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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Jun 27. 2021

100

재능 없이 브런치를 한다는 것은

나문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수필을 지은 뒤로 벌써 100편에 다다랐다. 

100. 

나에게 있어 그런 충만함으로 가득한 숫자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살면서 무얼 하든 나는 100을 채웠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대부분은 절반은커녕 20이나 30 언저리에서 그만두었었던 것 같다. 


작가지망생이라는 명분으로 글을 써왔던 5년. 

해가 넘어갈 때마다 다음 해엔 작가가 되겠노라는 희망찬 기대를 품었던 나는 이제 없다. 

이제는 글쓰기를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그래 한 번도 쉬어보질 않았으니. 조금은 충전의 시간을 갖자.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읽자. 그리고 좀 더 편한 마음을 가져보자. 

이제는 정말로 쓸 게 없어서 못 쓰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뭐 소설이라면야 쓰고 싶은 이야기가 파다하다만, 

소설 쓰기마저도 당분간은 미루고 싶다. 

몇 년을 꾸준히 버텨온 나에게도 탈락이라는 것은 버겁다. 

올해만 해도 벌써 4번 정도를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 좋은생각 수필 공모전, 계간작가 작가 참여 공모. 

그동안 한 번도 글 쓰는 일이 힘에 부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 힘들다. 나도 지쳤나 보다. 

자꾸만 안 되는 일을 가지고 몇 년을 기를 쓰며 해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인스타그램에 게시했었던 초창기의 나문수필은 지금은 ‘보관’ 처리를 해서 아무도 볼 수 없겠지만, 

나문수필 1호의 게시일은 2019년 12월 3일이었다.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줄곧 글을 써서 올렸다. 

초창기에는 글을 쓰는 주기가 2주에 1편이었다. 

그러다 창작욕이 해소가 되질 않아 1주에 1편으로 양을 늘렸다. 

1호부터 한 40편 정도는 글자 수가 약 1000자 정도였는데, 

이후 책이 될 만한 분량으로 써보자 하여 최소 2000자를 기준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인스타그램에 뜨던 광고를 보고 ‘브런치 작가 되기’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 강의에서도 과제라 함은 매주 1편의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강의 초반에는 이미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글로 돌려막기를 했었다. 

그러다 과제 주기에 맞추어 매주 새 글을 쓸 무렵에는 지금 다니는 직장에 막 입사한 시기였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긴 나처럼 허접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작가 심사’라는 것은 

아주 높다랗고 두꺼운 철문을 마빡으로 여는 것과 같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맨땅에 헤딩. 혹은 맨땅에 계란 던지기. 

한 3번인가 4번 정도 떨어졌을 때쯤, 내 자존감은 곤두박질쳐버렸고, 

결국 강의를 담당하는 멘토님에게 브런치 작가 신청을 미루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다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고 나서, 마지막이다 싶은 심정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보았는데 딱 붙게 되었다. 

강의가 마무리되고 나서 멘토님께 감사 인사를 드렸을 때는 얼마나 뿌듯하던지.

하지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해봤자 실상은 ‘헤딩을 할 새로운 맨땅’이 나타날 뿐이었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것도 아닌 나로서는 혼자 블로그를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만큼 찬밥 신세를 몇 달이 지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도 어느덧 80번째의 글을 게시하고 있지만, 잘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쯤 되어서 생각하니 역시나 소질이 없는 게 분명한가 싶다. 

나는 글을 잘 쓰기 때문에 그동안 글을 써왔던 게 아니라, 

그저 글을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 써왔을 뿐이다. 

그러니 아무 데도 쓸데없고 어디 널리 퍼지는 일도 없느니라. 

인스타그램 좋아요도 브런치의 조회수도 바닥을 친다. 

가망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딱히 슬프진 않다. 체념을 해버렸나. 

나문수필은 그나마 ‘본격적’인 글쓰기였다고 하지만, 형편은 한 번도 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 짓고 나면 앞서 말했듯이, 당분간은 글쓰기로부터 손을 뗄 생각이다. 


사실 글쓰기를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유튜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레드오션, 즉 ‘피바다’ 그 자체인 유튜브에 뛰어들었으니 

정말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직장을 다니면서 매일 퇴근하고 방송 겸 녹화. 

주말에도 낮에 글을 쓰고 점심 먹은 뒤에 또 방송 겸 녹화. 

일주일에 하루도 속 편히 쉬는 날이 없었다. 

수필을 쓰는 것도 일주일에 3편으로 늘렸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주일의 3일은 글을 쓰면서 인터넷방송까지 겸하고 있었던 거다. 

뭐 유튜브를 한다는 것도 주변에 말도 못할 정도로 민망한 수준이라 

아마 몇 년이 지나도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 방송을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나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는 있다. 


작가지망생으로 5년, 유튜브 꿈나무로 또 5년을 살아보면 

내 삶도 뭔가 보여줄 만한 게 생기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는 어차피 다시 하게 될 것이고, 직장은 앞으로 한 2년을 다니고 그만둘 생각이다. 

그때쯤이면 돈도 어느 정도 모았을 테고, 나를 둘러싼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마음껏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 

처음으로 100을 채워보았으니, 이제는 500, 1000, 그리고 10000까지 나아갈 생각이다. 

항상 가진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도 늦었다는 생각도 늘 한다. 하는 수 없다. 

걸음이 느리다면 부지런히 걸을 수밖에. 뛰어갈 필요도, 돌아갈 필요도 없다.     


21. 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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