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우울함 주의보
부사.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시나브로 나는 나를 파괴하고 있었다.
새벽 한 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한 밤, 필요시 복용이라고 적힌 약통에서 한 알을 꺼내 삼켰다. 지겹게 꾸던 꿈의 흔적조차 없이 일곱 시가 훌쩍 넘어서야 깼다. 머리 위로 흘러내리는 물줄기 속에서 사강의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괜찮아졌다고, 최소한 괜찮아지고 있다고 믿었다. 아니었다. 파괴의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2년여 전의 나는 충동적이고 즉각적이었다. 지금은 은밀한 방식-나 자신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게-으로 나의 가치를 깎아내린다. 씻는 동안 이런 생각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여전히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나는 우울증 환자라는 현실 감각이 돌연 선명해졌다. 허탈했다.
이십 대 초 이후로, 아이를 낳고 난 후에도 거의 이십 년 가까이 유지했던 몸무게가 최근 두세 달 사이 4kg 이상 쪘다. 나잇살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과연 그런가. 허공에 내지르는 메아리라도 '글을 쓴다'는 위안과 다짐은 자기기만이었다. 시나브로 발전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 또한 시나브로 변하고 있었다. 같은 방향을 향하는 줄 알았는데, 반대로 가고 있었지만.
애써 잡던 끈을 놓쳤다. 아니, 놓아버렸다. 애써 포장하던 나의 모습들에 질력이 난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기에, 극단적인 상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나은 모습이 되려는 내 안의 '꿋꿋이' 또한 힘을 잃었다. '꿋꿋이'가 바지런 떨던 자리엔 '무력이'가 드러누워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 입은 옷, 간편식으로 때우는 끼니, 입에 달고 사는 불평불만. '어떻게든 되겠지'는 언젠가부터 '그러든 말든'이 되었다. 단단해진 게 아니라 무심해졌다 만사에. 나는 서서히 나를 파괴하고 있다.
어쩌면 그나마 지금 나를 지탱하는 단 하나의 무엇이 읽기와 쓰기인지도 모른다. 나조차 잊기 위해 읽고, 감당하기 어려운 어둠을 뱉어내기 위해 쓰고. 그러니 글쓰기를 놓기까지, 나는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은 셈이다. 오늘도 나는, 살기 위해 흰 화면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