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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Jun 14. 2021

화장실 청소부에 대하여

클린 디자이너라는 말을 아시나요

사무실에 도착하면 아침 8시 10분에서 20분 정도가 된다. 

그때쯤이면 사무실 앞에서 늘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 

척 보기에도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어느 한 화장실 청소부이다. 


그 직업의 특성상 전부 여성들일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아줌마’라고 불리는 나이대의 사람들이라, 

그들을 볼 때마다 우리 어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아마도 대한민국 남성들이라면 대부분 그런 감정일 것 같다. 여성들도 다르지 않을 거다. 

집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건 보통 어머니들의 몫이니까. 


모르는 사람과는 거의 인사하는 일이 없는 나조차도 

그들을 보면 더러 상냥해지려고 한다. 

사무실 앞에서 매번 마주치는 그분 역시 

내게 인사할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늘 살가운 인사를 건네신다. 


하지만 내가 화장실 청소부에 갑작스레 관심을 갖게 된 건 이 일 때문이 아니다. 

아직 입사한 지 몇 주 지나지도 않았을 무렵, 

수요일마다 퇴근하고 카페에서 출판편집 강의를 들을 때였다. 


카페에서 강의를 들으려면 당연히 커피 같은 음료를 하나 마셔야 했으니, 

나는 늘 유자 캐모마일을 주문했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틈날 때마다 홀짝거리니 

저절로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강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중간에 화장실로 가버리면 강의 듣는 시간이 아까워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가 휴식 시간이 되어서야 후다닥 가곤 했었다. 

그런데 그 카페가 있는 건물의 화장실에서 처음 볼일을 봤을 때였다. 


손을 씻고 나서 물기를 털어내기 위해 세면대 쪽 벽에 붙은 건조기에 손을 넣으니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건조기 바로 위에는 그 화장실을 담당하는 화장실 청소부의 얼굴이 담긴 사진과 소개말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클린 디자이너 ○○○입니다.”


여느 화장실 청소부들처럼 나이 지긋한 분위기. 움푹 파인 눈. 군데군데 박힌 주름. 

그것들과는 달리 한껏 세련된 듯한 ‘클린 디자이너’라는 단어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런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이 분은 과연 클린 디자이너라는 말을 쓸까?’ 

자신이 하는 일을,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우고 변기와 타일을 닦는 일을 ‘디자인’이라고 생각이나 할까.

 

어쩐지 이런 게 ‘선의를 가장한 폭력’의 일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청소’라는 일을 애써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하는, 

그렇지 않으면 이 커다란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은 존재들이라 여기는 게 아니었을까.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제대로 된 휴게 공간 같은 최소한의 것들일 텐데.


물론 나 역시 이런 생각을 갖는다고 해서 부당하거나 불안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들을 위해 어떤 사회적인 운동을 할 자신은 없다. 

나도 이제 막 첫 직장에 들어갔을 뿐인데. 누가 누굴 돌본단 말인가. 

그저 하루하루 지나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던 저분이 

내일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바뀔 일은 없겠지, 같은 생각만 하고 있다. 

더불어 만약 저런 사람들이 갑자기 확 사라져버리면 세상은 정말로 어떻게 되어버릴까, 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의 모든 오염에 가장 앞장서 우리를 지켜주던 저들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과연 지금의 일상을 멀쩡히 살 수 있을까. 

비단 화장실 청소부뿐만 아니라, 지하철역의 청소부, 아파트의 청소부까지. 

나는 그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왔다. 

마치 어머니의 헌신처럼, 그들의 헌신도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라 느끼고 있었던 거다.


요즘 점심시간마다 사무실에서 샐러드를 먹으며 버릴 때에도, 

소스가 묻은 용기를 화장실에서 헹구며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만들어내는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지저분한 그대로 버린다면, 

그것들은 결국에 누구의 손에 가게 될까. 


우리는 무언가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치운다’는 생각으로 그 책임에서 벗어났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둘 뿐, 

정작 그 쓰레기들을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다. 

사무실의 분리수거통이 점점 차오를 때마다 어쩐지 답답함이 드는 건 그래서인 것 같다.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십수 명은 되는데, 

이 쓰레기들을 치우는 건 고작 두 사람에서 세 사람이라니. 

더군다나 화장실 청소부들은 몇 개나 되는 화장실의 쓰레기통을 

단 한 사람이 청소 카트를 끌며 치운다. 

쓰레기 하나를 버릴 때조차도 감사해야 할 사람이 있는 거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던 어느 화장실 벽의 문구가 떠오른다. 

사실 머문 자리를 아름답게 하는 사람도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좀 덜 지저분하게 살려고 할 뿐이다.


21.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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