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문득

덕수궁 돌담길

by 류하


괜스레

그러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나타날 때가 있다.

언젠가 한 번쯤 같이 걸었을

그 길 위에서,

찰나의 찰나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그때의 너와 내가

아스라이.


아니

어쩌면 그 길을 걷던 이는 네가

아닐지도.

그저 하나의 구실을 만들어

기억 속 너를 끄집어내고 싶었던 건지도.

그러니까 너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말.


그 길을 함께 걸으면 이별한다고 했지.

오래전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정법원이 있었다지만

어쩐지 나는 심술 난 솔로가 퍼트린 유언비어 같아.

사랑에 빠진 이들은 미신에 얼마나 취약한지.


이따금 생각을 해.

정말 우연히

그저 길을 걷다가 너를 마주치는 상상을.

어느 날은 모른 척 스쳐가고

또 다른 날은 은밀히 시선을 교환해

어쩌면 커피 한 잔을 함께 할 수도 있을까.


덕수궁 돌담길은 여전한데

또 오랜 세월 그대로일 텐데.

나는 무심히 변해간다

돌의 시간에 비한다면.


흘러감에 그리움은 필연이라

분별없는 마음, 막을 길 없지만서도

더 이상 후회하지 않는 건 그만큼

시간을 켜켜이 쌓아왔다는 증거.


그러니 이제 다시

풍경을 개켜 마음속 장 깊숙이 넣어둔다.

어쩌다 또 궁금할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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