잠이 몰려왔다. 하지만 걱정도 따라붙었다. 내가 잠이 들면 차가 돌아가진 않을까? 부끄러운 일이지만, 의심이 먼저 들었다.

 그래, 깨있어야지.

 

 숙련된 기사의 차는 부드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음악 한 소절 흘러나오지 않는 택시 안은 적막했고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시간은 무료했다. 그냥 보내기는 아까운 시간, 나는 고민했다.

 어떤 걸 고민했느냐고? 당시의 나는 택시기사를 소제로 한 글을 쓰고 있었다. 평소에 택시를 타지 않으니 이럴 때야말로 자료를 수집할 좋은 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쑥쑥 말을 걸기엔 평소의 나는 그렇게 사교적이지 않았다. 조용한 시간을 좋아했으며, 누군가와 대화하기보단 차분히 혼자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또 그에게 건넨 물음이 귀찮고 진부한 훈계와 세상에 대한 환멸로 돌아올까 걱정됐다.


 그렇게 몇 분, 차는 어둠을 타고 흐르며 신호등을 네 개쯤 지나쳤고, 하품이 두 번쯤 쩍쩍거릴 무렵, 나는 다시 마음을 먹었다. 역시 가만히 보내기엔 아까운 시간이었다.

 “저, 제가 택시기사님들 얘기로 글을 쓰고 있는데, 찾아보니까 참 힘든 일이 많으시겠더라고요. 많이 힘드시죠?”

 정작 마음을 먹었지만, 온갖 쑥스러움을 담고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난 이 수간의 선택을 두고두고 자랑스러워하게 됐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러십니까?”

 담배를 오래 핀 탓인지 걸쭉하게 쉰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웃음은 호쾌했다. 그리고 머쓱해하는 나보다 훨씬 담담하게 또 밝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 또한 이 새벽이 심심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있는 공간은 늘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되어있었으니까.

 그는 고작 ‘많이 힘드시죠?’ 한 마디에 뭐 그리 쌓인 게 많았는지, 맞장구 한 번 쳐주기 어렵게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그의 네 마디에 한 번씩 겨우 맞장구를 쳐줄 뿐이었다.

 “거 그쪽 청년은 우리 월급이 얼마인지 알아?”

 기사 아저씨는 택시 기사들의 평균 임금과 현실로 포문을 열었다. 그들은 기본급 70~80을 건사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더 벌기 위해서는 하루 15시간의 노동도 불사했다. 또한 그는 그들이 결코 투 잡이 아님을 강조했다.


 아저씨는 택시 기사들이 얻게 되는 각종 병들에 대해 토로하면서도 자신은 아직 정정한 편이노라 자신했다.

 또한 진상의 얘기를 할 때는 끝도 없었다. 나름의 자료 조사를 겪은 내가 듣기에도 아주 기상천외한 진상들이 많았다. 택시 안에 오바이트를 하거나 돈을 내지 않고 도망치는 것 정도는 예사였다. 오히려 폭력이 없으면 고마울 정도였으니까. (이 글을 빌어 택시에도 버스처럼 운전자 보호 칸막이가 생기길 빌어본다.)


아무튼 그 사이에서도 아저씨는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수많은 진상에도 무작정 당하기만 하지 않는 자신의 당당함을 어필했던 것이다. 참 대단한 일이었다. 아저씨는 택시기사가 겪는 온갖 핍박과 각박한 현실을 토해내는 순간조차도 밝고, 호탕했으니까. 아저씨 특유의 걸걸한 웃음소리는 호쾌를 넘어 통쾌할 지경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기사 아저씨들의 고난이나 진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들의 삶에 애잔함을 느끼길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내가 만난 아저씨는 그런 동정을 바라지 않았으니까.

 

 정말로 그는 자신의 녹아내리는 이빨을 얘기할 때조차 당당했다.


 난 아저씨의 이야기에 매료돼 시간 가는 것도 모르고 맞장구를 쳐댔다. 그날 내가 화두를 꺼낸 것은 처음이 곧바로 끝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차는 목적지에 도착해있었다. 익숙한 도로, 익숙한 표지판, 익숙한 우리 아파트가 창문 너머로 보였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었고, 아저씨는 미터기를 멈췄다. 분명 할증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적게 나온 금액. 나는 한 순간이나마 불신했던 아저씨에게 마음으로 사과했다. 이제 저 요금을 치르고 나면 나는 세상 가장 안전하다는 이불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내리지 않았고, 아저씨의 얘기도 그치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는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흘러갔다. 아저씨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냥 떠나보내기엔 아쉬운 순간이라는 것을. 비록 50대인 아저씨와 20대인 나 사이엔 수많은 나이와 경험의 갭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 날의 택시 안에서만큼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다를 바 없었다.

 아저씨는 귀중한 택시 영업시간을, 나는 밀려오던 졸음을 제쳐두고, 당시 2월 1일 한창 차갑던 밤공기와는 다르게, 개나리꽃으로 택시 안을 수놓았다. 정말로 이르게 찾아온 봄이었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시간은 어느새 2시 30분을 향해가고, 우리의 웃음소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항상 잡고 있을 수 없기에 또 빛나는 순간이지.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마무리 짓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고정시킨 두 눈에 서린 쑥쑥 함이 그리 정겨울 수 없었다. 멀뚱함이 서린 내가 아저씨를 바라보자 아저씨도 마주 보더니 씨익 웃어주셨다. 술을 마신 것은 난데 아저씨의 얼굴도 제법 붉어보였다. 내가 잠이 와서 그랬던 거겠지? 나도 피식- 웃고 말았다. ‘감사합니다.’도 아닌 ‘고맙습니다.’라… 그 말이 계속 입에 남았다.

 “아니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우리는 끝으로 쑥스러운 웃음을 나눈 후 이별했다. 내려선 아파트 단지의 공기는 차가웠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막내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쳤으나, 그 밤의 나는 기꺼웠다. 그 순간이 고맙고 뜨거웠고, 그래서 모두에게 나누고 싶었다. 그 당시에도 당장에 폰을 들어 아직 잠들지 않았던 연인에게 문자를 보냈더랬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정말 재밌게 잘 이야기했노라고. 하지만 그러고도 온기가 남아 이렇게 글로 적게 되었다.

 물론 따져보면 따뜻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를 믿지 못해 잠을 자는 대신 말을 건 것이고, 말을 건 목적조차 자료를 조사하겠다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에게 건넨 말 ‘많이 힘드시지요?’는 어쩌면 이기가 가득 찬 위선 된 호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호의에조차 아저씨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과연 내가 조금이라도 더 진실되고, 조금이라도 더 큰 호의를 건넸다면 어땠을까? 늦은 밤 음료수라도 한 잔 건넸더라면? 답은 그날 밤 택시 안에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날을 떠올리면 개나리 꽃이피는 내 가슴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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