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기태
48세의 남자. 과거 프로파일링 형사 경력을 가지고 있는 현 심리학과 교수.
여러 범죄자를 상대해본 경력과 마음에 병이 있는 젊은이들을 상담해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의 논문 중 어둠과 빛의 주제, 인간의 내면 심리 탐구 등에 관한 글들 중 일부가 이 프로젝트 다섯번째 서랍에 실리게 되었다.
(1) 형광등 1
라이터를 켰다
라이터를 껐다
라이터를 켰다
라이터를 껐다
어둠 속에서 칼을 든 살인마는 다시 라이터를 켰다
그리고 다시 껐다
창백한 시은의 얼굴이 보였다 말다 할 때
살인마는 시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불을 킬거야...'
'불을....'
살인마는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자 시은은 낮은 미소로 이번엔 자신이 살인마의 귓가에 속삭였다
"넌 그 불을 못 볼 거야..."
살인마는 피식거리며 속삭이는 시은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피를 많이 흘려 몸이 식어가고 있었다.
살인마는 시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불을... 내불은... 내 빛은 사라지지 않아'
'넌 보지 못해..
불이 널 외면하니까...
빛이 널 외면...'
시은이 의식이 흐려져갈 때
살인마는 다시 라이터를 켰다.
.
.
.
시은은 순간 눈을 떴다
살인마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시은은 누운 채로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형광등은 깜박깜박거렸다.
시은은 자신의 손목을 긋던 칼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눈에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2) 형광등 2
지희는 방에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모조리 다 집어던지고 있었다.
무언가에 중독돼서 모든 걸 날려버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죄책감에
그녀는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녀는 서랍에 꽂혀있던 사진첩을 전신 거울에 집어던졌다.
지희 : 꺼져!!!! 꺼져!!!! 꺼져버리란 말이야... 욱.... 우우 욱....
사라져.... 사라져 버리란 말이야.... 싫어... 싫다고.... 흑.... 흑.... 흑...
흑.... 싫어.... 싫다고... 흑흑흑...
그녀는 중독을 상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 상어에게 물려서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지희의 엄마는 엉망이 된 자신의 딸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지희 엄마 : 흑.... 흑..... 내 딸.... 지희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너무 미안해. 우리 딸.... 너무 미안해...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좀 더 널 지켜줬어야 했는데...
널 좀 더 안아줬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 내 딸....
지희 엄마는 가만히 지희를 꼭 안아주었다. 가녀린 그녀의 등이 떨려왔다.
지희는 엄마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희: 흑흑... 흑흑.... 으아아 앙.... 흑흑..... 흑흑흑... 아아아 앙....
지희 엄마: 우리 딸.... 괜찮아.... 괜찮아.... 사랑해 내 딸... 내 딸 지희야... 우리 딸이 엄마는 너무 자랑스러워... 다시 시작하면 돼... 괜찮아... 괜찮아...
지희: 엄마 미안해... 미안해.... 흑흑... 엄마.... 흑흑..... 엄마.... 미안해...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너무 사랑해... 엄마...
형광등이 깜박깜박거린다.
형광등이 켜진다
엄마의 얼굴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형광등이 꺼진다
상어의 얼굴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형광등이 켜진다
엄마의 얼굴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형광등이 꺼진다
상어의 얼굴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희를 안아주던 엄마...
아니 상어는 토닥토닥 거리며 가만희 지희의 어깨를 이빨로 물었다.
(3) 노을
상담자 : [창밖에 무엇을 보고 있나요?.]
살인자 : [노을을 기다립니다.]
상담자 : [노을이요?.]
살인자 : [난 어릴 때부터 노을이 뜨길 기다리곤 했었죠.]
상담자 : [음... 노을의 환한 빛이 당신의 마음에 안정감을 주었나 보군요.]
살인자 : [아니... 그 빛에 드러나는 내 그림자를 원했습니다.
그 그림자를 봐야... 사람 죽일 때 안정감을 느끼거든요...]
삶에 빛이 비쳐올 때
환희와 애정과 따스함을 느껴야지,
빛에 비춰 드러나는
그림자,어둠만을 생각해선 안 됩니다
(4) 증오
고등학생 준석은 석유통을 들고, 비틀 거리며 경찰서 앞으로 다가갔다.
준석은 경찰서 문을 힘없이 열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지금요... 제가 지금 화가 너무 머리끝까지 나서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런데요...
여기에 불 좀 질러도 될까요?”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업무에 충실히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한 경찰관만이 무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뭐 알아서 하렴. 그런데 문 옆에 달린 전신 거울,
네 지금 모습을 비춰주는 그 전신 거울, 그건 태우지 마”
순간 준석의 시선은 대답해준 경찰관만이 유일 하게 보였다.
준석은 그 경찰관을 향해 물었다.
“왜요?”
그는 준석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아무리 불태워도 소용없거든”
준석은 아무 말 없이 전신 거울을 응시하다가
석유통을 문 앞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5) 어둠과 빛
어둠이 지나 빛이 온다
그런데
어둠을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6) 어둠과 빛 2
두 눈을 감으면 암흑뿐이다
그래서 살짝 눈을 뜨면
빚을 볼까 내심 기대하지만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몸을 일으키면
오랫동안 누운 몸을
아주 잠깐이라도 일으키면
우습게도 현기증 때문에 핑돌아서
살짝 눈에 밝은 색이 비쳐온다
빛이란 그런 것이다
희망이란 그런 것이다
소중한 친구여
잠깐만 몸을 일으켜다오
어쩌면
그 한 번의 일으킴이
빛 사이로 걸어가는 네 모습을 보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