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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Jun 18. 2021

가성비 좋은 인간

인간은 적게 먹어도 많이 일할 수 있다

2019년에 공개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이하 ‘탄소’) 배출량은 

전세계에서 9위라고 한다(글로벌 카본 아틀라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조막만 한 땅덩어리에서 이산화탄소가 나와봐야 얼마나 나온다고. 

알고 보니 이미 많은 나라에서는 꽤 예전부터 기후재앙에 대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정책에 집중해왔다. 이른바 ‘탄소 중립’을 선언한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기후정책들에 대해 그리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그러한 사례들을 보며 현 정부가 적당한 기후정책을 수립하지 못하는 데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이런 사안에는 문외한에 가까운 내게는 세계가 외치는 목소리가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여겨진다. 

사실 한 개인의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가가 참 궁금하다. 

나 혼자 추측하기로는, 그것은 재활용할 수 없는 것들을 얼마나 배출하느냐에 따른 것 같다. 

예를 들어, 일회용품이라든가 일반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들이라든가. 

그 기준에 의한다면 다행히도 나의 탄소 배출량은 지극히 적다. 


일상적으로 쓰는 일회용 마스크를 제외하면 하루 동안 버리는 쓰레기라고 해봤자

화장실에서 쓰는 페이퍼타월 예닐곱 장과 물티슈 한두 장. 휴지 십수 칸 정도. 

이렇게 따져보니 어째 적지 않은 양인 것 같기도 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버리니 말이다.


그러나 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저소비로는 꿇리지 않는 몸이다. 

늘 적은 수입을 유지하고 있는 탓도 있지만, 

굳이 돈과 연결 짓지 않더라도 원체 소비라는 것에 궁색한 성질을 타고 난 듯싶다. 

꼭 필요하다 싶은 게 아니라면 사려 들지 않는다. 

살면서 액세서리 같은 것들은 단 한 번도 사본 적도 없으며, 

방을 꾸미는 데에 쓸 장식품 따위는 물론이요, 

심지어 먹을 거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소비를 하는 편이다. 


직장을 다닌 뒤로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다가 

이제는 샐러드와 드링킹요거트로 갈아탔지만, 얼마 전부터 드링킹요거트도 끊어버렸다. 

아침과 저녁은 집에서 해결하는 편이니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내 일일 소비는 교통비를 제외하고 약 4천5백 원 정도다. 편의점 샐러드가 대충 3천5백 원에서 3천8백 원 정도 하는데 거기에 요즘 즐겨 마시는 ‘구론산’을 더한 값이다. 이런 걸 얘기하면 사람들은 꼭 그런다.

“그거 가지고 밥이 돼?”

내가 오래전에 깨달은 사실이 있다. 


사람은 적게 먹어도 많이 일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동물이다. 


허기라는 것도 습관으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감각이다. 

굶지만 않는다면, 적게 먹는다 하더라도 건강이 위태롭지는 않다. 

물론 영양소의 균형은 중요하다. 

나는 균형 있는 식사와 저소비라는 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샐러드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샐러드 하나로 절대 배가 부른 건 아니다. 

샐러드를 먹고 났을 때의 배부름은 숫자로 표현하자면 5점 만점의 약 3점 정도다. 

달리 말하면 배부른 것도 아니고 배고픈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다. 

오히려 가끔은 뱃속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허전한 기분이 든다. 


‘뭔가 아쉬운데?’


평소에도 굳이 뭔가를 입에 넣으려 하지 않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내가 치아교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아교정을 하는 사람에게는 먹는 행위는 곧 양치로 이어진다. 

뭔가를 먹고 나서 양치를 하지 않으면 

이른바 ‘철길’이라 불리는 교정기에 음식물이 마구 낀 채로 견뎌야 한다. 

나로서는 배고픈 것보다도 그게 더 끔찍하다. 그러니 군것질을 하는 일도 드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는 비싼 신발, 비싼 옷에 대해 일절 관심이 없다. 

취미로 들이는 것도 컴퓨터 게임과 독서 따위인지라 이보다 돈 안 드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그 흔한 블루투스 이어폰도 쓰질 않고 있다. 유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안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나는 출근길에 아무런 음악도 듣지 않으며 한 시간 정도를 지하철에서 보낸다. 저소비에 익숙해졌다기보단 결핍에 익숙해졌다고 봐야 할 거 같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거지 뭐.’


내가 이런다고 나를 천하의 구두쇠로 보아서는 안 된다. 

나도 써야 할 순간이 올 때는 통이 제법 크다. 

흔쾌히 밥을 사고 술을 사는 일도 적지 않으며, 

돈 계산에 있어서도 내가 당장 급한 게 아니라면 손해를 보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평소에 병적으로 보일 만큼 돈을 쓰지 않아 그럴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에잇, 돈 얘기는 지겹기만 하다. 

어쨌든 나도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 감소에 기여하는 ‘가성비 좋은 인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적게 먹고 약하게 움직이지만, 조금 쉬고 많이 생각하려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많은 돈을 벌어들였으면 하는 욕심은 있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가 비싼 놈이 되려는 생각은 없다. 

뭐랄까, 나타나는 순간 ‘전원일기’의 OST가 흘러나오는 듯한 사람이 되고 싶기도. 

다시 생각해보니 참 재밌는 상상이다.


2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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