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관성

by 류하


관성 慣性

물체가 밖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정지 또는 등속도 운동의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


관성 款誠

정답고 극진한 정




일주일. 여러 자발적, 타의적인 의무와 책임, 다짐을 나 몰라라 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 년 내내 일력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가며 썼던 하루 한 문장도 일주일이 넘게 밀렸고, 약속한 리뷰 또한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며, 브런치 업로드는 두 차례나 그냥 넘겨버렸다. 회사 업무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미룬 지 한참이다. 안팎 상황이 이러다 보니 가족 간 불화는 자연스레 따라오는데 그걸 별스럽지 않게 그저 회피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물리학의 법칙은 정교하고도 절묘하게 사람에게 맞아떨어진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 또한 이 세계의 물체에 지나지 않으니. 그것도 고작 백여 년 살다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도 대단한 존재인양 추켜세운다. 어쨌거나 수많은 법칙 중 '관성의 법칙'이란 게 있다. 외부 조건이 변하지 않는 한, 원래 하던 대로 하려는 힘이다. 헬스장까지 가기는 천리길이지만, 일단 가서 옷 갈아입고 뭐라도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할 수 있는 게 관성의 좋은 예라 하겠다. 그러나 이 관성이란 놈은 원칙만 있지,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할 줄은 모른다. 한 번 발을 잘못 들이면 나락행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처음엔 지금만, 오늘만이었다. 그게 하루 이틀쯤이야가 되었고. 그렇게 사흘 나흘이 지나니 에라 모르겠다가 되어버렸다. 그냥 다 놔버렸다. 내가 나를 포기한 사이 시간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렀다. 죄책감도 슬픔도 없이, 염치를 챙길 새도 없이. 어제는 일주일 만에 흰 화면을 마주했다. 언어가 되고 싶었던 말의 조각들이 쏟아져 나와 문장을 이뤘다. 내 안의 글쟁이는 끓어오르는 욕구를 부여잡고 문이 열리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낱개의 글자들만이 여전히 머릿속을 배회한다, 일정한 의미를 이루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여전히 나는 그런 상태다.


우울에 이렇게 다양한 모습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한 줄기 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어둠, 말 그대로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력함, 통제할 수 없는 분노... 그러나 이건 또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켜 가는, 그러나 마음 한편에 숨기지 못하는 애정에의 갈구. 마치 유아기로의 퇴행. 무심을 가장한 욕구. 우울의 진화일까.


'관성'이라는 단어를 찾다가 우연히 또 다른 뜻을 알게 되었다. 정성 관에 정성 성을 써서, '정답고 극진한 정'이라는 의미란다. 아, 내가 되찾아야 할 감정이 이거였구나. 정답고 극진하게, 상대를 향하는 마음을 내보이는 일. 그 마음이 쌓여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오면, 나의 이 욕구도 진정될지 모른다. 아니 애초에 주고받는 걸 계산하려는 나의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요즘의 나는 힘들었구나, 그걸 내가 몰라줬구나. 결국 밖으로 애타게 찾아 헤매던 그 위로를 줄 수 있는 건 나 자신이었다. 내가 나를 정답고 극진하게 대해주면 그 마음이 자연스레 밖으로 흐를 일이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방향을 180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지금의 나에겐 버거운 일이다.

밖에서 안으로, 시선을 돌리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다음은 물리의 법칙에 따르면 된다. 채워진 내면은 저절로 밖으로 흘러 주변까지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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