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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Mar 26. 2021

왜 나는 남의 집 개를 그토록 팼었나

학대의 역사

미리 말하자면 나는 꽤 오랫동안 동물애호가로서의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

살아있는 것들을 좋아하는 마음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되어왔다.

이미 밝힌 바 있듯이, 장래희망으로 사육사를 적은 것도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껏 살아오면서 저질렀던 수많은 부정을

돌이켜 보고 해석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유년 시절동물 학대가 그렇다.


잠자리나 메뚜기 같은 곤충을 잡아 날개라든가 다리라든가 찢어버리는 것은

당시의 일고여덟 살짜리 남자아이들이라면 흔히 했던 놀이였겠지만, 나는 더 심각했다.


남의 집 개를 학대했다.


정확히 세 번이다. 세 마리의 개에게 나는 폭력과 공포를 안겼다.

어렸을 적의 철없던 행동이라는 식의 변명은 할 생각이 없다. 나는 악마나 다름없었다.

분명한 학대를 저질렀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일에 의문을 감출 수도 없다.


왜 나는 남의 집 개를 그토록 괴롭히고 또 팼었나.


그 시절의 내 삶엔 어떤 불행이랄 것도 없었으며,

그런 불행조차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미숙했다.

아직 사회로부터의 폭력을 경험하지도 않았었다.

즉, 내가 비뚤어질 일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잔학함을 타고났다는 말일까. 여기에 새로운 의문이 또 줄을 선다.

그렇게 동물 학대를 저질러놓고도 난 어떻게 동물애호가로 돌아설 수 있었을까.

무엇이 날 그렇게 만들었는가.




앞서 세 번의 학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중 마지막 순서는 정확히 기억하지만

그 앞에 일어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어느 일이 먼저인지 기억나질 않는다.

그 당시의 내 나이도 일고여덟 살로 추측할 뿐 정말 그때였는지도 알 수 없다.

 

어쨌든 마지막 순서 전에 앞에 있었던 두 번의 학대 중 한 번은,

같은 빌라의 아랫집에 사는 가족의 새 강아지가 희생양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작고 하얀 몰티즈였다.


그 빌라에서도 어린아이는 내가 유일했기 때문에

어른들은 내게 그 강아지의 목줄을 쉽게 넘겨주었다.

나는 강아지를 데리고 어른들이 있는 자리를 떠나 빌라 옆구리 쪽에 있는 골목으로 갔다.


포장도로도 깔리지 않은 황무지였다.


꼬마였던 나는 강아지와 함께 그 황무지를 뛰어다녀보고 싶었다.

바람을 만끽하며 내 옆을 나란히 뛰는 강아지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강아지는 껌딱지처럼 바닥에 딱 붙어서 꿈쩍도 안 했다.

목줄을 슬슬 당겨보아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학대가 시작됐다.


나는 동상처럼 가만히 있는 강아지를 목줄을 당겨서 그대로 끌었다.

강아지의 온몸이 거친 바닥을 쓸고 다녔다. 나는 점점 속도를 냈다. 질주했다.

강아지는 미동도 없었다. 나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어느 둥글넓적한 바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등 뒤에서 강아지의 깨갱 소리가 들렸다.


놓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보니 강아지의 몸이 바위에 튕겨 허공을 날고 있었다.

순간 나는 겁을 집어 먹었다.

 

어른들이 깨갱거리는 걸 들었으면 어쩌지. 강아지가 다쳤으면 어쩌지.

 

그 뒤로 바로 강아지를 어른들에게 돌려주고 집으로 돌아갔던 것 같다.

또 다른 희생양은 빌라의 주인댁이 기르던 시츄였다. 이때의 학대는 정말이지 잔혹했다.

시작은 내가 주인댁에 놀러 갔을 때 식탁 아래로 들어가고부터였다.

그 시절의 나는 식탁 아래로 들어가 숨는 게 취미였는데,

주인댁에 놀러 가서 식탁 아래로 들어가니 시커먼 찰흙이 놓여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나는 뭣도 모르고 손으로 건드려 봤다.


맙소사. 개똥이었다.


어린 나의 맘에 시커먼 불길이 치솟았다.

그 시츄에게 징벌을 내리겠다며 어른들의 눈을 속여 어느 방에 데리고 가 문을 닫았다.

시츄와 단둘이 있었다. 나는 그 시츄의 엉덩이를 곤장을 내리치듯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후렸다.

갈색 털로 뒤덮인 시츄의 엉덩이가 붉게 떠오를 정도로 갈겼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방에 있던 수건으로 시츄의 온몸을 감싼 다음 투포환을 하듯 빙글빙글 돌며 구석에 집어 던졌다.

그러자 시츄가 깨갱거렸다. 나는 또 겁을 먹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을 나섰다.

방문을 열자마자 겁에 질린 시츄가 얼른 튀어 나갔다.

그리고 며칠 뒤,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주인댁의 개가 집을 나갔다고. 그 집 딸이 울며불며 찾고 있다고.


마지막은 주인댁이 시츄를 잃어버리고 나서 한참 뒤에 옥상에 새로 들인 똥개였다.

가늘고 길쭉한 몸을 가진 그 개는 어떤 믹스견인지 모를 정도로 말 그대로 똥개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컸다. 그 개는 사람을 잘 따랐다. 나도 잘 따랐다. 하지만 나는 옥상에 고립된 그 개를 가만두지 않았다.

내겐 고립된 존재에 대한 증오가 있었던 걸까. 옥상에 널브러진 녹색 그물을 그 개의 몸 위로 던졌다.

그리고 그 개가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그물의 끝을 어딘가에 걸었다. 그러고 홀라당 도망가려 했었다.

걸어놓은 그물이 개의 몸부림에 빠졌는지 그 개는 그물을 뒤집어쓴 채 나를 쫓아왔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이다. 결국 나는 그물을 벗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정말 순수한 악이었을까.

단지 겁이 많아 그 본성을 숨기며 여태껏 살아왔던 걸까.

내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나.

아마도 그 일 때문이었을까. 내가 여덟아홉 살에 일어났던 일 말이다.




네 살 터울인 형과 형의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 온 날이었다.

한창 프로레슬링이 유행했던 그 시절이었으니 그들과 나 역시 프로레슬링 흉내를 내며 놀았다.

네 살이나 어렸던 나는 그만큼 작은 덩치에 가벼운 무게로 고난도 기술을 흉내 내는 데에 제격이었다.

형의 친구 중 덩치가 꽤 컸던 형이 나를 들어 매고 빙글빙글 돌아 기다랗고 넓적한 베개 위로 떨구었다.

나는 몹시 즐거웠다. 그러나 내 몸은 한낱 꼬맹이의 몸이었다.

 

엄지발가락이 어디에 찧었는지 도저히 움직이질 않고 살짝 손만 대도 아파 죽을 것 같았다.

뼈에 금이 간 거였다. 바로 병원에 가야 했지만 형도 나도 당시에는 어렸다.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시기 전까지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오시고

나는 형과 쭈뼛대며 놀다가 발가락을 다쳤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와 형을 집 밖으로 내쫓았다.


왜 내쫓았는지는 지금의 나조차 알 수 없다. 아버지에게 지금 물어도 아마 모른 척하실 거다.

당시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화를 냈다는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형과 나는 해 질 무렵에 빌라 계단에 앉아있었다.


형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발가락이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집에서 쫓겨난 것도 그렇고 발가락을 다친 것도 서러워서 아프다고 말하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목이 말라 어머니에게 물을 달라 했다. 어머니는 물이 담긴 컵을 가져다주고는

아버지에게 가서 죄송하다고 말하라 그랬다. 형과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고 했다.


그때 나는 어쩌면 스스로를 유기견의 처지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다치면 병원에 데려가는 게 아니라 그대로 버려져 떠돌아다니는 유기견.

그 뒤로 마음 깊이 새겼는지도 모른다.

나는 절대로 살아있는 존재를 집 밖으로 내다버리지 않겠다고.

세상 모든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겠다고 말이다.

이미 반려를 둘 자격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학대의 역사는

과연 회개할 수 있는 것인가.

     

21.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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