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업계포상 Mar 29. 2016

쓴다는 것 - 치유 에세이

다시 돌아오다.

 나는 4학년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 아니라 대학교 4학년이다.(초 4면 군대를 다시 가야…) 이제 수업은 몇 남지 않았고, 취직을 준비하는 시기. 하루하루 골머리를 썩고 있다. 해본 것이라곤 글 써서 책 내기, 또 연극밖에 없는 놈이 취업을 준비하려니 뭐 이리 모자란 게 많은지, 나는 그 흔한 토익점수 몇 백,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었다. 심지어 자격증이나 토익은 시험을 치긴커녕 공부를 해본 적도 없었다.


 내게 존재하는 것은 세 번의 무대 경험과 한 번의 출판 경험뿐이었다. 과연 이런 나를 어느 회사가 받아줄까? 생각할수록 갑갑했다. 어떤 회사에서도 필요하지 않은 재원일 것이다. 이런 스펙이라면 최소한 경력이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조차 쉽지 않았지.


 검색하고 검색할수록 외롭고, 두렵고, 진절머리가 났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들개가 되었다. 아침이면 머리를 내밀었다가도 밤이면 다시 돌아와 알랑거리는 들개 같은 존재. 나는 세상에 치이고 취업에 치일 때마다 글로 돌아왔다. 쓰고 또 썼다. 그리고 썼다. 내게 글을 가르쳐준 책 속의 선생님 말대로 뼛속까지 내려가 썼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저 )


 나는 나의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를 내게 안겨준 사회에 대한 분노로 쓰고 또 썼다. 그런데 웃긴 것은, 난 분명 눈물 흘리는 마음으로 혹은 화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이 지난 나는 웃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 웃음 속엔 외로움도, 불안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재미’, 재미만이 있었다.


 세상이 나를 내몰수록 나는 글을 썼고, 글은 언제나 나를 초원 위 양털 사이로 인도했다. 그 속에서 나는 알레르기 섞인 재채기 한 번 없이 포근히 안식을 얻었다.

 참 웃긴 일이었다. 이런 꿈을 가진 탓에 지지리 벌어먹지도 못할 것 같아 걱정인데, 글은 자꾸만 나에게 안락을 전해주었다. 그 어떤 분투도 자신과 함께라면 이겨나갈 수 있을 거라 헛된 바람을 집어넣었다.

 참 바보 같은 일이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조차 너무 재미있어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 이것은 분명히 꿈이다. 몽마가 물어온 달콤한 꿈. 내일이면, 아니 오늘이라도 잠에서 깨면 나는 또 현실의 호주머니와 굶주린 미래를 안고 시름해야 하겠지. 지금이라도 취업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불안에 떨어야 하겠지.


 그런데 너는 왜 이다지도 즐겁단 말이냐? 어려운 세상에 더한 빈곤을 몰고 다니는 주제에 뭐 그리 행복하단 말이냐.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멈출 수도 없었다.

 참 억울한 일이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 못한 4학년 취준생 주제에 글이 이토록 재미있다는 것은.  참 갑갑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고 싶고, 그럴듯한 스펙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내일이면 교통 대금이 빠져나갈 것이고, 모레면 식비가 내 목을 조르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느냐? 이리도 글이 좋은 것을. 나는 지금 몽마의 꿈에 취해있다. 그러니 아직 꿈이 깨지 않았을 때, 그리하여 아직 마음이 꺾이지 않았을 때,  어서 나 다운 글을 많이 써둘 수밖에, 지금은 그냥 글이나 쓸 수밖에.


 수많은 실패 그 끝에서 다시 글을 쓰게 되던 날. 이 한미루 쓰다.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밤, 택시 안에서 - 치유 에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