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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Jun 24. 2021

가면을 모으자

심리학자 융에 의한 사회적 가면이라는 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흔히 본심을 숨기고 

얼굴에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들을 보고 ‘무서운 사람들이네…’라며 선을 그으려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심 속으로 되뇌고 있을 거다. 

가면을 안 쓰고 속을 다 드러내고 사는 것이 오히려 손해 보는 세상이노라고.


나로 말하자면, 가면이 참 많았다. 

보다시피 과거형으로 말하긴 했지만, 지금도 적은 편은 아니라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보통은 냉소적인 사람이었으나 누군가에게는 광대 같은 사람이었다. 

또 누군가에게는 다소 친절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주 무례하고 끔찍한 사람이기도 했다. 

무서운 사람이기도 했으며 멋이 있다(당연히 외모가 아닌 내면적으로)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기도 했다. 

반대로 멸시당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사람이기도 했다. 

불의를 보면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또 어느 때에는 일을 더 키우지 않기 위해 쥐 죽은 듯 아무 소리 안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좋은 후배가 되려고 하면서 좋은 선배가 되려고 했지만, 둘 다 실패한 사람이기도 했다. 

야자 시간에 이를 악물고 수학 공부를 했는데도 시험에서 25점을 맞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국어국문학과에 가겠다고 하면서 수능에서 국어 5등급을 맞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한때는 연극배우, 영화배우를 하겠다고 설쳤지만 

언젠가부터 몸이 따라주질 않아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 마음먹은 사람이기도 했다. 

인싸가 되고 싶어 이것저것 아등바등 해봤지만, 역시나 아싸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람 만나는 거 지겹다 하면서도, 

또 어떤 때는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누구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우려를 하는 이유는, 

그 가면과 실제의 자신 사이에 느껴지는 괴리감 때문이다. 

‘그건 내 진짜 모습이 아닌데.’라는 생각. 

그러니까 이 사회적 가면을 만드는 일이 ‘자기기만’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한때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가면으로 왜곡된 나의 모습과,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 중에 

진짜 나의 모습은 과연 무엇인가. 오히려 내 마음속에 있는 내 모습이 왜곡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진짜 모습은 그 수많은 가면 중에 어느 것일까. 


옹졸한 사람? 냉혈한? 무뢰한? 사이코? 


그렇게나 가면을 만들어 왔던 내 자신을 절대로 긍정적인 모습으로 단정 지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답게 사노라 하는 것이, 진실하고 당당한 삶이라 한다면, 

나는 어쩌면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하고 살았던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 마음은 비록 복잡할지라도 

하나같이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기만 한데. 나는 어찌 이리도 복잡한 얼굴들을 가졌으며, 

그중에서 어느 하나도 떳떳하게 나의 모습이라며 내놓지 못하는가.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갔었다.


우리의 성격과 행동 양식은 타인과 어울림으로써 비로소 전형을 이룬다. 

즉, 타인을 만나며 그때그때 다른 모습의 가면을 만들어내듯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는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한다. 

나는 그것들이 각자 하나의 온전한, 그러니까 그동안의 내 자신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모자람 없이 인식시키는 완전체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진정한’ 모습과 동일한 지위를 가진 도플갱어의 격이라고 보았던 거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것들은 결국 파편에 불과했다. 

그것들은 또다른 내가 아니라, 내게서 떨어져 나온 일부였다. 

그러므로 나의 진정한 모습이란, 내 마음속에 있는 가장 그럴듯한 내 자신이 아니라, 

그런 가면들 전부를 모두 더한 것이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건 아닐까. 

그렇게 가면 취급을 하면서 내 마음의 사지를 절단해버렸던 게 아닐까. 

인간이 나약한 이유는 가장 적당한 것을 제외한 자신의 모습들을 모두 거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엑조디아’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몸통만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던 거다. 

가면. 가면을 모으자. 완전체가 되자. 그러면 뭐든 이겨낼 수 있다. 

굽히고만 사는 건 적성에 안 맞지 않던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것이니 여러분은 그동안 시체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살아라. 당신의 그 어떤 부분도 잃어버리지 말아라. 

그것이 나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이다.     


2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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