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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Jun 26. 2021

입을 열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이 모든 것이 선물이 되기를

그동안 나의 쓰기라는 행위에 대하여 여러 번의 언질을 주었던 적은 있었지만, 

자세하고도 구체적으로는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조지 오웰의 에세이처럼 ‘나는 왜 쓰는가’ 하는 물음으로 서두를 열고 싶다. 


왜 쓰는가. 

‘쓴다’라는 구체적인 행위 이전에 나는 이것을 왜 희망하고 욕망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이미 가지고 있는 것보다 아직 가져본 적 없는 것에 훨씬 많은 욕심을 갖는다. 

내가 쓰는 행위에 욕심을 가지는 일도 다르지 않다. 

그곳에서, 즉 ‘활자의 영역’에서 내가 일구려는 것들도 

현실의 현재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그곳에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또 상냥한 내가 있다. 

한없이 다정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나는 그 어떤 억압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얽매이는 것이 그 영역에서는 죄와 같다. 무엇보다 활자 안에서의 나는 튼튼하다. 

시멘트나 조립 없이 오로지 조각으로만 일군 석조 건물처럼 쓰러질 일도 해체될 일도 없어 보인다. 

또한 자비롭다. 무한한 위로와 용서를 나누어준다. 그것으로 가득한 인간처럼 봉사한다. 


하지만 내가 활자의 영역을 그토록 아끼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곳에는 인간을 상처입히는 힘이 없다. 

즉,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처를 받는다거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차별, 그리고 혐오에서 비롯된 잔인한 힘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다. 

과거에 문학을 두고 현실 도피라며 매도하던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이 여러 도서들 가운데에서도 문학을 통해 가장 많은 위로를 받는다는 아이러니가 

활자의 힘을 증명하는 하나의 증거가 되어주는 게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그런 종류의 위로는 우리가 현실에서 구할 수 없는 형태의 위로가 아니었던가.


바로 이런 모양 탓에 활자를 짓는 일은 

망상이나 자기기만, 혹은 허세와 다름없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결국엔 현대인의 일상으로는 온전히 끌어내지 못하는 일을 그리는 일이 아닌가. 

위로의 속성이든 르포의 속성이든 매한가지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글이라 한들 거대한 힘으로 움직이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바꾸고 싶어 하는 상태’에 그칠 뿐이다. 


어느 한 소설가는 ‘쓰기’라는 행위를 두고서 

‘소심하지만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글쓴이라는 존재는 ‘사회적 인정’이라는 인간 보편적인 욕망을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욕망으로 둔갑시켜 본인의 욕망만을 이루려는 비열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그 사실이 글쓴이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글쓴이가 군중의 대열에 맨 앞에 서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글쓴이가 가장 잘하는 일은 한발 물러서는 일이 아니던가.


이런 나로서는 글을 쓰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입을 열지 않기 위함. 

목소리를 내지 않기 위함이 그것이다. 모순이 아닌가 생각하겠다. 

글이라 함은 인간의 사유와 목소리로 가득 찬, 

인간의 정신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 아니던가. 

맞다. 나는 현실에서 내뱉는 목소리를 활자에 덜어내기 위해 글을 쓴다. 

인간이 그 발성기관으로 퍼뜨리는 목소리에는 인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힘이 있다. 

누굴 깎아내리고 홀라당 벗겨버리는,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심연으로 묻어버리는 그런 힘을 

활자에 담음으로써 거세한다. 

그와는 반대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보듬으려는 따듯한 힘은 활자 안에서 더 거대해지고 강력해진다. 

그것이 진정 쓰기의 매력이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내 목소리를 입 밖으로 굳이 내뱉지 않기 위해, 

입을 열지 않기 위해 쓴다. 그리하여 더는 내 목소리로 상처받는 사람이 없으며, 

힘을 얻는 사람은 더 많아지리라. 결국 나의 목소리는 불필요해지며 나는 말수를 줄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조용한 사람이 되고 싶다. 

조용하지만 제대로 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다운 말.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담는 그릇. 온전히 전해주는 선물상자. 

나의 말이 누구에게든 선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나는 입을 열기보다 글을 쓰노라 하는 것이다.

     

21.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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