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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Mar 17. 2016

오만 - 치유 에세이

글쓰기의 시작.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봐왔다, 아픈 사람들을. 그들은 멀쩡한 두 다리로 걷고, 멀쩡한 두 팔을 쓰며, 멀쩡한 두 눈으로, 코로, 입으로, 멀쩡한, 멀쩡, 멀쩡했지만, 멀쩡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심장 어딘가(그러니까 좌심방과 우심실 사이쯤?) 문제를 안고 있었다.

 심장병이냐고? 글쎄, 그보다는 육체 안에 존재한다는 어떤 정신체의 병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리 비싼 밥을 먹고, 비싼 옷을 입어도 그들은 시름시름 죽어갔으니까. 아니, 더러는 죽어있었지.

 그들은 내가 어릴 때부터, 스스로 먹고 입는 지금까지도 그들은 내 주위를 맴돌았다. 아니, 이것도 아니다. 사실은 모두 그들이었다. 나의 어머니와 누나,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와 이 글을 읽는 당신까지도. 우리는 크든 작든 쓰린 상처들을 안고 있었다.


 치기 어린 나는 안쓰러웠다. 그러니까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왜 우리는 모두 아파야 할까?’ 혹은 ‘아플까?’라고 생각한 것은. 모두 아픈 우리는 자신이 아픈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아파해야 했으니까. 젊은 날의 나는(물론 지금도 젊지만.) 고민했다. 짧은 인생 중 꽤 오랜 시간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찾지 못했다. 우리는 왜 아픈가를. 사실 자신들도 몰랐다. 알든 모르든 아팠다. 우리는 우리가 아픈 이유를 몰라 아팠고, 욕심과 꿈과 돈과 희망 때문에 아팠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때문에 아팠다. 아직 온전하지 못한 자신과 그런 자신들이 부딪치게 되는 불완전 연소 때문에 아팠다. 아주 두루뭉술한 결론이지 않은가? 그래서 말했잖은가,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맞다. 굉장한 오지랖이었다. 어쩌면 나의 아픔의 원인은 오지랖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어쩌랴? 내 정신체가 아프시겠다는데. 별수 없지. 나는 내 인생 가장 오만한 선택을 했다. 어떻게?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감히 내 글로써 그들을 치유하고자 했다. 나의 글이 세상 모든 아픔을 해결하는 호랑이 연고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상처에는 꼭 맞는 후시x이 되리라 믿었다.


 쓰고 나니 허무하다. 그다지 특별하지도 드라마틱한 서사구조도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게 나의 시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오만할 수 있었고, 또 그렇기에 가장 나다울 수 있었던 시작. 지금 생각해보면 좀 우습지만, 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는 시작.

 나는 나의 시작을 이렇게 칭한다. ‘아주’, ‘오만한’, ‘시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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