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며느라기 시즌2 ing 리뷰#경단녀#육아 우울증
운전을 하다가 빨간 신호를 만나 차를 세웠는데 눈앞에 다섯 살 즈음된 여자 아이와 엄마가
커플 원피스를 입고 신호등을 건넌다. 펄럭거리는 원피스 자락이 참 예쁘다.
엄마 허리에도 못 미치는 작은 아이가 한 손은 엄마 손을 잡고 나머지 한 손은 번쩍 들었다.
앙증맞은 발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을 보다가 왠지 눈물이 났다.
드문 일이긴 한데 가끔 엄마 노릇을 즐기는 엄마를 만난다. 밥도 재밌게 짓고 육아도 깔끔하게 순탄하게 해내는 그녀가 나는 진심으로 부럽다. 솔직히 나는 육아가 그렇게 즐겁진 않다. 지루하고 답답한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어떻게든 엄마 노릇 말고 다른 걸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내 안이 꽉 차 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새댁도 아니고, 결혼 23년 차 중년인 내가 아직도 이러고 있다는 게 부끄럽다. 오늘 아침 우연히 브런치에서 88년 생 엄마가 쓴 육아일기를 읽었다. 갑자기 엄마가 된 그녀가 느끼는 불안감과 책임감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성인이 된 딸이 있다.
십 년쯤 뒤 내 딸도 이런 육아일기를 쓰면 어떡하지?
지난 일요일, 어쩌다 집에 혼자 남겨져 TV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마침 며느라기 시즌2 ing를 연속 방송하고 있었다. 명절엔 며느라기지! 물론 이번 추석에 나는 코로나 확진으로 며느리가 아닌 코로나 환자로 격리되는 영광을 누리느라 어떤 분노나 꼬인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달리 볼 게 없어 점심을 먹으며 몇 편을 우르르 시청했다. 임신을 한 주인공 민사린이 회사에서 또 시댁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기발한 에피소드는 아닌데도 잔잔하게 주인공 민사린의 마음을 따라가니 눈물이 났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예전에 며느라기를 보며 느꼈던 억울함과 다른 느낌이다.
내 마음이 '왔다 갔다 이랬다 저랬다' 했다.
예전엔 나는 며느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을 다 때려 부수고 싶었다. 분명 그랬는데,
아이 옆에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며느라기 시어머니의 고리타분한 대사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점심 약을 먹기 위해 약봉지를 집어 든 순간, 그 이유를 알았다. 거기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만 50세 임지원] 50세가 되면 꽥꽥거릴 기운도 없어지는 것인가?
코로나를 극복한 우리 아이가 등교를 시작했다. 기저질환으로 인해 점심시간이 되면 집으로 데려와
밥을 먹이고 다시 학교로 데려다주었지만 이제 점심 급식도 학교에서 먹기로 했다!
난 우리 아이가 코로나에 걸리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아이가 확진되고 다음 날 나까지 확진되면서
우리 집은 그야말로 아노미 상태였다. 그런데 다행히 일주일 격리기간 동안 아이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코로나를 견뎌낸 것이다. (오히려 내가 기침이 길어지며 힘든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아이는 아이패드와 지난번 생일날 사준 해리포터 20주년 시리즈로 격리 기간을 나름 즐겁게 보내고
드디어 학교에 다시 등교를 했다. 감사한 마음속에는 작은 불안함도 존재했다. 코로나 격리기간에
추석 명절까지 꽤 오랫동안 학교를 빠진 셈이니 친구들 사이에서 머쓱한 기분은 들지 않을까?
코로나 이후 급식을 먹은 일은 단 한 번뿐이었는데, 다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걱정이 밀려왔다. 이럴 때 나는 내가 너무 뻔한 엄마인 게 싫어진다.
이럴 일이 아니다 하며 마음을 다스렸는데 결국 내 예상대로 잔뜩 구름 낀 어두운 얼굴의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친구들하고도 조금 머쓱했으며
체육 시간에 일명 꼬마야 꼬마야 줄넘기를 했는데 자기 차례에서 자꾸 걸려 몇몇 친구들에게 원성도 들었고
그린 퇴식구, 레드 퇴식구 같은 예전에 있던 급식실 시스템도 달라져 당황했고
무엇보다 급식 메뉴로 나온 치킨가스가 너무 딱딱해 아무리 씹어도 삼킬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거기서 그걸 뱉을 수도 없어서 그걸 집까지 입에 물고 온 것이다!
내 마음이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 이제 알 거 같다. 아이가 밝고 긍정적인 편이지만 변화에 적응하는
데는 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분명 오늘만 힘들면 내일은 잘할 거라는 믿음은 있다.
그래도 하루 힘들었던 마음에 대한 위로는 분명히 필요한 그런 순간이 온 것이다.
어느새 내 키를 다 따라잡은 토실토실한 5학년 청소년을 신생아처럼 품에 안으니
내 몸을 가누기도 힘들다. 그래도 힘을 내 꼬옥 안아주었다. 아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내 가슴팍이 눈물로 얼룩진다.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행복했다.
이 순간 내가 아이 옆에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힘든 하루였지만 엄마 품에서 따듯했다는 걸 아이가 기억해주길 바랬다.
오늘 '엄마 점수'를 많이 딴 날이니 중2병 사춘기 왔을 때 꺼내 써야지!
자식을 더 이상 품에 안을 수 없는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한참을 그렇게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 얼굴이 점점 밝아지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방으로 가더니 책을 읽겠다고 한다. 그러라고 하고 나는 닭정육을 썰어 튀김가루를 입혀 튀기고
양파를 오래 볶아 카레를 만들었다. 위로가 필요한 날엔 늘 뭔가를 튀기게 된다.
튀김만큼 큰 행복을 주는 음식은 없으니까!
이미 내 품을 절반 이상 떠나버린 큰 아이는 귀가가 늦는다고 연락이 온다. 바쁜 모양이다. 고마운 일이다.
퇴근한 남편까지 셋이 함께 저녁을 먹고 우리는 줄넘기를 챙겨 이미 어둑어둑해진 밖으로 나갔다.
성인용 줄넘기 줄을 최대한 늘려 꼬마야 꼬마야 연습을 시작했다.
난 그냥 아이 혼자 뛰는 줄넘기만 잘해도 충분히 기특한데, 요즘 아이들이 하는 줄넘기는 그런 단순한 게 아닌 모양이다. 긴 줄넘기를 선생님과 학생이 돌리면 아이들이 팔자를 그리며 계속 꼬마야 꼬마야 뛰기를
하는데 누구 하나 걸리지 않고 계속 뛰어야 한단다. 쉽지 않겠다.
우리 큰애도 초등학생 시절 줄넘기 때문에 맘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그래도 얘는 힘들게 가르쳐 혼자 뛰기는 제법 할 수 있게 됐는데, 이젠 꼬마야 꼬마야 뛰기까지 잘해야 한다니 아! 학부모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컴컴한 가로등 아래서 꼬마야 꼬마야 연습을 하는 아이를 보니 웃음이 나온다.
아빠도 한번 뛰어보고 엄마도 한번 뛰어보고, 아이도 자기만의 줄을 넘는 리듬을 찾아간다.
그러니까...
갑자기 찾아오는 이런 날 때문에 엄마는 아이 옆에 있어야 하나보다.
지겹기도 하고, 종종 무기력하고 답답한데, 그래도 이런 날이 있으니... 어떡해.
이래서 내가 드라마 '며느라기' 시어머니의 말에 공감을 했나 보다.
엄마는 아이 옆에 있어야 한다는 말. 나는 시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다.
하지만 11년 터울로 태어난 나의 두 딸이 이래 저래 별라 일하는 엄마의 커리어는 한방에 멈췄다.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주저앉았다. 종종 버둥거렸지만 결국은 아이 옆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세월이 22년이 지나 문득 돌아보니 사랑스러운 두 아이가 내 곁에 있다.
이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만만한 게 아니었다.
이젠 이런 생각까지 든다. 그렇게 대단한 커리어도 아니었는데 그걸 그렇게 아까워했니?
그게 대단한 것이라도 나의 두 아이를 키우는 일만큼 중요했을까?
어떻게든 직장 생활을 지속하고 거기서 보람을 찾고 싶어 하는 며느라기의 주인공이 오래전 내 모습 같다.
그 마음이 뭔지 너무 알겠는데 육아는 변수도 많고 벅찬 일이라 쉽게 엄마와 직장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솔직히 그렇다. 드라마야 어떻게든 꾸려 나가겠지만
현실이라면 엄마가 된 그녀의 미래는... 모르겠다. 더 말하기 싫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
우리 동네에도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한 엄마들이 놀이터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종종 그녀들의 깊은 한숨 소리를 듣는다.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이렇게 특급 위로가 필요한 날이 불쑥 찾아오니
엄마로 대기할 수밖에...
오랜만에 엄마로서 큰 활약을 펼친 하루에 대한 기록이다.
모두가 신기해하는 MZ세대의 글도, 사회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룬 어떤 이의 글도 아니다.
그저 만 50세 이름 없는 중년 여성, 서발턴의 목소리.
그렇게라도 누군가에게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