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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Jun 16. 2021

헤딩 중독

어쩌면 불사조 심리

여덟 살 무렵, 

나는 우리 학교의 전경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정글짐 맨 꼭대기에 오르는 걸 좋아했었다. 


모래가 널리 깔린 운동장은 커피 우유색이 났고, 

하늘이 그걸 파랗게 덮고 있는 장면은 지금 떠올려 보아도 짜릿하다. 

그 시절엔 나이에 안 맞게, 

아니 오히려 그 나이라 할 수 있었던 무모한 일을 벌이곤 했다. 


그중 하나는 동네에 있는 삼천리자전거에서 

어머니가 사주신 두발자전거로 아주 쌩쌩 달리는 거였다. 

정말로 레이싱을 하듯 있는 힘껏 발을 놀리면, 

가끔 핸들을 돌렸을 때 오토바이가 커브에서 선회할 때처럼 

내 몸과 자전거가 바닥에 닿을까 말까 하는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집 앞에서도 여느 때처럼 포장도로를 그 두발자전거로 쌩쌩 달리고 있었다. 

몸속에 자리 잡은 질주 본능과 불사조 심리를 불태우며 

경주마처럼 오직 앞만 보며 페달을 굴렸다. 


그러다 커브에서 확 핸들을 트려던 그때, 콩! 

한 승용차와 부딪쳐버렸다. 

차에서는 젊은 부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내려서 잔뜩 놀란 얼굴을 하고 나를 살폈다. 

그들은 사고가 난 줄 알았던 거다. 

부딪치기는 부딪쳤지만 그야말로 ‘콩’ 하고 부딪친 수준이라, 

나는 아픈 것도 없었고 오히려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부끄러운 기분만 들었었다.


그로부터 내가 포장도로에서 자전거로 막 달리는 일은 더 이상 없었지만, 

그 무렵의 나는 호기심 ‘초’대마왕이었기 때문에 

무모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기상천외한 일이라 하면 몸소 뛰어들었다. 

그 일은 자전거로 질주 본능을 불태웠던 것 이후로 두 번째이며 마지막이었다.


앞서 말했던 정글짐 맨 꼭대기에 올랐던 어느 날이었다. 

주말이어서 운동장도 텅 비어있었고 

바람은 솔솔 불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궁금증이 생겼다. 


‘만약 정글짐 맨 꼭대기에서 몸을 일(一)자로 쭉 펴고 몸을 던지면,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쑥 빠지지 않을까?’


마치 파워레인저가 악당을 물리치러 본부에서 철봉을 타고 쑥 내려갈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덟 살이었던 내게도 

정글짐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건 보통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엉덩이를 떼는 힘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고민도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제로도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판단해버린 거다. 


결국, 나는 만세 하듯 파란 하늘을 향해 팔을 쭉 찌르고 

정글짐 꼭대기에서 바로 땅바닥을 향해 발과 엉덩이를 뗐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텅! 텅!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깔끔하게 떨어질 것 같았던 내 생각과는 달리, 

내가 몸을 던지자마자 꼭대기 바로 아래층에 있는 정글짐 철봉에 턱이 교통사고를 일으켰고, 

한술 더 떠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몸에 힘을 주지 않고 계속 내려가려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생각만큼 쭉 펴지 못한 팔꿈치가 

마치 연주를 하듯 사방에 있는 정글짐 철봉을 두드렸다. 

난처한 상황에 더불어 어디에 호소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던 통증에 

나는 입 밖으로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었다.


나중에 몸이 자라 이 일을 되돌아보니, 

아마 이때를 계기로 나는 어떤 일에 ‘헤딩’을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던 것 같다. 

적당한 사전준비도, 주변의 어떠한 조언도 없이 무작정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드는 거다. 

처음에는 배우가 되겠다며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했을 때였고, 

두 번째는 작가가 되겠다며 글을 쓰겠다 하는 거였다. 


첫 번째는 수시 전형에 탈락하자마자 후다닥 도망쳐 나왔고, 

두 번째는 그나마 그만두지는 않아서 5년째 이어가고 있지만, 

나는 이미 그 가망을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도 나는 요즘도 가슴이 두근거리곤 한다. 

이번에 새로운 도전을 하나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먹어왔던 인터넷방송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터넷방송이나 유튜브를 하겠다고 하면 

손사래를 치며 시답지 않은 소리로 치부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성공하기 전까지는 절대 밝히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활동명조차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얼마 전에 새로 컴퓨터를 장만한 것도 사실은 방송을 위함이었던 거다. 


아직은 웹캠과 보조용 모니터가 없어서 제대로 된 방송을 하지는 못하지만, 

5월의 월급을 타게 되면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이번 도전 역시 절대 성공할 리 없다는 생각이다. 

직장도 계속 다닐 생각으로 청년내일채움공제(2년짜리)를 걸어버렸다. 

2년 안에 뜰 일이 없을 테니 쭉 다닐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정말로 가슴이 두근거려 하루하루가 기쁨으로 가득 찰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던가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어쩌면 나는 정글짐에서 뛰어내렸을 때부터 이미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실패에서 오는 절망은 도전에서 오는 기쁨에 비하면 ‘쨉’도 안 되는 거라고. 


아니면 이제는 실패를 일부러 경험해보려는 변태가 된 걸 수도 있다. 

실패를 계속 축적하면 삶이 어느 방향으로든 변화하리라 속으로 믿고 있는 거다. 

그래서 연달아 ‘헤딩’을 한다. 마빡이 남아나지 않도록.

     

올해에는 뭐가 될 수 있을까.     


2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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