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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Oct 31. 2022

나의 이태원 이야기

이태원의 비극을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나에게 이태원은 아주 오랜 시간 빅사이즈의 옷을 사는 곳, 외국인들이 길거리에 무섭게 서 있는 곳이었다. 용산구에 삼십 년 이상 거주했지만 이태원에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몇 년 전 용산에서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는데, 장소가 이태원 맛집이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태국 음식을 먹고 골목골목을 걸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설렜고 신났지만 나이 탓인지 곧 힘들어졌다. 우리는 유명한 카페를 찾는 것도 포기하고 그냥 길 옆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가정집을 개조한 듯 보이는 그냥 그런 카페였다. 복잡한 입구와 불편한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갔다. 


 "와!"  "와!" "와! 와!"


 2층에 도착한 순서대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활짝 열린 창문 밖엔 탁 트인 구도심의 전경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무질서하게 펼쳐진 골목과 오래된 건물들이 만들어낸 도시의 풍경...  이태원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밤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홍석천 씨가 왜 이태원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 인생에 반 이상을 용산에 살았지만 이태원이 이렇게 

멋진 곳인지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에겐 그냥 우범지역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아본 것이다. 이태원이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나는 홍석천 씨를 90년대 중반 SBS 등촌동 공개홀에서 만났다. 내 다음 기수로 예능국 방송작가로 합격했다. 내 기억으론 그는 'LA 아리랑'? 암튼 시트콤팀에서 일했다. 내가 속한 '좋은 친구들'방, 바로 옆방이라 그와 종종 마주쳤다. 물론 그는 날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한 번은 그가 등촌동 작가실 멤버들을 자신이 출연하는 연극에 초대했다. 그의 연기는 놀라웠다. 연극을 본 후 난 그를 평범하게 대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홍석천의 비즈니스에 이어 웹툰 원작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까지 대히트를 치며 이태원은 강남, 홍대, 신촌에 버금가게 힙한 곳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장소가 주는 이미지가 얼마나 큰가! 이태원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곳으로 MZ세대의 사랑을 받으며 외국에서도 서울 이태원 하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명소가 되었다. 


 지난 토요일 저녁 우연히 YTN을 틀었다. 3년 만에 노 마스크 행사로 열린 이태원 핼러윈 파티 현장이라며 라이브로 현장에 취재 나간 기자의 모습이 나왔다. 코스튬을 한 여러 명의 젊은이들이 카메라 앞에 선 기자 옆에 모여 흥겨워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초등학생인 작은 애, 대학생인 큰 애, 중년의 우리 부부까지 TV 앞에 모였다. 자신의 아이를 사탄의 인형 처키로 분장하고 나간 젊은 부부의 인터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연인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나에게 '힙'에 대해 알려준 대학생 딸은 자기도 시험 준비만 아니면 분명 저기 가 있을 거라며 요즘 친구들이 코스튬을 하고 이태원 클럽을 가는 것이 가장 힙한 문화라고 알려주었다. 왜 이태원이냐고 묻자, 강남은 왠지 무섭다고 생각한단다. 버닝 썬 사건 때문인가 보다. 그리고 홍대는 좀 뻔하단다. 사실 홍대가 꽤나 오랫동안 명성을 누린 건 사실이다. 나도 이십 대 시절에 방송국 사람들과 홍대에 있는 클럽, 명월관에 갔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테크노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들었다. 다시 못 올 그 젊음의 시간들은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난 자부심을 느낀다. 그것은 분명 내 젊음의 스웨그다! 그리고 이제 이태원이란다. 놀라웠다. 살인사건의 발생지이자 우범지역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밤이 지나고 아침에 눈을 뜬 나는 무심코 휴대폰을 들고 생각 없이 포털을 열었다. 이태원 참사? 기사를 읽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자고 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남편은 우리나라 얘기 맞냐며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맞다고 하니 그게 말이 되냐고 한다. 그러게! 정말 말이 안 되는 거 같아 리모컨을 찾아 TV를 틀어보았다. 화면 상단의 사망자 숫자에 너무 놀라 자고 있는 딸을 깨웠다. 딸에게 말을 하니 아빠처럼 믿지 않는다.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딸에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어젯밤 우리가 뉴스에서 본 바로 그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놀란 딸이 일어나 말한다. 


 "나도 내 친구도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거기 이태원..." 


 2022년 우리나라에서. 오랜 팬데믹으로 끓어오르는 젊음을 발산하지 못한 채 몸도 마음도 고단했을 

우리 아이들이 잠깐이나마 숨통을 열어보고자, 밝게 웃고자, 젊음의 스웨그를 발산하고자 그곳에 갔을 

뿐인데, 살아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테러도, 총기난사도 아니었다. 그냥 길에서. 이게 말이 돼?  


 그런데...  

경찰이 더 배치되었더라도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고 한다. 책임 질 사람은 없는 행사라고 한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내 안에 어두운 작은 방에 불이 탁 켜졌다.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당장 뭔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뜨거운 에너지가 차올랐다.


믿을 수 없는 이 충격적인 비극을 두고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고? 왜 이 황망한 죽음 앞에 아무도 무릎 꿇지 않는 거지? 눈물로 사죄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지?  


이러다 그냥 서양에서나 지키는 명절에 이상한 코스튬 분장을 하고 클럽에나 놀러 가는 생각 없는 젊은이들이 서로를 밀고 밀치며 무질서하게 놀다가 그만 죽은 거라고 결론을 낼 심산인가? 


 딸이 다니는 대학에서 축제가 열린 건 얼마 전이었다. 

축제를 마치고 돌아온 딸이 축제 진행 중 어떤 학생이 과호흡이 와 안전 요원에 의해 대기했던 구급차를 

타고 실려 나갔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놀랐다. 크게 걱정을 했다. 그런데 딸은 그 상황을 작은 해프닝처럼 느끼는 듯했다. 원래 축제도 콘서트도 다 그런 거란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공연을 하는 무대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면 온몸이 닿을 만큼 서로 붙어도 상관없고, 그 상태로 서로 밀고 밀리면서 즐기는 거란다. 그러다가 무대 위에서 가수가 작은 위험을 감지하면 농담 비슷하게 경고를 날리는데 그러면 조금씩 조심하며 자리를 넓히고 그것도 안될 땐 안전요원들이 다가와 질서를 지킬 수 있게 돕는다고 했다. 구급차는 무대 옆에 항상 대기 중이고 끊임없이 불편한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며 확인한단다. 그러다 과호흡만 와도 바로 싣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시스템.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서로 밀집한 상태로 축제를 즐기는 것에 이미 익숙했다. 거기서 죽음의 공포 따위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 옆엔 안전을 위한 장치가 늘 존재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뉴스를 보는 딸은 사람들이 저렇게 밀집해 있는 상황을 공포로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축제나 콘서트나 원래 다 그런 것이었다며 저 상황이 그렇게 위험한 것이냐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럼 이번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어땠나?  

바로 옆에서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만큼 소음이 엄청난 곳이라고 했다. 위험을 감지했을 때 안전을 위해 

잠깐 멈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메가폰을 든 경찰 몇 명이 그곳에 있었다면 이런 참담한 일이 발생했을까? 

몇 시간에 걸쳐 점점 밀집하고 있던 그 복잡한 골목에 잠깐 멈춤이라는 경고를 날릴 만한 공권력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현장 근처에 경찰 두명만 상주했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이태원 상인의 인터뷰를 보며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젊고 아름답고 건강한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숨이 막혀 사망했다. 그런데 그게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고? 


대학 축제에서의 안전은 대학에서 책임진다. 

힙합 콘서트는 그 콘서트 관계자가 안전을 책임진다. 

그런데 이번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주관하는 곳이 없어 책임자도 없다고 한다. 


 그럼, 우리는 지금 무정부 상태인가?   


반짝 아름다웠던 이태원이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린 채 억울함에 가슴을 치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합니다. 희생된 분들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어차피 일어날 운명적 비극도 아닙니다. 

그날 그곳엔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웹툰 '이태원 클라쓰'8화 [이태원 프리덤]의 한 장면 


*글 상단의 사진은 웹툰 '이태원 클라쓰' 3부 1화 [해피 핼러윈]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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