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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Apr 13. 2022

불륜 드라마를 대하는 남편의 올바른 자세

아내의 마음을 한 방에 사로잡을 비장의 멘트.   


 드라마에 불륜이 등장하면 마치 MSG가 입맛을 쫙 끌어당기듯 몰입도가 급상승한다. 

불륜녀를 찾아가 머리끄덩이를 잡아도, 우정을 만들어도 다 흥미진진하다.

 

너무 재밌어서 무릎을 백번 치며 본 와이 우먼 킬 시즌1.

왼쪽부터 이전 과거, 과거, 현재의 그녀다.


한 집에 살았던 현재의 그녀, 과거의 그녀, 그리고 그 이전의 과거의 그녀.

세 여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모든 에피소드가 주옥같다. 

그중에서도 과거 그 이전의 과거의 주인공인 배스 앤.

남편에게 충성스러운 그녀는 마음씨도 쓸데없이 착해

남편의 불륜녀를 찾아가서도 그녀에게 호감과 연민을 느낀다. 

이 과정이 억지가 1도 없이 완벽했다. 


와이 우먼 킬 시즌1, 남편의 불륜녀에게 호감을 느끼는 베스 앤


배스 앤은 남편의 아이를 임신하고 불안해하는 불륜녀를 위로하고

그녀의 꿈까지 응원하다. 심지어 불법 낙태 수술을 결정한 그녀와 동행해

엄마처럼 그녀를 걱정을 한다. 이런 게 연대라는 것이구나. 

현실에서는 힘든 일이겠지만, 또 막상 닥치면 나도 조금은 비슷하게 행동할 거 같기도 하다. 

물론 남편은 완전 쓰레기여야 하고, 

외도 중인 그녀는 착하고 순진하며 악의가 하나도 없다는 가정 하에. 


남편은 불륜 드라마 보는 것을 싫어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드라마에는 아내보다 남편의 외도가 더 많이 등장한다.

드라마에 공감한 아내의 분노는 왠지 모르게 남편을 향하게 되니

남편들은 눈치를 보며 처신(?)을 잘해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와 같은 대사에 분노한 나는

갑자기 남편의 등짝을 때리며 무시무시한 협박성 멘트를 날린다.  


"하여간 오빠 바람피우면 그냥 입던 옷만 입고 집 나가. 

우리의 모든 재산은 내 거. 빚은 오빠 꺼. 양육비 생활비 꼬박꼬박 입금해.

 안 했다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버릴 거야. "


바람은 드라마가 피웠는데, 화풀이 상대는 남편이다. 

계속 앉아 있다간 무슨 불똥이 떨어질까 두려워진 남편이 슬금슬금 일어나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이 상황에 필요한 건 어떤 밸런스다. 확실하게 기울어진 이 상황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며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내가 바람피우면 어떡할 거야?" 


그런데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정작 남편의 입에서 나와야 할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 거다! 

정답이 뻔한 문제들에도 그는 정답을 말한 적이 없다. 

그는 그런 인간이다. 그는 도대체 뭐라고 답을 할까?   

그가 날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하면. 땡! 오답이다. 

괜찮다고 해도 땡땡! 이것도 확실히 오답이다. 정답이 뭘까?  

남편은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툭, 


"한 번은 봐줄게." 


 방송작가를 오래전에 그만뒀지만, 직업병이 아직 남아서 그런 가

나는 멘트 욕심이 있다. 나, 이 멘트 맘에 든다. 출제자도 생각 못한 정답이 남편 입에서 나온 것이다. 

한 번은 봐주겠다는 남편의 쿨한 대답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한 번 바람피울 쿠폰을 받아 좋아진 게 아니라 

왠지 남편의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 보였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20년 만에 그의 입에서 정답이 나왔다. 브라보!  


"뭐야? 그 멘트 탐나는데? 내가 했어야 했는데... 짜증 나!!" 






지난주, 남편이 코로나에 확진됐다. 

감기 기운이 있다며 얼굴이 벌겋게 돼 돌아온 남편이 

연어 회덮밥이 차려진 식탁으로 걸어오며 코를 킁킁대며 이런 다.  

 

"어디서 음쓰(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난다?" 

"나 밥 차리느라 힘든 거 안 보여? 정신 차려"

"나 코로나 아닌가 봐. 후각이 아주 예민하네. 그냥 감기인가 봐"


자가검사 키트에도 음성이 나왔다며 아주 당당하다.

결국 코로나 기저질환이 있는 막내까지 함께 다 같이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날 저녁 나는 다른 방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났더니

아침에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은 남편이 마스크를 쓰고 나와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겠다며 

집을 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확진이라는 전화가 왔다. 


나와 막내의 PCR 검사가 음성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기저질환이 있는 막내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증이 밀려와 남편에게 모진 소리를 내뱉었다. 

 

그런데, 문득 그가 예전에 했던 그 멘트, "한 번은 봐줄게"가 생각이 나는 거다.

깊은 숨을 몰아쉬고, 기도를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가족을 위해 일하다가 감염된 건데, 내가 왜 이러나... 

정신을 차리고, 안방에 있던 내 살림들 급히 쓸 일주일 정도의 분량을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남편의 격리를 위한 철저한 조치가 끝나고 남편이 집으로 왔다.  

축 처진 어깨엔 기저질환이 있는 둘째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렇게 안방으로 들어간 남편은 식사가 담긴 수레가 왔다 갔다 할 때를 빼곤

방문을 열지 않았다. 문 열기 전 5분 환기법은 적어도 우리 집 안에서는

대한민국 헌법보다 상위법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식을 돌보는 어미의 심정으로 

일주일 동안 확진된 남편을 돌봤다.  


"한 번은 봐줄게." 그 말이 떠오르지 않았어도 나는 아내로서 

마땅히 아픈 남편을 보살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 때문에 왠지 정성을 다하고 싶어졌다.   

내 정성은 이런 거다.    

끝물 딸기가 싱겁길래 반으로 잘라 설탕에 절여두었다가 주는 것,

버터발라 구운 토스트를 식기 전에 먹이고 싶어 

오븐에 넣기 5분 전에 방문을 두드리며 환기를 하라고 하고

빵이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접시에 담고 사진을 찍은 후  

바로 수레를 방문 앞에 놓아주는 것!  후후 훗


아내와 불륜 드라마를 시청하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드라마를 보며 뚜껑이 열린 아내의 마음을 다독이며  

"한 번은 봐줄게!"와 같은 멋진 멘트를 투척할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는다면 

당신은 분명 오븐에서 갓 나온 버터가 사르르 녹은 토스트를 한 입에 베어먹을 수 있는

행복한 남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말해본다.    

 

 

2022. 4.1 ~ 4.11 코로나에 확진된 남편을 위해 준비한 아내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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