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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May 31. 2016

캘리, 박살내기 - 치유 에세이

걱정 좀 그만해!

 캘리그라피 수업을갔다, 상당히 못된 마음으로. 어떤 마음이냐고?


 내 연인은 캘리그라퍼다. 그럴듯한 자격증도 없고 아직은 학생이지만, 공모전 수상경력과 8개월 여의 연습기간을 거친(또 아직도 연습 중인) 캘리그라퍼다. 그런 그녀가 말했다, 캘리그라피 수업에 가보고 싶다고.


 "좋지 뭐, 한 번 가 봐."


 그러라고했다. 나는 그녀의 예술활동을 응원하니까. 그렇게 하루, 또 이틀. 수업을 기다리며 눈을 반짝이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시간이 아까워졌다. 그녀가 수업을 받는 수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길게 데이트를 할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덩달아 신청해버렸다. 색다른 데이트가 되지 않을까? 그녀의 밝은 표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상당히 못된 마음이지? 인정한다.


 내가 제일 후회했으니까.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강연을 신청해 버렸구나.

 내 연인만해도 캘리를 진지하게 생각하고있었다, 단순한 취미 이상으로. 어쩌면 다른 수강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이들이 모이는 자리를 고작 '데이트 해야지'하는 마음으로 신청해버린 것이다. 예술의 숭고함을 해친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어쩌지, 어쩌지…."


 이미 보내놓은 신청서, 입금한 돈 탓에 되돌릴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방해라도 되지 않게 얌전히라도 있는 수밖에.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고작 그 정도. 걱정의 씨앗은 미안함의 비료를 먹고 자라났다. 그 거대함이 B-612행성을 잡아먹은 너도밤나무가 될 때 쯤, 수업날 아침이 되었다. 커다란 걱정은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괜찮겠지? 괜찮을까? 아 그러게 왜 신청을 해가지고... 아냐, 작가한테 쓸모없는 일이 어딨어. 성실하게 배우고 오자.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 캘리에 관한 글을 쓰게될 지도 모르잖아?'

 언제나 그렇듯, 소심한 마음은 탁월한 합리화를 불러왔다. 당당하기보다는 덜 부끄러운 마음으로 강의실을 찾았다. 다행히(?) 수강생은 소수였다. 멤버는 총 다섯 명. 강사님과 나, 여자친구 그리고 두 분. 다행이구나.실례스런 안정과 함께 수업이 시작됐다. 캘리가 무엇인지부터 시작된 수업이 간력한 이론을 넘어 실기로 넘어갈때, 강사님이 정곡을 찔러왔다.


 "그럼 실기 시작히기 전에, 여기 오신 이유를 말해볼까요?"

 

 뜨끔, 숙제를 안 해왔던 코흘리개 시절 아침처럼, 그게 그렇게 뜨끔할 수 없었지. 나를 제외한 수강생들은 답했다.

 "혼자하는 연습이 벽에 부딪쳤어요."

 "광고 업에 종사하는데 캘리가 요새…"

 "제가 다섯 달을 배웠는데…"

 그리고 내 차례. 강사님은 웃으며 허를 찔렀다.


 "그냥 따라오신 건가요?"


 쿨, 쿨럭. 그렇게나 정곡을…. 나는 급히 둘러댔다.


 "아, 아뇨. 저도 체험 해보고 싶어서요. 제가 워낙에 악필이라 교정을 좀 하고 싶어서요."


 악필인것도 맞고 교정도 하고 싶었으니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좀 비겁했을뿐. 아무튼 고비는 무사히 넘어갔다. 강사님의 "아쉽지만 캘리는 펜글씨에 전혀 도움이되지 않아요." 라는 말과 함께 실습이 시작됐다. 붓을 들기 직전까지도, 아니 붓을 화선지에 내려놓기 직전까지도 후회했다. 쭈굴쭈굴 짜부라든 자신감이 먹물보다 더 검게 퍼져들었다.


하지만 붓이 화선지를 만나고, 기꺼워 춤을 추는 순간.
걱정은 신기루가 되었다.


 재밌었다. 휘갈겨지는 붓놀음은 어떠한 결과물 없이도 완벽했으며, 내 심상을 글자로 표현해내는 것은 희열이었다. 문장이 아닌 단어를 쓴다는 것을 제외하곤 글쓰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 이럴수가. 나의 붓은 빛을 그렸고, 꽃을 그렸고, 달을 그렸다. 글자 안에는 우주가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내가 있었다.

 나는 120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빠져들었다. 심지어 네 명의 수강생 중 가장 많은 화선지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 결과가 이렇다.


순서대로 춤, 꽃, 달이다.


 참 못썼지? 항상 내가 제일 잘 생겼다는 엄마마저도 글씨는 참 못썼다고 하시더라. 그렇지만 뭐 어떤가? 그래도 나는 재밌었는데. 어느만큼? 옆에 앉았던 연인이 어떤 표정인지, 어떤 단어를 썼는 지도 모를 정도로!


 그래서 참 허무하기도 하고, 아깝기도 했다. 나는 뭘 그리 걱정했던걸까? 물론 그 동기가 옳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막상 닥쳐온 현실은 이렇게 재밌는데. 억울하기도 했다. 차라리 기대했다면 어땠을까?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더욱 짙어졌다. 늘 그랬다. 매일을 걱정 속에 살았고, 막상 현실에 부딪칠때면 걱정은 신기루가 되어 흩어지곤 했었다.


 '책을 쓸 수 있을까?' '고친다고 나아질까?' '먹고 사는건?' 등의 글 고민부터,

 '아, 면접 봐도 안될 것 같은데….' '내가 이 밤에 치킨을 왜 시켰을까' 등의 인생 전반에 걸친 고민들까지.

 나는 늘 전전긍긍했고, 확정나지 않은 모든 것을 두려워했다. 그럴때면 내면에 '합리성'이라는 소악마가 날뛰며 합리화를 하곤 했었지.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걱정의 범위 밖에서 일어나곤 했다. 안 먹으려고 했던 치킨도 눈앞에 있으면 먹게 됐고, 글도 쓰다보니 어느 순간 책이 되었다. 심지어 제법 팔리기도 했다. 그래, 막상 부딪친 현실은 걱정보다 가벼웠다. 언제나.


 그런 경우가 있다. 걱정이 걱정을 불러 더 큰 걱정이 되는, 그리하여 현실보다 더 무섭게 변하는 경우가. 그럴때면 오히려 현실에 부딪친 후에 안도를 느끼기도 하고, 빨리 D-day가 되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의 손톱을 물어뜯으나, 설렘에 부푸나 같은 시간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웃으며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우리는 많은 걱정을 한다. 그리고 그 걱정의 끝에는 대부분 두려움이나 포기가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안다, 당신이 지금 자신이 없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지금 불안하다는 것을.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당신의 걱정의 끝에 포기가 아닌 도전이 있었으면 한다. 어쩌면 당신도 나처럼, 불량한 걱정 끝에서도 고귀한 성취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도전하라. 당신의 인생이 더 풍부해질것이다.




표지 캘리 협찬 limonmojito (#인스타)

못 쓴건 제가 쓴겁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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