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떤 색이 나올지 모르는 물감들을 섞는다.
어릴 적엔 수채화 그림을 그려오라는 숙제가 제일 귀찮았다. 밑그림을 그리고, 또 원하는 색을 만들기 위해 물감을 섞고. 붓에 물은 또 왜 그렇게 많이 묻혔는지 종이가 금방 울어버리고 말았다. 시간은 늘 5교시와 6교시였다. 그 말는 그림은 완성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뿐이란 말이다. 늘 내 시간은 부족했고, 종소리가 들리면 다급히 뒷장에 ‘몇 반, 몇 번 000’을 적어내기 바빴다. 그리고 말랐나 싶을 때쯤 다른 색을 칠하기 위해 물감을 덧칠했을 땐, 마르지 않은 스케치북에 구멍이 생기기도 했고, 친구들과 밖에 나가 놀다가 집에 돌아왔을 땐 선명하게 말라있는 스케치북을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살다 보면, 어릴 적 수채화 그림을 그리는 일처럼 늘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몰라 스케치를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하고, 물감이 다른 색과 섞여 원치 않은 색이 칠해지기도 한다. 다 끝났다 싶다가도 그림이 마를 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나 필요하다. 성인이 되어도 내게 수채화 그림을 그리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언제쯤 도화지 위에 손 지문을 찍어도 그림이 훼손되지 않는, 선명하고도 짙은 색을 띄울 수 있을까. 오늘도 난 여전히 어떤 색이 나올지 모르는 물감을 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