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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Mar 22. 2016

느리게 걷기 - 치유 에세이

외로움을 안아

 아이는 느리게 걸었다. 몸집이 커서인지 아니면 다리가 두껍고 둔해서인지는 몰라도, 아이는 어릴 때부터 느리게 걷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의 걸음이 얼마나 느렸느냐고? 아아, 그 아픔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아이의 친구들이었다. 아이와 같이 걷는 친구마다 늘 똑같은 얘기를 했다. 왜 이렇게 느리냐고, 답답하다고. 화를 내며 뒤에서 밀어줄 정도였다. 몇몇은 아이를 기다려 걸음을 늦췄지만, 더러는 아이를 버리고 갔기도 했고, 먼저 가서도 기다려야 한다고 화를 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떡하랴? 다리가 굵고 짧은 아이의 발은 느렸다. 하지만 바꿀 생각도 그다지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는 느리게 걷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왜 좋았느냐고? 그 시절 아이는 외로움을 많이 탔다.(사실은 아직도 그렇다.) 그런 그에게 빨리 걷는 행위는 끝없는 고독의 연속이었다. 아이에게 빨리 걷는다는 건 그랬다. 둔한 발을 서두르려면, 넘어지지 않으려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눈앞의 돌부리를 피하는데도 전심이 필요했던 아이가 주변을 둘러볼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빨리 걷는 순간 동안의 아이는 언제나 혼자였다. 친구와 대화도 없이, 그렇다고 주변을 둘러보지도 못한 채, 두 발만 앞으로 내딛는 혼자.


 반면에 아이가 느리게 걷는 동안은 그는 덜 외로웠다.(당시의 아이에겐 그게 최선이었다.) 그는 귓바퀴에 이는 바람과 인사를 나눴고, 벽에 새겨진 세월의 금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이름 모를 풀꽃과 나무들은 바람결을 따라 노래했고, 매연 가득한 도로 옆 화단에서도 기운찬 벌레들은 언제나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또 그런 날이면, 아이의 머리 위로 비치는 황금빛 태양은 그 자체로 완벽했고, 흐린 날의 무거운 공기와 애처로운 하늘, 그리고 젖은 흙냄새는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느리게 걷는 게 좋았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이는 깊이 사고하는 것을 좋아했다. 빨리 걷다 보면 머릿속이 새하애져 할 수 없는 그런 사고 말이다. 아이는 느리게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또 자신에게 깊이 헤엄쳐 탐구했다. 아이는 그렇게 성장하는 자신이 좋았다. 또 아이는 그때도 알고 있었다. 자연 속의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할 대보다, 내면과 이야기할 때가 훨씬 덜 외롭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귀를 닫고, 시선은 멍하니 멈춘 채 세상과 동떨어져 혼자 걸었다. 그럼에도 외로움은 없었다.

 

 그럼 아이는 빨리 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아니, 물론 아이가 빨리 걸을 때도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거나, 수업에 지각을 할 것 같은 날이 그랬다. 그런 날이면 바람결에 실려 오는 인사도, 올망졸망한 친구들의 지저귐도 듣지 못했다. 깊은 생각 대신 매 초, 매 분을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이가 아니었다. 서두르고 전전긍긍하느라 작아질 대로 작아진 자존감만이 있을 뿐. 아이는 그게 싫었다. 자괴감과 조바심도, 서두르며 놓쳐버린 친구의 얼굴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느리게 걷는 것이 좋았다. 느리게 걷는 것이 좋은 이유는 많고, 빨리 걷기가 싫은 이유도 많았으니 완벽한 결론 이리라. 그 뒤로 나는 느긋하게 약속을 잡았다. 기왕이면 약속시간에 10분, 20분 일찍 나가 기다렸고, 먼저 도착한 날이면 주변을 걸으며 즐겼다. 늦은 이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미안해했으나,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나는 그들을 기다리는 10분, 20분 동안 빨리 걸어서는 3일이 걸려도 얻을 수 없는 풍부한 질감의 공기와, 또 한 줄의 깨달음을 얻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외로움 속에서 태어나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던 나라는 존재가 외롭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끔 휴식을 두려워한다. 오늘의 여유가 내일의 뒤쳐짐이 되고, 모래의 멈춤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글쎄, 나는 달려 나가는 길들이 훨씬 두려웠다. 등하교하는 아스팔트나, 친구를 제치며 뛰어가던 성적표나 모두 두려웠다. 그리고 감히 예측하건대, 지금 서두르는 이들 중 몇몇은 나와 같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단지 지금 서두르고 있는 발걸음 탓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내가 나를 발견했듯이, 어쩌면 당신도 당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바쁜 세상이다. 감히 서두르지 말라는 말 한마디 조차 하기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너무 외롭다면, 나 감히 말하건대 나라도 친구가 되어 줄 테니 그대 잠시 여기 머물러 보자.


다리가 굵고 짧던, 어린 날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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