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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Aug 09. 2017

마약 주스 두 잔이요.

오히려 배웁니다.

 짧게 자른 스포츠머리에, 알이 빛나는 무테안경. 정갈한 양복 잘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가 물었다.

 “여기가… 각 매장마다 레시피가 다릅니까?”

 좁아진 미간, 번뜩이는 안광. 지레 겁먹은 나는 그의 얼굴을 살핀다.

 ‘식품과 사람인가? 아니면 본사 사람?’

 아니, 낯이 익었다. 그래. 분명 두, 세 번쯤 왔던 손님이었다. 언제나 직장 상사와 들어와서는 딸기 요거트 플랫치노를 시켰었지. 날카로운 눈매답지 않게 새콤달콤한 보드라운 음료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에 인상마저 보드라워 보였던 손님이었다.


 “아뇨, 전 매장이 같은 레시피예요. 혹시 맛이 이상하셨나요?”

 레시피, 프랜차이즈 카페에선 예민한 문제다. 매장 사이에서 맛의 차이가 생기면 브랜드의 신뢰도에 금이 가기 때문이다. 많이 주면 많이 주는 이유로, 적게 주면 적게 주는 이유로 사람의 골머리를 썩이는 녀석이다. 그렇기에 난 정량을 준다. 더 줄만큼 내 멋대로 살지도 않고, 덜 줄만큼 팍팍하지도 않다. 하지만 다른 매장이 정량보다 더 주거나 덜 준다면? 분명 맛의 차이가 생기겠지. 하지만 그건 그 매장들의 잘못….

 아니, 아니다. 다 필요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혹시 내가 만든 음료가 별로였을까?’ 그것뿐이다. 나는 조마조마한 심장을 숨기며 두 눈에 걱정을 담는다. 머리는 여전히 분주해 순간의 변명과, 이후의 대처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고민은 허무로 돌아갔다.


 “아뇨 다른데서 먹으면 여기 같은 맛이 안 나더라고요. 오늘도 그걸로 주세요. 딸기 요거트 플랫치노.”

 너털웃음과 함께 전해진 말. 덩달아 안도한 나도 마주 웃는다.

 “하하, 네. 알겠습니다.”

 손님은 다시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혹시 뭐 비장의 레시피라도 있는 거 아니죠?”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짜 정량 그대로 만들어요.”

 괜히 치솟은 어깨가 ‘제가 좀 합디다.’라고 말하려는 걸 겨우 구겨 넣었다.

 “아닌데, 뭔가 다른데….”

 손님은 있지도 않은 수염을 쓸며 자리로 돌아갔고, 난 괜히 흥얼거리며 음료를 만들었다. 혹시나 아직 의심하고 계실까 계량에 계량을 더해. 아뿔싸, 이런. 저절로 박자를 타기 시작한 몸에 80ml를 맞춰놓은 우유가 출렁, 110ml가 된다. 다시 덜어내 80ml를 만들었다.


그게 이 녀석이다. 레시피 조작의 혐의를 받고있는 딸기 요거트 플랫치노. (어설픈 사진 실력에 워터마크가 끼어들었다...)


 그동안에도 우렁찬 손님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아, 이 집이 뭐가 다르긴 다른데, 뭐가 다른지를 모르겠어요.”

 그의 맞은편엔 다리를 척 꼬운 채, 소파에 몸을 맡긴 상사가 앉아있었다.

 “마, 딱 보면 모르겠나. 좀 더 부드럽다 아이가!”

 “그런가?”

 “그래. 덜 갈리면 퍼석퍼석하고, 많이 갈리면 물 돼 뿌는데, 여긴 그게 딱 맞다니까.”

 “아 그건 그렇네요.”

 “그게 기술인 거지.”


 구수한 사투리에 숨어 날아드는 칭찬. 불이 붙는 희열. 나는 히말라야보다 웅장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부드러움? 그럴 수 있지. 요거트 플랫치노라는 게 무진장 안 갈리거든…. 두 번, 세 번 더 갈아야 하는데 그건 귀찮고 레시피랑 상관도 없어. 그냥 개인의 마음에 달린 일이지.

 그래, 그랬구나. 나는 높게 솟은 콧등이 무거워 몇 번이고 끄떡거리며 음료를 담았다.

 “딸기 요거트 플랫치노 나왔습니다.”

 미스터 젠틀 스마트 핸섬 안경 손님은 음료를 받으러 와서 또 한 마디를 툭 붙였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하세요?”

 그 말이 꼭 나 있는 시간에 오겠다는 말 같아서 좋았다. 괜히 즐거워진 나는 몇 마디 웃으며 주고받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는 내가 있는 시간만 찾아왔다.

 “아, 이번에 저어기 있는 이디야 가봤는데, 역시 달라달라. 늘 먹던 걸로 두 잔 주세요.”

 “늘 먹던 걸로요. 두 잔.”

 “먹던 걸로요.”

 “그거요.”

 점점 줄어들던 ‘딸기 요거트 플랫치노’는 결국 ‘마약 주스’라는 이름으로 수렴했다. 그는 문을 힘차게 열면서 이미 ‘마약 주스 두 잔 주세요!’를 외친다. 덩달아 우렁차게 대답하는 나는 언제나 양은 푸짐하게, 얼음은 부드럽게 갈아서 음료를 준비한다. 그동안 우리는 몇 마디쯤을 더 주고받았고, 숫기 없는 나는 많은 걸 묻지는 못했지만, 문 너머에서 아저씨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부터 이미 들뜨곤 한다. 아직도.


이 글의 초안이 적힌 노트와 그것을 적은 펜이 마약주스를 숭배하고있는 사진이다.


 사실, 나는 내가 이전에 내어줬던 음료를 기억하지 못했다. 과연 내가 그 날의 음료에 최선을 다했을까? 그리 자신감 넘치지 않았다. 나는 매 순간 성실하고 정성스러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어쩌면 그냥 내놨을지도 모르는 많은 음료들에 앞으로는 더 큰 정성을 담으리라는 것.


 우리는 돈을 받고 음료를 내어주는 그 단순한 메커니즘 속에서, 그 돈과 그 음료 한 잔의 가치보다 더 무수한 것들을 주고받곤 한다.




 이 날, 칭찬에 홀린 나는 괜히 내가 먹으려던 팥 플랫치노에 요거트 파우더를 때려 붓는 과오를 범하고야 말았다. 녀석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상한 팥' 맛이었지. 하지만 그 괴상한 맛조차 즐거웠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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