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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Feb 23. 2021

우리가 나방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현실에 항복.

돌아오는 길. 하수구를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멍이 참 많다고.

하수구의 직사각형에 맨홀 뚜껑의 동그라미에. 저기 못난 마음을 넣어 버리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나하나씩 덜어내다 보면 언젠가는 세련된 사람이 되겠지.

그래, 못난 마음도 가지런히 개어질 권리가 있다.

버려질 존재에게도 종량제 봉투처럼 준비가 필요하다.

한데 모이면 그렇게 공통점이 눈에 띈다. 마음이 낭비되는 걸 그만둘 수도 있겠다.


안과 못을 남발하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아마 안 될 거야.” “못 되겠지.” 같은.


다시 마주치긴 싫으니 하수도를 타고 바다로 영영 떠내려갔으면 한다.

두둥실 구름이 되면 겨울까지 그대로 꼼짝 않다가, 정 안 되면 구름 속에서 피어나

손바닥 위에 죽어버리는 눈꽃이 되어라.

아름답게 살지 못했으니 아름답게 죽는 마음을 나무라지 못하리.

더 아름답게 적어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

     

지우개는 자기 운명을 알까.

삶이란 결국 1에서 100으로 나아가는 게 아닌 1에서 0으로 사라지는 것.

무언가를 고치는 데엔 반드시 희생이 따라야 할지도 모른다.

솔직한 얘기로, 좋지 못한 옛일을 좋게 고치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때 이랬다면 지금은 이러지 않았을 거야. 현실은 때때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비참함이 더해지기도 한다.

마음을 편하게 먹기 위해선 오히려 항복해야 했다. 현실에 항복.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듯이,

꿇는 무릎에 바닥이 무너지진 않는다는 걸 가르쳐주지 않던가.


우리가 바다를 알아보는 건 정말로 그 푸르름 때문이 아니라

넘실거리는 파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끝을 모르겠을 존재에게도 흔들림이 있다. 

모래밭에서 쌓던 것이 성보다 무덤을 닮았던들 하는 수 없다.

무너지고 나면 어차피 매한가지.


불빛을 향해 걸으면 뒤꿈치엔 늘 거꾸로 매달린 사람이 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기다래지는 그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든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까맣고 납작하게 누워 있을 뿐. 뒤로 걷지 않으면 우리는 마주 걸을 수 없다.

갑자기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다고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나가 되지 못한 마음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의 버려지는 마음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마음 깊은 곳.

아득하고도 아득하고 까마득한 마음의 심연에 빠져버리는 걸까.

아니면 우리 삶에서 파편이 되어 떨어져 나가 싹을 틔우고 추억이 되는 걸까.

새까맣게 잊고 있다가 우연히 마주친 곳에서 불쑥 나타나 떠올려버리는 걸까.

당신을 잊어버리려던 마음.

나를 자책하지 않으려던 마음.

외롭지 않으려던 마음.

끝까지 사랑하려던 마음.

그동안 내가 버렸다고 생각했던 모든 마음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어딘가에 남아 여전히 내가 돌아오길 기다려주었으면 한다. 언젠가는 당신도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과 보낸 시간이 당신에게도 특별했으면 한다. 당신이 그렇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별똥별을 타고 당신에게 날아가겠다. 밤새 따다 놓은 은하수를 매달고

당신이 눈물을 흘린다 해도 누구에게 보이지 않도록 비춰주겠다.

그런 나를 나 역시 사랑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어째선지 나방에겐 식도가 없다고 알고 있었다.

애벌레일 적에 모아둔 영양분으로만 일생을 버틴다고 말이다. 그래서 온전히 불빛을 쫓아갈 수 있노라고.

그게 너무 낭만적이라 나는 그게 진실이라 여기기로 했다. 사실은 자주 따져도 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사실은 짊어져야 하지만 진실은 떠오르고 마니까.

그렇게 불빛을 쫓아 그들이 모인 곳에 나도 조용히 남을 수 있으면 한다.

      

끝을 모르게.

    

20.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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