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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Aug 08. 2021

긁적긁적

너를 모른다 05

그가 자주 가는 바닷가엔

바닷물을 마시는 시인이 있다

시인은 열 손가락이 모두 없어

그가 주걱시인이라 이름 붙였다

     

하루는 그가

삐죽 뻗은 가시못을

두 손 가득 쥐고 왔다

시인이 무어냐 묻자

그는,

살면서 남의 가슴에 박아놓은

못이란다

그걸

제 몸에 박아넣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시인은,

“자네 신이 되려는 겐가?

그건 예수도 못한 일이라네!”

후두둑-

모래밭에 까만 바늘비가 콕콕

     

그는 이제

데친 느타리버섯처럼 되어서는,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제가 할 수 있습니까?

제가 무어라도 할 수 있습니까?”

     

주걱시인은 예의 그 주걱손을 내밀며,

“손이 이러니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네만.”

     

그를 데리고 파도가 넘어지는 자리에 앉아

모래무덤을 쌓았다

누가 쌓든

파도가 한 번 넘어질 때마다

무덤은 없다

참다 못한 그가 말한다

“여기서는 파도가 밀어닥치니 무덤을 쌓아봤자 무너져버립니다.”


시인은 쌓고 있던 무덤마저 파도에 던져버리고는,

“무너졌다거나 휩쓸렸다거나 그런 말은 하지 말게.

이렇게 인심 좋은 바다가 품어주면

적어도 세상은 기억해주지 않겠는가.

우리가 쌓던 무덤이 휩쓸려가서는

어딘가에서 섬이 되어있을지

그건 모르는 일이라네.”

     

그제야 그는 가슴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끼곤,

“그래서 바닷물을 드시는 거군요!”

시인은 대답 대신 목덜미를 긁적긁적

그의 손 위에 무언가를 얹어준다

그러고는 바닷물에 첨벙-

     

못 자국 만연한 그의 손에는 이제

쌀알 같기도 물방울 같기도 한

무지개가 들어있다.

     

                                                                                                                                                              21.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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