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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May 05. 2016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작은 천사들.

 4월 23일 토요일. 언제나와 같이 아침을 여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삐롱삐롱- 친구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친구는 마침 근처에 있다며 얼굴이나 보자는 말을 건네 왔다. 흐음- 고민했다. 아르바이트를 끝낸 후는 언제나 지쳐있었으니까. 이런 저런 변명이 피어올랐다. ‘가봤자 오래 있지도 못할 텐데….’, ‘남자 둘이서 뭘 하지?’ 등등. 길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녀석이 보고 싶기도 했으니까.


 사실 몇 개월 전만 해도 지긋지긋하게 마주하던 녀석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학년인 탓에 수업도 과제도, 심지어는 공모전도 모두 같이 했었지. 그런데 이번 학기에 들어 친구는 휴학을 하고, 나는 계속 재학한 탓에 볼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친구는 평일에 일을 두 탕 뛰고, 나는 주말에 일을 두 탕 뛰는 것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아무튼 그렇게 얼굴 맞댄 정이 있는지라 슬슬 그의 근황이 궁금하던 차였다. 결국 한창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부산대를 향했다. 동래역을 환승해서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부산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환승하는데 약 4층 거리를 빙빙 돌아 올라가야한다.) 뭐, 별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얼굴이나 보고, 커피나 한 잔 하려고 했다.


 부산대 역에 도착하고, 친구가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부산대 지하철 역 3번 출구 앞,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무리가 보였다. 얼굴도, 옷도, 체격도 제각각이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무리가. 다만 그들의 목적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조막만한 손 한 아름 무언가를 들고, 행인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또 무슨 기부단체나 종교단체일까? 아니면 자원봉사? 인상이 찌푸려졌다. 물론 그들은 나름의 호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호의가 내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그들의 호의는 불편이나, 거부감으로 다가왔으니까.


 고민했다. 고작 100m도 안 되는 거리를 걷는 동안.

 ‘그들을 적당히 거절하고 갈까? 아, 거절 잘 못하는데…. 아니면 아예 피해서 가버릴까? 어쩌지? 어쩌지?’

 거리는 줄어들었고, 결단은 촉구되었다. 그래, 잘못도 안했는데 피할 이유도 없지. 나는 그들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피해가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들을 피하는 대신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아 거절을 표했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고도 불편함은 여전했다. 그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불편해졌다. 조마조마, 작은 내 가슴이 콩닥콩닥.

 그리고,


 인생은 언제나 부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방향을 따라 일어나는 법이었다.


 “저기요….”

 이어폰으로 막아놓은 미약한 저항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불편함을 채 해소하지 못한 어색함으로 어정쩡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어떤 교리를 강요하지도, 또 선행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딱 두 마디를 했다.


 “아이스크림 드시고 가세요.” 그리고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쑥스러움 만연한 아이의 얼굴. 그는 굳어있던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어주고는 도망치듯 돌아서 버렸다. 멍했다. 그렇게 힘이 없어 보였나? 아니, 그들은 모두에게 평등했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이것 좀 드시고 가세요.”,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어요.”


 하하, 참. 의미 없는 이어폰을 뺐다. 손 안의 아이스크림을 보았다. 2단으로 쌓인 소박한 아이스크림. 하하, 이것 참. 한 입 베어 물자, 살짝 녹은 아이스크림이 입안을 흥건히 적셨다. 달콤했다. 내가 지금껏 먹어본 그 어떤 아이스크림보다. 하지만 달콤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억 배는 더 달콤했으니까. 하하,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나, 위로 받았구나.


 지금 힘이 들지도, 지쳐있지도 않았는데…. 위로 받았다. 뜨거운 위로. 아직도 분주히 위로를 전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또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말았다. 내가 지금껏 놓치고 있었던 것을. 치유의 글쓰기네 뭐네 겉멋만 잡으며, 사실은 치유가 뭔지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사실 위로는, 아니 치유는 지치고 힘든 이들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크거나 작은 자신의 문제를 안고 있기에. 그걸 알고 있음에도, 지금 잘 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응원은 잊어 버렸다. 우리는 모두 힘과 위로가 필요했는데….


 이제야 알았다. 훨씬 어린 선생님들에게 배웠다. 대단하신 분들이었다. 어디서 온 분들인지, 뭐하는 분들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나보다 족히 10년은 어린 선생님들은 나보다 족히 10년은 빠르게 세상에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오밀조밀 손으로 쓴 현수막 하나 들고, 쑥쑥한 마음 가리며. 나 비록 소심한 탓에 선생님들에게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또 글재주가 미천한 탓에 조금은 늦어버렸지만, 지금이라도, 이 글로라도 그들의 마음을 나눈다.

 힘들었죠?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너와 나를 위해. 이 한미루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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