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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May 21. 2021

헌 쳇바퀴 타는 다람쥐는 싫어

그렇다고 새 쳇바퀴도 좋진 않아

대학 시절, 조별 과제 때문에 PPT를 준비하다 알게 된 문장.


다람쥐 헌 쳇바퀴에 타고파.’ 


내내 궁금했다. 다람쥐는 왜 헌 쳇바퀴를 타고픈 걸까. 

새 쳇바퀴도 아니고 헌 쳇바퀴에. 

물론 이 문장의 용도가 폰트의 한글 자음이 모두 들어간 걸 보이기 위함이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애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왜 그런가 하면, 저 다람쥐처럼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런 사람들 대부분 역시 새 쳇바퀴가 아니라 헌 쳇바퀴를 돌리며 살아간다.

 

어떻게 하나 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설레는 만남을 기대할 수 있는 나이는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다. 

빙글빙글 도는 건 따분한 일상뿐이 된다. 일상의 반복. 감정, 감성의 마비. 

사람들은 이내 알아차린다. 사람은 폐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도 숨을 쉬어야 한다. 


희로애락이라 함은 인간의 감정을 가장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표본이다. 

사실 인간의 감정은 평소엔 그보다 훨씬 미세하고, 복잡하다. 

가끔 나조차 내 기분이 어떤지 잘 모를 때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머리로 이해하려고 들면 감정은 아주 촘촘하고 빽빽한 글자로 인쇄된 고전문학 같아진다. 

그만큼 감정이라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무언의 마법으로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마법이라고 한 이유는, 거기엔 일반적인 논리와 법칙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웃는 것은 나니까 웃는 것이고, 내가 지금 화가 나는 건 나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감정이라는 것도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증거의 하나인 셈이다.


하지만 사회라는 곳은 서로 다른 게 너무 많으면 혼란에 빠진다. 

한 개인이 혼란에 빠지는 것과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아시다시피 차원이 다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한 개인이 혼란에 빠지면 가장 먼저 그의 삶이 망가지기 시작하는데,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사람의 삶이 망가지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의 삶부터 망가지기 시작한다. 

우리 중 누가 혼란에 빠지든, 이 사회가 혼란에 빠지든 결국 고통받는 건 우리라는 소리다. 


그래서 우리는 그 혼란을 피하기 위해 쳇바퀴를 세워놓았다. 혼란을 피해 마비를 택한 것이다. 

마비라는 것은 힘의 상실과도 같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폭삭 주저앉게 만들진 않으니까. 

그러나 슬슬 깨닫기 시작한 거다. 헌 쳇바퀴를 타는 삶이 오래되면 그건 살아있다고 볼 수 없노라고. 

그런 와중에 우리는 코로나 쇼크를 맞이했다.


쳇바퀴에서 굴러질까 봐. 그렇게 되면 사회에서 낙오될까 봐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말들, 감정들. 해내지 못했던 몸짓들. 

사람은 숨만 쉰다고 사는 게 아니다. 

생계유지가 되는 선 안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는 코로나 덕에 오히려 사람 만나느라 피곤할 일이 줄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올려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사람은 사람과 마주했을 때 가장 감정적이게 된다. 가장 뜨거워진다. 

너무 자연스러워 잊고 있었던 거다. 감정을 빙글빙글 돌리는 것도 ‘인간다운 삶’의 요소 중 하나인 것을. 


잘 만든 영화를 보았을 때,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었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속 시원히 내뱉고팠던 이야기를 전했을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뭐 별거 있나.’ 

마음도 돌고 돌지 않으면 녹이 슨다. 항상 마음의 시동을 켜놓고 살아야 한다.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코로나 쇼크가 잦아든 이후에도 이런 마비 상태에 물들어버려서 

이런 생활도 나쁘진 않은데?’라고 여기는 거다. 

나는 그런 사고방식이 스스로를 인간다운 삶으로부터 낙오시키는 게 아닐까 두렵다. 

사람이 사람을 피한다면 그 사람이 지내야 하는 곳은 이 세상에 자기 방 하나뿐이 없다. 

평생 쳇바퀴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의 끝은 둘 중에 하나다. 


쳇바퀴를 타다 쓰러져 죽거나, 쳇바퀴에 목이 걸려 죽거나. 


쳇바퀴에 신물이 난 이들이여, 그 울분을 간직해라. 

그 힘으로 계속 가슴을 불태워라. 언젠간 그 불꽃이 쳇바퀴를 불사를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살아있으면 되는 거다.


21.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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