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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Jun 21. 2021

불행 백신은 어디 없나요

코로나 바이러스의 백신 수급 이야기가 바로 며칠 전에 언론을 달궜다. 

어떤 기사에서는 올해 7월이면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보아도 그건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백신이라도 맞자마자 바로 면역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이런 백신 이야기가 또 한 번 불쑥 튀어나오니 

내 머릿속에도 기이한 바람이 부는 게 아니던가. 

인간의 불행을 예방해주는 백신은 어디 없을까, 라는 뚱딴지같은 상상을 해본 거다. 

불행. 살면서 몇 번은 걸치게 되는 불행에 인간은 면역이 될 수 없는 걸까. 


불행은 어디서 오는가. 뜻하지 않은 사고.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모든 불행은 과연 사고로 여길 만하다. 대부분은 타의에 의한 불행이지만, 

또 어느 때에는 스스로가 불러일으키는 불행. 

야속한 세상 때문에 벌어지기도 하다가 야속한 사람 때문에 벌어지기도 하는 불행. 


불행 중에서 가장 단순한 것은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불행이다. 

사람은 태어날 적에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고 태어나는지라, 

갓난아이 때에는 손에 닿는 거라면 뭐든 움켜쥐려 한다. 

눈을 뜨고 말을 하는 것보다도 인간에게는 소유하는 것이 먼저인 거다. 


그러나 사람은 곧 자라 깨닫게 되노니. 세상은 아득할 정도로 거대하지만, 

인간은 쌀 한 톨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도 그만하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어떠한가. 마음은 달보다도 커질 수 있고 태양보다도 커질 수 있으며, 

종국에는 이 우주와 다르지 않을 만큼 불어나지 않던가. 

그러니까 인간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바라기보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훨씬 더 많이 바라게 된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바라고 바라다가, 이내 그런 것들을 가질 능력이 안 된다는 걸 깨닫고는, 

우리는 가져본 적도 없는 것들에 상실감을 느낀다. 그렇다. 

상실이라 함은, 소유했던 것들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은 우주만 한 마음을 가진 만큼, 또 우주만 한 상실을 겪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소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데, 

상실이라는 것은 그 많았던 노력이 허무하도록 단순하게 이루어진다. 

행복을 갖기는 어려우나 불행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은 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녕 인간이 최소한의 불행을 막기 위해선, 

무언가를 가질 욕심을 버리는 것만이 방법일까. 

예전에 한창 이슈였던 ‘무소유’가 그 해답인 것인가. 

삶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으랴. 

역시나 우리 삶을 수렁에 빠뜨리는 것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실망’에 지나지 않을 눈꼽만 한 불행 때문에 우리가 걱정할 리는 없다. 

삶을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불행.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똑같은 사람이지만, 

반대로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 아니겠는가. 

저마다 불행의 원흉을 품고 살아가는 거다. 여기도 불행, 저기도 불행. 

불행과 불행이 부대끼며 살아가니 사회가 복잡하고 일상이 피폐해질 수밖에. 


과연 인간은 인간을 멀리해야 불행을 덜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째서 선한 사람들만 만날 수가 없는 것일까. 

스스로가 선하지 않기 때문에? 옳다고 치자. 

그러면 선한 마음을 갖는 것을 시작으로 불행을 예방할 수 있단 말인가. 

안 될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이상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미리 알고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넷상이라면 모를까 현실에서는 불가한 일이다.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게다.


행복을 늘리는 것으로 불행을 몰아낼 수 있을까. 

행복의 총량과 불행의 총량은 같을까, 아니면 다를까. 

다르다면 또 얼마나 다를까. 행복의 총량이 더 커다랄까, 불행의 총량이 더 커다랄까. 

희망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아마도 행복의 총량이 불행의 총량보다 훨씬 더 커다랗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거다. 

행복한데도 정말로 그것이 행복인 줄을 모르며 사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 사실은 불행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행복에 예민해지는 거다. 

사소한 행복에도 기뻐하고 감사해하고. 

그러면 우리는 불행을 온전히 막아내지는 못하더라도, 

보다 일찍 몰아낼 수는 있지 않을까.


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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