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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Apr 24. 2016

가혹한 마라톤!

자신에게만,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라인 앞에 서있었다. 굳은 얼굴에는 나름의 결의, 각진 다리에는 나름의 세월. 모두는 같은 골을 노리지만,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거대한 파도는 출렁였다. 들이마시는 것은 각오. 내뱉는 것은 긴장. 모두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똑같은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골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겠지. 이 속도로 세 시간을 달리면, 혹은 네 시간을 달리면 도착하리란 것을. ‘연습했으니까’ 마음을 다스리겠지. 하지만 여전히 골은 보이지 않았다. 또 그런데도 그들은 달릴 것이었다.


 무모해 보였다. 골도 보이지 않는데.

 무모하지 않았다. 그래도 골은 있으니까.


 땅! 화약 냄새 매캐한 총알 한 방에 모두 달려 나갔다. 아니, 누구는 빠르게 걸었다. 속도는 저마다 천차만별, 시작부터 영역이 나뉘었다. 처음부터 앞질러 달려 나가는 이들, 어디서 시작했던 뒤로 처져나가는 이들, 자기의 페이스대로 흩어지는 원자들, 그리고 중간지점쯤의 군중들. 어디나 존재하는 뭉친 무리들. 그들은 개인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든 마라톤 트랙에서는 비슷한 속도를 내며 달렸다. 어쩌면 잃어버린 자기 자신, 하지만 누군가에겐 안정. 그들은 뭉쳐진 덩어리라 안정을 느꼈다. 누가 그들을 욕할 수 있을까? 무리에 속하기 위해서 만이라도 엄청난 노력을 했을 터인데.


 모두의 다리는 움직였다. 내딛었다. 달렸다. 길은 뻗어있다. 결코 일자는 아니었다. 좌우로 휘기도,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길은 뻗어있었다. 골까지. 끝까지. 꼭. 정해진 거리 뒤에는 무조건 골이 있었다. 얼마나 왔는지 알 수 없어도, 또 얼마나 가야할 지도 알 수 없어도, 골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알아도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지.


 가다보면 무릎이 시릴 것이다. 이런, 발목도 아플지도. 체력은 바닥나고 호흡은 얕아지겠지. 발바닥은 불이 나고, 돌멩이는 구석기 시대의 위엄을 자랑할 거야. 손을 잡아주는 이? 아무도 없을 걸? 이건 경쟁이니까.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도 자신과의 싸움이라지? 심지어는 3시간만 뛰면 도착할 줄 알았던 골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싶겠지? 난 3km만 뛰어도 그런데. 목도 마르고, 힘들고, 다리고 아플 것이었다. 왜 뛰고 있는지 모르겠고, 그만하고 싶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왜 다들 끝까지 뛰는 걸까? 왜 걷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걸까? 왜 모두 골을 향해 가는 걸까?


 , 그 놈이 참 궁금해졌다. 시선을 돌린 그곳엔 고작 하얀 선이 하나 처져있다. 저 선을 통과한다고 엄청난 부나 명예를 얻지도 못할 것이다. 순위가 뒷일수록 더 그렇다. 고작 저거 하나 넘는다고 새로 태어나거나 어제와 다른 내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근데 그들은 왜 뛸까? 1등이 정해지고, 10등이 정해져도, 또 기록으로 의미가 없어진 후에도 왜 멈추지 않을까? 3시간이 넘어 4시간이 흐르고 무리에서도 밀려났으면서 왜?


 저 멀리 작은 점이, 조금씩 근육이 붙고 살이 붙어, 한 인간의 형상이 되어, 1등, 10등이 들어오고, 수십의 숫자를 넘어 무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들어왔다. 저들이 패배자들? 그럼 승리자는 어디 있지? 일렬로 늘어선 관객들과, 먼저 들어온 모든 선수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데? 모두가 그들을 위로하고, 또 자랑스러워했다. 자연보다 거대한 천둥. 이것이 승리?


 하지만 도착한 이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저마다의 아쉬움이 방울져 흐르고 있었다. 땀보다 깊은 물방울. 그렇게 투쟁해놓고 더 잘하지 못했다 고개 숙였다. 이미 최선을 다해놓고, 아쉬워 입술 깨물었다. 그들은 왜 그런 것일까? 그들의 노력, 충분히 보았는데.

 그런데 더 이상한 일.

     

 또 다음 선수가 도착하면,
젖은 눈, 눈물 닦던 손으로 또 박수쳤다. 상대에 대한 대견함에 자신을 보탰다.

     

 왜 그럴까? 그보다 빨랐던 자신의 기록은 아쉬워하면서, 자신보다 뒤의 상대에게 순수하게 박수칠 수 있다니. 나로썬 상상 못할 고차원의 비아냥거림인가? 그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왜? 자신에게는 가혹하고, 남에게는 자애로운 이유가 뭘까? 왜 그럴까? 그들은 대체 왜?


 하지만 마라톤은 이미 끝나버렸다. 찢어진 파도로, 더 짙은 이산화탄소를 뱉어내며. 의문만 불어나 버린 한 편의 드라마. 그들은 왜? 우리는 왜? 나는 왜…?

 하지만 알게 된 것은 한 가지 있었다.


 아, 이래서 마라톤을 인생이라고 하는 거구나. 똑같이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노력했으면서도 슬퍼하니까. 마라톤은 아픈 거구나. 마치, 우리가 그러듯.




 슬퍼하지마세요, 당신은 분명히 노력했으니까. 자신에게만 가혹하지마세요. 당신은 충분히 잘 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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