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모른다 18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해 보게
나는 페미니즘도 안 하고
퀴어도 안 하는데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네 작가가 되고 싶나
시인이 되고 싶나
아님
유명인이 되고 싶나
아님
불사신이 되고 싶나
돈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런데 돈 안 되는 일을 왜 하나?
다른 일은 하기가 싫습니다
돈보다 내 가능성을 믿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
자네는 결국 돈을 믿는 게로군
저 역시 한 명의
노동자니까요
양반아,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어디 있어
굶지 않으려고 하는 게 일이지
그럼 어떻게 행복합니까
행복을 포기하면 된다네
남들처럼 사는 게 안 됩니다
누가 똑같이 살래?
비슷하게 살아야지
비슷하게 사는 건 좋아해도
똑같이 따라하는 건 징그러운 거야
나는 괴물이랑 사는 겁니까?
적어도 잡아먹으려 하지 괴물은
관심이나 있나? 사람은
나는 왜 눈치를 봅니까?
마비되지 않았으니까
가끔 생각합니다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사회에서 지워질 수 있으려나?
나는 청춘인데
왜 뛰어나지 않습니까?
양반아
자네 같은 사람이 한둘인 줄 알어?
그럼 내 쓸모는 무엇입니까?
나는 노동력
그것뿐입니까?
내 가치는
최저시급입니까?
자네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수두룩해
나는 위로를 받고 싶은데
왜 남의 고통을
위안 삼아야 합니까
세상이 그래
사람을
더럽고 치사하게 만들어
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자네 삶의 낙이 뭔가?
나를 위해 살아야지 하는데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억울하지 않나
뭣도 없이 가면
기껏 마련해놓은 게
실패랍니다
실패라 할 만큼
기를 쓰긴 했나?
무기력한 사람이
어떻게 기를 씁니까
자네는 스스로를 몰라
가르쳐주십시오
언제까지 떠먹여줄 것만 생각하나
동심을 지키는 것과
미숙한 건 다른 일이야
어른이 꼭 되어야 합니까?
그렇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럼 모두
자기 대신 책임져줄 사람을 구하는 거군요
자네도 그렇잖은가
편하게 살고 싶지
돈 잘 버는 백수
정의란 무엇입니까
베스트셀러
기믹의 독재
봐, 자네는 답을 알아
이제 됐지?
네,
출근하겠습니다
21.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