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돌보다

by 류하


돌보다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




'내면아이'라는 말이 유행을 넘어 진부해진 지 오래다. 그러나 매일이 똑같이 흘러간다고 삶을 놓아버리지 않듯이, 용어가 낡고 뻔하다 해서 단어가 담은 의미까지 퇴색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모든 어른은 자신의 내면아이를 잘 돌봐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한 선생님과 몇 년간 오만 속 얘기를 하다 보면 필터가 헐거워지게 마련이다. 며칠 전의 상담 때도 그렇게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고 있을 때였다. 반복되는 날카로운 질문에 속으로는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라며 뾰족한 마음이 목을 타고 올라오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oo 씨 스스로는 알아봐 주고 있어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 만화나 소설에서 보면, 순간 너무 놀라 어버버하고 말을 잇지 못하며 주변이 멈춘 듯한 장면 있지 않나. 딱 그런 기분이었다.


몇 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여러 모습이 스쳤다.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나, 당장의 귀찮음으로 씻기를 미루고 미적대는 나, 대충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는 나... 그렇게 되는 대로 하루를 버티던 날들이.


스스로는 방치해 둔 채, 주변에만 '나 이만큼 하고 있다고. 나 좀 봐달라고!' 외치고 있었구나. 그러나 나조차 소중히 하지 않는 나를 누가 성심성의껏 돌봐줄 수 있을까. 그동안 열심히 허공에 누각을 짓고 있었다.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견고하게 쌓아 올린들, 토대가 단단하지 못했기에 작은 균열에도 힘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 이렇게 직관적으로 와닿은 건 처음이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금을 막론하고 했던 이 말이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인간을 이루는 유전자의 배열은 지식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각각의 개체는 스스로를 감각으로서 인지한다. '나를 돌보는 일'은 설명으로 이해되는 영역이 아니다.


이날 상담의 시작은 '무력해요, 귀찮아요'로 시작했고, 깨달음의 '아하' 시간을 거쳐 '지긋지긋해요'로 끝났다. 몇 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음을 안다. 막연한 불안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기복을 완충하는 나만의 방식도 가지고 있다.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어떤 걸 해야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지도 대강 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더디고 괴로우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 무너진 누각의 잔해를 하나하나 치우며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이렇게 한들 뭐가 달라지나 싶고, 때때로 다 관두고 싶은 마음도 든다.


다행히 내 안엔 여전히 더 나아지기 위해 기꺼이 움직이려는 아이가 살아 있다. 이유 모를 두려움과 아픔 속에서도 자그마한 꿈을 끌어안고 빛을 내는.


그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면, 해 봐야지. 관심을 갖고 마음껏 움직일 환경을 만들어 줘야지. 그 일이 이 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일지도 모르니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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