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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Jun 12. 2021

초라한 실패자

나는 과연 실패해보았다 할 수 있나

고등학생 시절, 그날은 어째서인지 도서실에 있었다. 

그 시절의 내 독서 경험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조창인의 장편소설 『등대지기』 단 한 권뿐이니, 

당연히 서가에 꽂힌 책을 구경하는 일도 새삼스러웠을 거다. 


그날 내가 찾아낸 책은 황토색을 띠는 양장본으로 된 것이었다. 

볼프 슈나이더의 『위대한 패배자』였다. 

겉핥기식으로 몇 장 넘겼던 거라 기억할 수 있는 것도 티끌만 하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렇다. 

역사 속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 중에는 꼭 승리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같은 사람들이 그 예시였다. 


그날 그 책을 그렇게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어도 아직까지 기억할 정도로 

그 주제는 내 가슴을 찡, 하고 울렸다. 

위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실패자의 부류에 들어갈 수 있다니. 

비록 그 끝은 실패일지라도 대중에 의해 실패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위대한 실패자’들이 있었다니! 

내 마음속에서 실패라는 단어의 의미를 수없이 고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실패는 성공의 반대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꿈과 현실이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 게 아니듯이, 

사람들이 비록 성공과 실패를 극과 극에 둔다 하더라도 사실은 그게 틀린 걸지도 모른다. 


우리가 성공이라 부르는 것이 보통의 성공이라면, 

실패라는 것은 ‘조금 더 멀리 있는’ 성공이 아닐까. 

즉, 성공과 실패라는 것은 양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나란한 길이다. 

그런데 이 길은 사람마다 태어나고 자랄 때부터 각자 정해진 것이라, 

누구는 성공에 다다르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누구는 성공에 다다르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다. 

그간 쉽게 볼 수 있었던 사실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수많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사람들에게 성공한 사람이라 여겨지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과연 ‘성공한 사람’으로 여길까?


최근에 가수 겸 서점 운영자인 요조의 책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 출간되자마자 많은 이목을 끌었다. 

제목으로 보나 홍보 문구로 보나 이 책의 핵심도 ‘실패’였다. 

하지만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요조 같은 사람이면 성공한 사람 아닌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노래나 책 둘 중에 좋아하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요조를 모르는 이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되고 독자와의 만남을 가지는 그이를 SNS를 통해 보아하니 

그간 본인의 발자취를 사람들에게 ‘실패’로 소개하고 있는 듯했다. 참으로 요상한 일이다. 

출간되자마자 책이 2쇄를 찍었다는데 실패라니. 그렇다. 그이는 스스로를 ‘실패자’로 소개하는 듯했다! 

과연, 그이도 ‘위대한 실패자’의 부류에 속하는 것 같았다. 순간 내 머릿속을 때려 박는 것이 있었다. 


‘실패에도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즉, 실패라 부를 수 있는 것에도 어딘가 갖추어야 할 게 필요하다는 거다. 

실패를 실패라고 부를 만큼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하나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간 내가 실패라고 불렀던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나. 

내가 생각해온 학업, 진로, 직장, 꿈, 기타 등등. 

누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늘 단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었다. 

그 의미는 그간 해온 것들이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었으며, 

이 실패는 내가 앞서 말했던 ‘성공과 나란한 길’로서의 실패가 아닌, ‘성공과의 대립’에 놓인 실패였다. 


그런데 나의 실패는 실패라고도 부를 수 없는 초라한 것들이 아닌가. 

도저히 보여줄 만한 것이 없다. 내보일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실패라도 해본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오로지 말뿐이다. 

성공해보지 못했고, 실패만 해왔다는 말뿐. 

실패를 방패 삼아 보잘것없는 행동을 정당화하고 미화했을 뿐이다. 

초라한 실패자다. 쭉정이 같은 실패자다.


다만, 무언가를 내보이지는 못해도 ‘무언가를 하고 있음’은 쭉 유지하고 있다. 

꺼내어 내비치지는 못하더라도 하고 있는 게 무엇인가 말할 수는 있다. 

하고 싶은 것도 있다. 되고 싶은 것도 있다. 올해 안에 이루고 싶은 것도 아직 남았다. 

그만두지 않을 수 있다. 그만두지 않는 것을 계속할 수 있다. 

종종 꿈을 떠올리며 가슴이 뛴다. 도저히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무수한 실패를 쌓을 것만 같다. 그런데도 신이 난다. 

나는 처음부터 성공한 사람이 되려 했던 게 아니었나 보다. 

무언가 제대로 된 실패를 해볼 궁리만 하는 걸지도 모른다. 

좋다! 적어도 성공보다는 실패가 훨씬 쉽지 않은가. 

그렇다면 실패를 왕창 쌓아보자. 실패의 고수가 되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위대한 실패자의 반열에 오르겠지.     


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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