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안전

'안전'에 대한 몇 가지 단상

by 류하


안전: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음. 또는 그런 상태




일 년 전 오늘의 시작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예사로운 하루를, 누군가는 일찌감치 마감하고 잠에 들었고, 누군가는 아직 또랑또랑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시간.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속보를 들었다. 지나간 시대의 단어라 생각했던 말이 검색창과 뉴스 화면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안전한가? 그날 이후로 누구도 이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다. 안전이란 당연하게 주어진 게 아님을 우리는 다시금 깨닫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러니 온몸으로 막아섰던 이들, 옳은 선택을 했던 이들, 추위와 어둠 속에서 빛이 되었던 이들... 우리의 안전을 위해 마음을 모았던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장할 수 있을까? 아마도, 어쩌면 아니기도 하고. 발전은 도전적 과제로부터 기인하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는 안전한 환경일 때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 성향에 따른 차이도 있다. 나 또한 안전을 선호하는 사람이라, 돌이켜보면 지지자 혹은 조력자가 있을 때 능력이 개화하고 향상됐었다. 나의 능력, 발전 가능성, 성실함에 대한 누군가의 믿음은 강력한 안전장치가 되어 나를 더 높이,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환경 자체를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 나는 기다리며 준비하다가 기회가 오면 붙잡을 수 있을 뿐이었다. 불안함은 족쇄가 되어 나를 시험했다.


안전은 내 성장의 기반인 동시에 넘어서야 할 벽이다.




나는 요즘 내 안전지대를 재설정 중이다. 한정된 극히 소수의 관계 속에서 내가 어디까지 해도 괜찮은지 실험을 하고 있다. 예전이라면 속으로 삭였을 말을 소리 내어 꺼내본다. 내 안의 검열자 때문에 참았던 행동들을 어쩌라고 정신으로 무장한 채 한다. 그래봤자 별 건 아니다. 내가 이런 거 했다고 알리고, 어른스러운 척은 관두고, 속마음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다는 못하지만 조금씩. 이 모습이 낯설고, 이따금 뭐 하는 건가 싶고, 종종 후회한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뻔뻔 모드를 유지할 생각이다. 돌아가고 싶을 땐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저질렀잖아,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하겠어?


'어차피'와 '그래봤자'는 얼핏 스스로에 대한 포기 같아 보이지만, 완고한 나를 내려두는 강력한 주문이 되기도 한다.




나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레 아들과의 관계로 흘러간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과 부쩍 부딪치는 일이 많아졌다. 아들은 자신의 감정이 무시되었다고 느끼거나, 본인이 원하는 수준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울음을 터트린다. 나와 닮았기에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아들은 나와는 달라 속으로 삭이지 않는다. 격렬하게 표현하며, 때로 그 분노의 창끝은 나를 겨냥한다. 엄마 때문에, 엄마가 잘못했다면서. 처음엔 그런 말을 공격으로 느꼈고,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다행이다. 아들에겐 엄마가 안전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낼 수 있었을 테니.




몸과 마음에 위험이 없다는 믿음과

그런 믿음을 가능케 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소중하며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


감사의 마음이 차오르는 날이다.




목요일 연재
이전 16화[오늘의 단어] 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