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탁 진 Feb 10. 2021

삶을 존중하는 버릇

요시타케 신스케의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 서평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불변의 사실이 마음에 더욱 와닿는 요즘이다.



  코로나의 급작스러운 발생으로 지난해 연초부터 연말까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 나는 마스크, 개인 방역, 외출 자제  여러 제약 앞에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설마설마 했지만 결국 새로운 학교에서의 학교생활이 무산되고 말았고, 외출마저 어려워지자 권태로운 일상의 연속만이 남게되었다.  결과 '코로나 블루라는 이름의 무기력감에 휩싸여 생기를 잃고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잊은  삶을 무채색으로 물들였다. 이런 나를 두고 2020년은 빠르게 달아나 버렸다.


  새해를 맞이한 후, 언제 제대로 끝이 날지 모를 사태의 가운데에서 이 이상 권태로의 침잠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년계획을 고민하던 와중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기록을 통해 삶의 모든 장면을 존중하는 태도와 세상을 즐겁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방법을 깨우치게 되었다.




  저자는 세심한 관찰력과 끝없는 호기심을 지닌 사람이다. 벗어둔 양말, 아까워서 쓰지 못하는 새 물건, 양쪽에서 부모에게 손을 잡힌 아이가 엉덩이를 빼고 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습 등, 그는 자신이 살아가며 마주하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스케치로 저장한다. 그렇게 남겨진 그의 스케치 안에는 일상에서 포착된 장면들뿐만 아니라 잡념에서 시작된 온갖 사고의 흐름이 담겨있다.


  한 손만 잡고 걸을 때는 똑바로 잘 걷지만, 양쪽에서 두 손을 잡아주자 그것이 일종의 이벤트가 되어 아이의 행동이 바뀌는 모습을 포착한 스케치이다. 가장 마음에 든다.

  이와같이 그의 스케치는 어렵지 않다. 몇 가지 점과 간결한 선, 단순한 채색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해가 쉽고 친숙하다. 독자들이 마음을 열고 책의 내용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데에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쉬워 보이는 탓에 ‘나도 작가처럼 틈틈이 일상을 그림으로 기록해볼까’ 하는 실천 욕구를 자극하기도.)



  어른은 물론 아이가 읽어도 좋은 책이다. 그런데도 나는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을 글로 풀어내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 이유는, 책의 내용보다 저자가 지닌 '무심코 떠오른 생각을 그려두는 버릇' 자체에 나의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렀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상념이나 일상에서 포착해낸 장면들 속에서 인생의 이치와 즐거움, 관용 등을 발견해낸다. 그러나 책 어디에도 그가 낙천주의자라거나 특별히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란 단서는 없다. 그저 스케치를 통해 잡념과 의문이 담긴 시간을 한 번 더 음미하고, 판단하는 사람일 뿐이다. 놀랍게도 이 과정을 거쳐 그가 얻어내는 것은, 자신과 세상을 좀 더 따듯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또, 눈앞에 놓인 모든 장면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인간을 구성하는 생각-감정-행동의 삼각형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게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건을 판단하는 개인의 신념체계라는 말이 있다. (우울증 및 불안 인지 요법을 개발한 정신의학자 에런 벡(Aaron T. Beck)의 말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신념체계를 파악하고 사고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으로 충분히 스스로를 부정에서 건져낼 수 있다. 즉, 생각의 제어를 통해 감정과 행동의 성질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기반으로 저자 요시타케의 경우를 보면, 그는 마트 계산대 위의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상자, 자신과 아내가 판이하게 구겨놓은 빨대 껍질 등을 보고 한 잡념과 약간의 부정적인 의문을 놓치지 않고 스케치로 기록한다. (나는 이를 생각이 채 개입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포착해내는 행위라고 해석했다.) 그 후, 스케치를 기반으로 다시 한번 잡념의 순간을 머릿속에서 음미해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우리의 인생 또한 자유로운 것', '나와 너무 다른 무언가도 가까이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인생의 오묘함' 등을 깨닫고, 감정을 긍정으로 끌어다 놓는다. 또, 삶의 장면을 통해 이치를 얻어냄으로써 하찮았던 한 순간을 자신의 일부로 완성해낸다. 그야말로 생각과 감정의 상호보완작용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인 것이다.  (만일 그가 기록을 통해 시간을 재차 음미하지 않고 흘려보냈더라면, 그의 의문과 잡념은 한동안 부정적인 감정으로 남아 그 시간과 마음을 물들였을 것이다. ‘쓸모없는 싸구려 상자’, ‘지저분하게 구겨진 빨대 껍질’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며.)


  여기서 우리는 일상을 포착하고 재차 음미하며 삶을 따뜻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은 영원한 불가침의 영역이겠지만, 그 시간을 저장하여 어떻게 나를 구성하는 일부로 만드는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이번 한해 나는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을 기록하는 버릇'을 들여 생의 장면들을 차곡히 모아 두려 한다. 지난해에 흘려보낸 텅 빈 시간 만큼이나 텅 비어버린 마음을 채우고, 내 삶의 모든 장면들을 존중하기 위해 말이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