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희망이 유튜버라고요? 아니요 당장 유튜버를 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우리 집 둘째가 11살이나 많은 대학생 언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언니, 구취가 무슨 뜻인지 알아?"
"구취? 그건 입냄새라는 뜻이야, 구가 입구 자야."
"내가 그걸 모르겠어? 그거 말고!"
"... 그거 말고? 구취라...?"
"아휴! 구독취소, 구! 취!"
"아...!!!"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던 중 둘째가 말한다.
"알고 봤더니, 우리 반 친구 OO이가 구독자 엄청 많은 유튜버더라!
심지어 지뽀님이랑 반모로 라이브까지 했데! 나 그 친구한테 콜라보 제안까지 받았다!"
Z세대인 큰 딸과 X세대인 우리 부부는 모두 함께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눈만 껌벅거렸다.
도대체 우리 집 초딩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시작은 꿈끼 발표였다. 비포 코로나 시절에 꿈끼 발표는 대부분 오카리나, 리코더, 좀 특별하게 준비한다면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악기 쪽이 아니면 남자아이들은 마술이나 여자 아이는 드물게 아이돌 댄스나 치어리딩 같은 걸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니 입으로 부는 건 안 되는 거다. 가정통신문에는 집에서 연주하는 장면을 촬영해 영상으로 올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뭘 할 수 있나? 생각을 하다가 기타나 우쿨렐레 정도는 라이브 공연이 가능할 것도 같아 우쿨렐레 연주를 권했더니 절대 싫단다. 그런 건 너무 '힙'하지 않다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가 만든 스톱모션 영상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그걸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거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유튜브 채널을 만든다고? 헐. 초등학생 장래희망 1위가 유튜버라는 뉴스를 보면 혀를 끌끌 차던 나다. (혀를 끌끌 차다? 이 표현마저 내 나이를 실감케 한다. 올드해 너무 올드하다고!) 그런데 지금 내 아이가 유튜버가 되겠다고 한다! 우리 집에 나타난 이 맹랑하면서도 낯선 이 생명체를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 것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그래, 나는 늦둥이 엄마다. 흠흠 안티 에이징에 최선을 다하면 대충 젊은 엄마 흉내는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어려운 관문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스톱모션 영상에 대해 나도 알고는 있다. 우리 아이가 열광하는 셀프 어쿠스틱 유튜브 채널을 몇 번 봤다.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림 그리라고 사준 아이패드를 배터리가 2% 될 때까지 유튜브만 보며 낄낄대고 있으니 엄마인 나도 도대체 뭔가 싶어 본 것이다. 스톱 모션이라는 것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조금씩 움직여 컷컷 찍은 사진을 하나의 영상으로 만든 것인데, 생각보다 재미있긴 했다! 셀프 어쿠스틱은 이미 유명한 거 같았다. 테팔 프라이팬이나 가히 멀티밤 같은 제품의 광고까지 하고 있었다. 돈을 꽤 많이 받았을 거 같은데... 젊은 친구들이 참 대단하네! 하면서 봤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그걸 흉내 내며 뽀시락 뽀시락 오리고 붙이고 찰칵찰칵 할 때만 해도 설마 직접 유튜브 채널을 만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아이의 성화에 나는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 그럼 그걸... 어떻게 만드나?"
그래도 종종 유용한 공대남 아빠가 더듬더듬 협조를 해 [로얄 햄지의 스톱모션]이라는 채널을 만들어 주자 몇 날 며칠을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찍은 영상 몇 개를 올렸다. 친지들과 친구들의 협조로 구독자 몇 명이 생기고, 드디어 꿈끼 발표회가 있던 날, 반 친구들에게까지 공개를 했다. 그런데 반 친구들 중에 이미 37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가 있었고, 심지어 그 친구는 지뽀라는 또 유명한 유튜버와 반모, 그러니까 반말 모드로, 라이브, 그러니까 라이브 방송까지 한 엄청난(?) 존재라는 것! 그 대단한 친구가 자신에게 콜라보 제안을 했다며 신바람이 나서 했던 말이 바로,
"알고 봤더니, 우리 반 친구 OO이가 구독자 엄청 많은 유튜버더라!
심지어 지뽀님이랑 반모로 라이브까지 했데! 나 그 친구한테 콜라보 제안까지 받았다!"
37명 구독자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 암튼 세상이 많이 달라진 모양이다. 스카이 캐슬의 입시 코디가 나에게 말하는 듯하다. "이 아이, 감당할 수 있습니까? 어머니!!!"
내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감지한 큰 아이가 자기도 '구취'가 무슨 뜻을 물어보는 동생의 질문에 입냄새라고 답했다며 Z세대인 자기도 동생한테 세대차이를 느낀단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도 동생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친구한테 콜라보 제안받아서 좋아했다고 말하니 친구들도 다들 깜짝 놀라며 웃었단다. 이게 무슨 일이야? Z세대까지 놀라게 한 요즘 초딩 스케일...!!!
얼마 전 유퀴즈 프로그램에 모든 자녀를 서울 대학교에 보낸 가수 이적의 어머니가 출연한 걸 봤다. 이적이 엄마를 위해 쓴 시를 보고 진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마지막 행, 조용히 허무하다 였던가? 그 구절이 내 마음에 달라붙어 사르르 녹는 거 같았다. 어떻게 그 마음을 느꼈을까? 이러니 그런 노래를 만드는구나. 그래서 이적, 이적 하는구나! 했다. 바로 그렇게 이적을 키운 엄마, 박혜란 여사님의 말 중 "뭐가 될지 궁금해하세요."가 또 내 마음에 남았다. 큰 아이를 키울 때 그걸 못했다. 여백이 너무 없었던 나의 첫 번째 육아... 그래서 둘째는 정말 궁금하고 싶다!
Z세대까지 놀라게 한 우리 집 로얄 햄지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