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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Jun 13. 2021

오, 나의 아틀라스

지난 화요일, 다음 날이 어린이날이라 휴일인고 하니 아버지 드시라고 사놓았지만,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안동소주에 편의점 떡볶이를 곁들였다. 떡볶이는 어머니가 사두신 거였다. 

이미 4월 월급도 받았고 이번에 새로 장만하기로 한 컴퓨터의 값도 치렀으니 

나는 떡볶이를 먹으며 단도직입적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버이날에 뭐 해야 되나?”


그러자 어머니는 용돈이나 달라고 했다. 아버지한테 십만 원을 드리라고. 

내가 원래는 홍삼 세트 같은 걸 사오려 했었다고 하니 그런 거 사오지도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어머니 십만 원, 아버지 십만 원 드리기로 했다. 

고작 스물여섯이라는 나이지만, 어버이날이라고 무언가를 선물해드린 게 처음이었다. 


참, 그동안 뭐 한다고 그냥 흘려보내기만 했었는지. 

돈 벌 때부터 제대로 해드리자는 핑계로 여태 아무것도 안 해드렸던 게 부끄러운 처지다. 

그러고 수요일이었나 목요일이었나, 아침에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아버지가 나한테 용돈을 받는다고 하니 입에 귀에 걸리셨더랬다. 


토요일인 어버이날에 맞춰 금요일에 퇴근하고 돈을 뽑아 드릴 생각이었다. 

바로 어제인 금요일, 팀장님이 밥을 사주겠다고 하셔서 

우리 팀원들 넷이서 회사 근처 돈까스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 하나당 대체적으로 칠천 원 정도 하는 가성비 좋은 곳이었다. 

밥을 먹으며 당연히 어버이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먼저 팀장님이 나머지 세 명에게 어버이날인데 뭐 하기로 했느냐고 물었다. 

누구는 카네이션을, 누구는 케이크를 사서 드린다고 했다. 

내가 부모님 두 분께 용돈을 드리기로 했다고 말하니, 팀장님이 잘 생각해야 한다고 그랬다. 

한 번 드리기 시작하면 계속해야 하니까. 그에 나는, 

그래도 여태까지 아무것도 안 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그동안 안 해서 양심에 찔린다고도 했다.


어느덧 내가 첫 직장에 들어간 지도 3개월이 되었다. 

직장 생활이라고 해봤자 앞으로 더 할 날에 비하면 지금은 새 발의 피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수많은 직장인이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나 역시 벌써부터 퇴사하고 싶은 생각이 드문드문 떠오른다. 

입사 3개월짜리 나부랭이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같은 일을 십수 년이나 넘게 한 우리 부모님은 정말 대단하다. 

전에 어머니는 내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고 하셨더랬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와 형을 보며 버텨왔다고. 

그랬던 어머니도 이제는 직장에서 ‘대빵’급이 되셨다. 

언젠가 저녁을 먹으며 어머니는 말하셨다. 버티니까 이런 날도 온다고. 

그에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버티는 게 이기는 거여.”


우리 부모님을 속으로 떠올릴 때면 종종 아틀라스를 겹쳐보곤 했다. 

평생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는 아틀라스. 우리 부모님은 어깨로는 각박한 삶을 떠받치고, 

발등으로는 두 자식을 떠받치고 살아오셨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시는 걸까. 

지금의 나로서도 한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인 것만 같은데. 

누가 나더러 억만금을 주고 자식을 낳아 기르라고 해도 나는 망설여질 정도다. 

그걸 우리 부모님은 거의 삼십 년을 해오셨다. 

어머니에 의하면 얼마 전에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셨더랬다.


“환갑이나 해주려나?” 


아버지가 벌써 환갑을 바라보시다니. 

부모님이 늙어가는 건 진즉에 느낀 거지만 

환갑이니 칠순이니 하는 건 아주 먼 이야기 같았는데 말이다. 

어쩐지 요즘에는 아버지가 까맣게 머리를 염색해도 금방 희끗해지는 것 같다. 

내후년이면 환갑이라는데, 금방 칠순이 되고 팔순이 되시겠지. 

그때까지 내가 내 앞가림이나 잘하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퇴근하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돼지고기에 소맥을 걸치고 

2차로 닭발집에서 파전에다가 또 소주를 걸치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친구를 만나기 전에 미리 뽑아둔 오만 원짜리 네 장을 지갑에서 꺼내 

두 장을 어머니에게 척 건네드리고 나머지 두 장은 텔레비전 앞에 두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아버지더러 돈 여기 있는 거 챙기시라고 전해달라 했다. 


밤늦게 새로 산 컴퓨터의 성능을 만끽하다 늦잠을 잔 나는, 

오늘 아침이 되어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는 데에 애를 먹었다. 

정신을 차리고 텔레비전 앞을 보니 아버지는 돈을 잘 챙겨가셨다. 

공교롭게도 치과를 가야 하는 날이라 바깥에 나가니, 

여기저기서 꽃이나 케이크를 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나도 저런 걸 해드릴 걸 그랬나 싶었다. 하필이면 어버이날 전에 컴퓨터를 장만할 게 뭐람. 

하는 수 없다. 어버이날은 내년도 있으니 뭐. 그때까지 돈이나 꼬박꼬박 벌어야지. 

나의 건강한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나의 아틀라스를 위하여!


21.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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