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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Jun 08. 2016

특명! 스노우 브라더스를 격파하라!!

지나고 나면 - 치유 에세이

 5월 20일 금요일.

 친구 세 명과 함께 학교 앞 레트로 카페를 찾았다. 레트로 카페란 별도의 이용요금 없이, 음료 가격만 내고 고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만든 이색 게임 카페를 말한다. 즉, 그 자체로도 추억이 가득한데 가격까지 싸다는 뜻이다.


 우리가 찾은 레트로 카페는 입구부터 대단했다. 90년대의 향수를 그대로 간직한 게임팩들부터 게임보이 어드밴스, 닌텐도, 제닉스, 슈퍼 패미콤, 플레이 스테이션 등의 가정용 게임기는 물론 오락실 게임기까지 두루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추억으로 걸어 들어갔다. 알라딘, 소닉, 위닝 수많은 게임들은 이름만으로 소년시절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제일 눈을 끈 것은 단 하나의 게임, 스노우 브라더스 2였다.


90년대 꼬마들의 가슴을 설레게했던 화면이다.


 스노우 브라더스2는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문구점 앞을 점령했던 게임이었다. 모든 적을 한 번에 처리하면 보너스를 주는 시스템이 있어서 대부분 원 코인 플레이를 하면서도 하이 랭크를 노렸었지. 또 스노우 브라더스란 이름답게 모든 유저가 스노우맨을 고르곤 했었다.


왼쪽 끝이 스노우맨. 물론 정식 명칭은 아니다.


 위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모두 원코인 클리어를 하는 것처럼 썼지만,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게임이었다. 모든 적은 한 큐에 처리하는 통칭 '싹쓸이'를 하긴 커녕, 2판 보스인 카멜레온을 깨기도 어려웠으니까. 가끔은 친구와 힘을 모아(혹은 자본주의의 도움을 받아) 2판을 깨기도 했지만, 이어진 3판이 되면 또 다시 좌절과 절망, 인생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나에게 끝판왕은 언제나 오락실 폐인 형아들의 어깨 너머로 훔쳐봐야햇던 존경의 상징이었지.


 역시 같은 세대는 추억조차 공유한 것일까? 친구들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노우 브라더스 앞에 앉았다. 코인 하나 씩을 연결하고, 우리가 고른 캐릭터는 물을 쏘는 녀석과 날개가 달린 녀석. 왠지 늘 스노우맨만 했던 기억에 다른 캐릭터를 선택해보았다. 그리고 이내 시작한 게임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게임은 믿을 수 없을만큼,
너무나도 쉬웠다!

 

 숱한 세월을 넘어온 탓일까? 아니면 롤(LOL)로 단련된 탓일까? 우린 게임 내 사기캐릭인 스노우맨을 고르지도 않았건만, 원코인으로 쭉쭉 게임을 깨나갔다. 적들은 뚜렷한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파악하기 쉬웠으며, 게임 자체도 아주 간단한 조작만을 요구했다. 그러니 쉬울 수 밖에, 우리는 그다지 집중을 기울이지 않고도 파죽지세로 게임을 제패했다. 마지막 보스를 쓰러트린 후, 친구와 나의 반응은 같았다.


 "이, 이게 이렇게 쉬웠나?"


 넉넉히 처줘도 15분이 채 안 되었다. 약간은 허무해진 어린 날의 좌절과 절망들, 친구가 말했다.


 "야, 진짜 나이먹고 깨니까 아무것도 아니네."


 아, 내 마음에 와 닿은 한 마디. 그것은 진리였다. 그래, 당시엔 심각했고, 깊이 고민했고, 부딪쳐 깨졌고, 절망했던 문제들은 많았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고비를 넘은 후에 돌아보는 문제는 언제나 별 것 아니었다. 특히 한 번 해결했던 문제는 다시 부딪쳐봤자 더 쉽게 해결 될 뿐이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수리 모의고사 24번 문제가 그랬고, 내가 연극무대에 설 있을까?하는 고민이 그랬다. 그래, 나이 먹고 난 뒤에 돌아본 문제는 언제나 당시보다 가벼워져있었다. 그게 1kg이든 1g이든.


 다만 당시엔 알수없었을 뿐이지.

 성장이란 오지 않을것 같았다. 부딪치는 문제는 언제나 거대한 어깨를 넘실거렸으며, 단 한 번도 쉽게 뛰어넘어 본적 없었다. 그게 한계인 것처럼, 여기까지가 나인 것처럼. 그저 울지않으려 입술을 깨물고 버텼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의 당신처럼 말이다.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힘들고 벅차다고. 이게 한계인가 절망도 할 것이다. 어쩌면 좌절과 너무도 자주 만나 친구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다. 우리가 부딪치는 문계들은 어마무시한 놈이니까. 적어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 안에 우리의 성장이 포함되어 있다면, 한층 성숙해진 나에겐, 또 너에겐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스노우 브라더스 2가 그러했듯이. 분명히 믿는다. 넌 언젠가 너의 문제를 뛰어 넘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풀리지 않는 문제에 전전긍긍하는 너라면, 또 그것이 너무 힘든 너라면 잠깐 놓아두어라. 놓아두는 것은 평생 멈춰두는 것과는 다르다. 언젠가 다시 다가와 널 절망시켰던 문제 앞에 서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세상은 끊임없이 너를 단련시킬 것이고, 세상을 헤쳐나가는 너의 컨트롤은 나날이 좋아질 것이다.


세월이 흘러 같은 벽앞에 선 우리는 웃을 수 있겠지. 그때 그렇게 괴롭히던 놈들이 고작 이 정도였나?하고.


모자란 내가 할 수 있었듯이, 아름다운 당신도.


 지금 너무나 힘든 당신을 응원하고싶지 않습니다. 힘들땐 잠시 멈춰서서 쉬어갈 줄 아는 당신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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