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물러서다

by 류하


물러서다

3. 맞서서 버티던 일을 그만두다.




언제부턴가 [오늘의 단어]를 쓰기가 어렵다. 일주일에 두 번, 시 쓰기는 되려 큰 어려움 없이 써내는데 그다지 길지도 않은 줄글은 왜 이렇게 쓰기가 어려운지.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시는 압축과 비유라는 특유의 형식이 있고, 그 안에서 나를 다소 숨길 수 있다. 소위 거리 두기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그러나 줄글은 쓰는 내가 숨을 곳이 없다. 정말 힘들었을 땐 오히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속내를 털어놨지만, 어느 정도 정상 마음 궤도에 안착하자 방어벽이 세워졌다. 자기 검열 또한 심해졌다. 무슨 얘기를 써도 그 말이 그 말 같고, 한참 쓰다 보면 우는 소리 같아 애써 쓴 글을 미련 없이 지워버리기 일쑤다. 하나의 문장을 써낸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멋모르고 쓸 때는 몰랐다.


어쩌면 지금이 높은 계단을 뛰어올라야 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기존의 내 글에서 식상함을 느끼고 부끄러워한다는 건, 오히려 한 단계 나아갈 기회인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쳐도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한다.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초등학교 체육 시간 중 내가 유난히 벌벌 떨며 진절머리 내던 날들이 있었다. 뜀틀 뛰기. 높이는 충분히 감당할 만했으나 짚은 두 손을 고집스레 떼지 못했다. 자고로 뜀틀이란 두 손을 떼고 밀어내는 힘으로 뜀틀을 넘어가야 하는 법인데 내 엉덩이는 늘 손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뜀틀 위에 안착하고 말았다. 못하곤 못 배기는 성격이라 집에서 피아노 의자를 두고 연습까지 했건만 엉덩이가 손을 넘어 자유를 맛본 일은 없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엉덩이를 뜀틀 모서리에 박는 게 고작이었을 텐데.


그러고 보면 마지막 순간 나와의 싸움에서 나는 자주 물러섬을 택했다. 당장의 안온함을 위해, 한 발 더 나아가다가 다치는 일을 막기 위해, 당장의 상처와 아픔을 피하고자. 수많은 물러섬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흥미는 다양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한 사람으로. 더 할 수 있다고 기대되지만 어느 순간 조용히 고꾸라져 잊히는 사람으로.


이제는 이런 내 모습을 비교적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 왜 그랬는지도 이해한다. 그 방식이 지난 순간들에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다, 내가 이런 나를 미워하기 때문에. 나는 나와 세상에서 가장 친하고 싶다. 뭔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니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꾸역꾸역 쓴다. 이전과는 다른 결정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발씩 내딛겠다는 마음으로. 모자란 씀이 한 층 한 층 쌓여 다음 계단에 이르게 할 거란 믿음으로.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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