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결기

by 류하


결기

1. 못마땅한 것을 참지 못하고 성을 내거나 왈칵 행동하는 성미.

2. 곧고 바르며 과단성 있는 성미.




은희경 작가는 자신의 첫 책이자 대표작인 『새의 선물』을 두고 "가냘픈 결기"라 했다. 당시 아무것도 아니었던, 무력한 자신이 이 이야기만은 꼭 하겠다는 패기로 썼던 글이라면서. 아직 독자를 만나지 못한 작가가 오롯이 스스로를 위해, 자신이 될 뻔했던 아이의 모습으로 그려낸 게 주인공 '진희'였던 셈이다. 책의 모든 문장이 작가 본인의 목소리였다.


지난 17일 합정에서 『새의 선물』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는 은희경 작가 북토크가 있었다. 작품에 대한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였는데, 그중에서도 '결기'라는 단어가 오래 남는다. 출간 당시 여러 충고나 조언에도 불구하고 소신대로 밀고 간 지점들이 있었는데, 그중 단연 인상적인 부분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다.


당시 주변에서는 이 두 부분을 빼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긴 이해도 간다. 영악할 정도로 총명하고 어른스러운 진희가 이삼십 년을 훌쩍 뛰어넘어 불륜이나 하는, 금기 밖의 모습으로 그려지니까. 출간 연도가 1995년임을 떠올린다면, 애초의 고집을 밀어붙인 삼십 대의 은희경이 대단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그녀는 하나의 미숙함 또는 패기였다며, 제도권에서 벗어난 인물로 성장한 모습을 그리고 싶었노라고 밝혔는데, 이게 바로 은희경식 결기의 모양이 아니었을까.


도회적, 냉소적, 까칠함, 반항적... 은희경을 설명하는 단어들은 늘 어딘가 뾰족하고 차가우며 도도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은희경 작가는 꾸밈없고, 솔직하며, 다정한, 소녀 같은 사람이었다. 당돌하고 당찬 진희 속에 외롭고 여린 아이가 있듯이. 우리 모두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말랑하고 나약한 존재들인지 모른다.


자신의 속살을 지키기 위해 누구나 생에 한 번쯤은, 자신을 끌어 모아 세상에 결기를 내보이게 되는 것 같다. 북토크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생각해본다. 나의 결기는 어떤 모양일까. 아직은 뚜렷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무언가가 내 안에서 부글거리고 있다.


은희경 작가『새의 선물 』북토크 (사회: 함윤이 작가)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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