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숙제

오늘은 썼습니다

by 류하


'숙제 좀 안 할 수도 있지.' 이런 생각으로 살아왔다면 달랐을까.


매주 수요일이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곤 했다. 할 말은 많았으나 아니, 할 말이 많았기에, 죄다 꼬여버린 목걸이 줄처럼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이 말을 풀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흰 벽을 배경으로 날아다니는 날파리로, 어느 날은 마치 고장 난 듯 세 시로 넘어가지 않는 벽시계로, 어느 날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굵은 창살문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어떤 문장도 한 편의 글로 끝낼 수 없었다. (언젠가는 이 날도 담담하게 써낼 수 있으려나.) 몇 번의 수요일이 '오늘도 쓰지 못했다. 다음 주에는....'과 함께 지나가버렸다.


수요일은 [오늘의 단어]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스스로 약속한 날이다. 그날 이후 한 달이 더 훌쩍 지났고, 짧은 글은 그럭저럭 글다운 맺음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긴 글을(그래봤자 이천 자 안팎이겠지만) 쓰려면 마음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날것의 생각과 정제되지 않은 말이 함부로 튀어나올까 싶어, 그게 나를 다시 찌르거나 혹여 누군가를 상처 입힐지 몰라서, 혹 누군가의 날 선 말이 나를 저격할 것만 같아서. 무섭고 두려웠다. 말이든 글이든 길어지면 의도치 않은 비수가 걸려 나오기도 하기에.


학창 시절에 숙제를 받으면 죽어라 안 해 오는 애도 있고, 한 번 혼나고 해 오는 애도 있고, 기한엄수하여 해 오는 애도 있는 법이다. 나는 응당 해야 하는 줄 아는 애였다, 그것도 잘. 수요일에 글을 쓰는 건 숙제였고, 잘할 자신이 없는 나는 오만 핑계를 앞세워 흰 화면을 마주하고 앉는 일을 거부해 왔던 거였다. 오늘도 그 힘든 싸움을 몇 시간이나 하고 느지막한 오후가 되어서야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여전히 난 그날의 일은 풀어내지 못하고 있지만, 뭐라도 쓰고 고치고 있다.


그제 다녀온 병원에서 그런 말을 했다. 부질없다고, 죽는 것도 귀찮고 사는 것도 귀찮다고, 다 무슨 소용이냐 싶다고. 그러나 때로는 부질없는 무엇이라도 그냥 한다는 자체가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법이다. 지금도 내 마음 안에서는 두 놈이 목소리 키우며 싸우고 있다.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이거 올려 무엇하려고? 싹 다 지우고 다시 쓰지?

- 그래도 이만치 쓴 게 어디야? 이것도 지금의 마음이고 기록이야. 못난 날이 있어야 더 나은 날이 그 위를 덮는 거지.

오늘은 후자의 손을 들어줘야겠다. 돌이켜보니 [오늘의 단어] 글이 언제는 또 그렇게 완성도 있고 긍정적이었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 토해낸 마음들이 땔나무가 되어 불씨를 타오르게 할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기한 내 제출을 하니 조금은 마음이 후련하다. 그만하면 됐다. 오늘은.



목요일 연재
이전 15화[오늘의 단어] 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