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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Jun 17. 2021

마음 검사

4주 후에 봅시다

참으로 오랜만에 일상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일상을 되짚는다는 것이 

매번 있는 일 아닌가 궁금할 수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글로 쓸 만한 것에만 특별히 관심을 가질 뿐이다. 


좋든 나쁘든 별거 아닌 일에는 더러 잊어버리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두지 않으려 하며 굳이 다시 떠올리려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요즘 일상에 방치해두었던 나의 마음이 어떠한가 살펴보려 한다. 


마음을 헤아리는 데에는 사실 우리 머릿속에 보이지 않은 무언가를 파헤치려 하기보다, 

평소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따져보는 게 더 간편하다고 본다. 

지금 나의 ‘상태’를 보자면 이렇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대학교만 다니다가 졸업도 하기 전에 덜컥 취업을 해버렸다. 

사회생활 경험은 0에 가까우며, 직장생활에서 아주 유용한 ‘일머리’나 사교성 역시 바닥을 친다. 

출근하는 날이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실력이나 센스가 늘기는커녕 뭐 이렇게 삐걱거리는 게 많은지. 

일을 잘못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다. 

머리가 복잡한 것보다는 몸이 귀찮은 게 더 낫다는 식의 마인드라서 그런지, 

무슨 작업을 하든 일단은 무작정 하고 보니 순 엉터리가 될 뿐이다. 


사교성이라는 것에도 할 말이 많다. 

그나마 팀원들과는 목요일마다 점심도 같이 먹고 

퇴근길도 같은 방향이라 문제없이 지내고는 있지만, 

다른 팀원들과는 마주쳐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점심시간에 사무실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면 

자연스럽게 창가 쪽에서 여러 사람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팀장님이 말해주기로는, 

먼저 인사도 건네고 말 한마디라도 나누는 게 좋다는데, 

나 역시 직장생활에 있어서 그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도무지 몸은 그러질 않는다. 


사실 마음 깊숙한 곳에선 이런 울림이 계속된다. 

‘일부터 잘해야지! 그리고 그런 거 신경 써봤자 괜히 공과 사만 구분 못하게 되는 거 아니야? 

세상에 공과 사를 딱딱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렇다.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마치 기계가 된다. 

그런데 그것도 아주 성능 좋고 기름칠도 잘된 기계가 아니라, 

부품이 움직일 때마다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효율도 형편없는 기계다. 

사실 다른 팀원 사람들과 굳이 말을 섞지 않는 것도 

귀찮은 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출근을 하면 딱히 생각이라는 걸 하고 싶지 않다. 

생각이라고 해봐야 부정적인 생각. 

‘아 때려치우고 싶다. 언제까지, 도대체 몇 살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만 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무실에 들어오면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멈춰버린다. 


그래서 오히려 정신건강은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 

따져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과 하는 일이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것만 빼면, 

퇴근 시간도 잘 지켜지고 통근 거리도 멀지는 않으니 

이보다 적당한 직장은 내 능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노릇이다. 

아, 퇴근 시간에 미어터지는 지하철은 좀 그렇긴 해도 금방 익숙해질 거다. 

어느덧 입사한 지 4개월이나 되었으니 말이다!


어째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흐르긴 했으나, 

정신없는 대학생으로 살다가 이렇게 정신없는 직장인으로 사는 와중에 

요즘 내가 진심을 보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내 마음이 ‘제대로’ 쓰이는 것들이라 할 수 있는데,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장 건강, 양상추, N잡이다. 

한창 핫한 N잡 말고는 쌩뚱 맞게 들릴 것 같다. 

장 건강이라 함은 몇 달 전에 유튜브로 우연히 장 건강에 대한 영상을 보고 나서 관심을 가진 이슈다. 

평소에 장내 미생물 관리를 하지 않으면 

장에 염증이 생겨 우울증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덜컥 겁을 먹었었다. 


그 장내 미생물 관리에 좋은 게 바로 녹색 채소를 먹는 것인데, 

직장을 다니면서 이미 샐러드를 먹는 게 일상이 되었던 나는 

거기에 들어있는 양상추에 자연스레 빠지게 되었다. 

아삭하면서도 채소 특유의 쓴맛 같은 것 없고 

씹을 때마다 은은한 단맛이 나는 양상추는 내 엔돌핀이 되었다. 

이제는 양상추가 들어간 음식이라면 뭐든 오케이가 된 지경에 이르러버렸다.


N잡에 대해서는 뭐 예전부터 해왔던 생각이었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아득한데 수많은 직업 중에서 

딱 한 가지만 하는 건 뭔가 아쉬운 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하지 못하고 살고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앞에 두 가지에 더해 이 N잡이라는 것도 요즘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내 마음이 어딘가에는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가끔은 내 삶이 죽어있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영혼 없이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며, 

도대체 몇 년이 지나야 독립을 할 수 있을까, 

언제쯤 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번뇌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러나 당장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 것들은 결국엔 스쳐가는 순간에 불과하지 않을 거라고. 

나를 기다리는 결승선이 지금은 볼 수 없는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노라고.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


21.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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