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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등대 (방화)

사진 : unsplash

by EON


등대


[희망을 비출 것이라는

안식을 줄 것이라는

등대가 불타고 있다


등대는 연기 속에 점령되어 간다

등대는 짙은 그림자 속에 잠식되어 간다


그곳에 빛이 있길 바랬지만


아픈 이 시간이 지나고

고개 숙인 이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는

많은 이들을 환하게 하는


빛이 있길 바랬지만]

.

.

.

신경을 거슬리는 듯한 삐-소리가 준석의 귀에 서서히 커져왔다.

하지만 그 환청 같은 삐 소리는 준석이 살인할 때 은밀히 희열을 느끼는 부분이자

자신의 내부에 미묘히 남아있는 '양심'에 마지노선으로 살인의 정당함을 합리화하는 부분이었다.


활활 불타고 있는 그곳에, 온몸이 불에 휩싸인 남녀의 비명 소리가 마구 울려왔다.


[아아아아악! 아악!! 살... 려.... 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 아! 아아아아아악!]


수십 명의 남녀가 불타 나 뒹구는 끔찍한 모습,

뒤엉켜 뛰쳐나와 발버둥 치는 그 처참한 광경 속에- 준석의 시선은 그 끔찍한 모습을 넘어- 화재 속에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준석은 고개를 살짝 까닥 거리며, 미소 지은 후 읊조렸다.


[불... 등대 불... 검은빛...]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끼아 아악! 꺄아아아아악!]


절규와 비명 소리가 이리저리 뒤엉켜 울리는 가운데 잿빛 화염이 준석 눈앞의 시선을 점점 더 감싸왔다.

그 순간의 영감을 놓치기 싫었던 준석은 스마트폰 메모장에 쓰던 글을 마저 쓰기 시작했다.


[등대는 연기 속에 점령되어 간다

등대는 짙은 그림자 속에 잠식되어 간다


그들의 등대는

그들의 빛은


암흑의 불에 점령되어 간다

흑암의 빛에 소멸되어 간다


그곳에 따스한 빛이 있길 바랬지만


아픈 이 시간이 지나고

고개 숙인 이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는

많은 이들을 환하게 하는


참 빛이 있길 바랬지만


등대는

안개 속에 사라져 간다]


(방화 살인범 준석이 실행한 집단 화재 살인.

00 클럽 VIP룸 새벽 2시경.

마약과 각성제를 혼합한 환각 파티를 즐기고 있던 27명 전원 화재로 사망.


그중에는 유명 모델 A 씨, 경찰 총창 자녀 c 씨, 신인 가수 R 씨, 종교 지도자 L 씨 등이 있었으며...)

.


불타고 있는 클럽 천장에 화려한 조명이 회전하며 이곳저곳을 비추고 있다.


준석의 눈에는


등대의 등이 이곳저곳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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